고조선이 역사냐 아니냐를 두고 아직까지 말들이 많더군요.
뉴스도 안보고 사시는분들이 꽤 되더군요. 더군다나 사학과 출신도 뉴스도 안보고 예전 지식으로만 얘기하더군요.
먼저 정답부터 제시하면 2007년 "교과서"에서 고조선은 신화에서 역사로 편입됐습니다.
뭔 말인지 잘모르는 분을 위해서 링크겁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061731441&code=210000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44118
몇구절만 뽑아서 정리해 드리면.
2007년 이전 : "건국 하였다고 한다."
2007년 이후 " "건국 하였다."
이렇게 어떤 책에 의하면 어떻다라 라는 문구가 이제는 완전히 확정적인 어투로 ~하였다 로 바꼈습니다.
이렇게 신화에서 역사로 바뀐 근거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장득진 실장은 "그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의 연구 성과는 고조선 건국의 배경을 설명한 27쪽에 반영됐다. 기존에 기원전 10세기로 소개된 한반도의 청동기 도래 시기를 기원전 2000년~기원전 1500년께로 정정한 것이다. 이 부분을 집필한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강원도 정선과 춘천.홍천, 경기도 가평, 인천시 계양구 등지에서 최근 출토된 유물 등을 근거로 청동기 문화가 한반도에 전래한 시기를 앞당겼다"고 말했다.
이렇게 들고 있더군요.
제가 이런말을 하니... 어떤 한 무리들이 "그 이전에도 고조선은 역사로 인정되었다 누구 부정하였냐 하물며 이병도 조차도 고조선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나 하나 따져보죠.
1. 그 이전 교과서는 어떻게 표현했느냐?
답 : 위에도 링크 건 부분은 고교 교과서 입니다. 고교 교과서는 "~라고 한다." 라는 어체로 실려있습니다.
반면에 중등교과서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이형구 서울대 교수의 말을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중학 교과서에는 ‘단군왕검이 부족들을 통합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식으로 돼 있습니다. 같은 해 나온 고교 교과서에는 ‘…고 한다’고 돼 있고요. 이번 수정은 고교 교과서를 중학교 교과서 서술과 일치시킨 것입니다. 다만 송교수 지적처럼 하나의 시기를 규정하는 데 ‘동북공정’이라는 국제적 분위기 같은 것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어서 이 문제가 부각된 듯합니다.
즉, 중학 교과서와 고교 교과서가 표현에서 일치를 하지 않았고... 중학교과서는 "~하였다."로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말한 교과서는 중학교과서 였군요.
국사편찬위원회의 답변도 한번 첨부하겠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신화에는 그 건국 연대가 BC 233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현재 학계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증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그 기록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게다가 고고학적 발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진전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며, 이 경우 청동기 시대의 상한은 더욱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고조선사와 관련하여 현재 학계가 안고 있는 하나의 큰 딜레마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사 교과서는 서술되었습니다. 때문에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즉,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국가가 형성되게 된다는 것과, BC 2333년의 고조선 건국설 모두를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두 가지 견해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잘 살펴보십시오.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라고 하여,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단정짓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했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그 실제 여부는 향후의 연구성과에 맡기겠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http://www.history.go.kr/front/addservice/faq/viewFaqBoard.jsp?pBbsCode=35673&pTotalRow=1&pNoCount=2&pCurrentPage=1&pPageLine=10&pSearchDivi=00&pSearchType=01&pSearchWord=%EA%B3%A0%EC%A1%B0%EC%84%A0&pSearchType=01
이렇게 기존에는 "신화소개의 차원", 2007년 이후에는 "단정"의 차원이라 정리하면 되겠군요.
2. 기존사학에서 고조선을 역사로 인정했느냐?
답 : 이건 물어볼 필요도 없이 NO 입니다. 기존 사학계의 몇몇명이 역사로 인정했다고 기존사학도 역사로 인정했다 이런 말을 할수는 없겠죠. 기존 사학계의 대부분이 역사로 인정해야지만 "역사로 인정했다." 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겁니다.
송호정=글자 몇자 빼거나 숫자를 바꾼 배경이 무엇일까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입각해 역사 기원을 조금 더 끌어올리고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하나의 정치체가 출현했다는 식으로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학계의 의견 수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너무 신경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송호정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학계의 의견 수렵은 없었고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에 너무 신경썼다고 말합니다. 이런데도 학계에서도 고조선을 역사로 인정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송호정=소수 분들의 생각만 반영됐고 많은 사람들이 논의의 장에도 못갔습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교과서 쓰시는 분이 총대 멘 거죠. ‘이번에 교과서를 수정하는데 동북공정 문제도 있고 하니, 일반시민, 학계의 의견 수렴도 해서 편찬하자’는 얘기가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집필자의 수정에 대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 편수관은 학계 의견을 정확히 수렴했어야 합니다. 결과는 집필자가 총대를 멘 격이 돼버렸습니다.
송호정 교수도 분명 학계의 소수 분들의 생각은 반영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학계에서도 고조선을 역사로 인정하는 소수의 무리가 있고 신화로 치부하는 대다수의 무리가 있는 겁니다. 이번엔 소수의 입김이 많이 작용된 거구요.
오죽했음 국사편찬위원회가 총대를 멨다는 표현까지 썼겠습니까?
일단 여기서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중에 수정해서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2007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고조선이 우리나라의 역사로 편입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이상 다른 말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본적인 사실로 모르는 사람들 꽤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