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 이야기입니다.
전역한지 1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군요..
임관 후 바로 발령된 GOP에서 소초장을 할 때 겪은 일입니다..
제가 근무한 부대는.. 서부 전선의 00사단 GOP..
박격포소대장을 맡았던 저는
방벽(민통구역 안의 남책 만쪽에 있는 높이 3~5m의 벽..)과 불과 50m 떨어진
소초에서 근무했습니다.
박격포 소대이다보니 철책선을 순찰하는 일이 아니라,
DMZ작전을 엄호하는 대기포 관리가 주임무였죠..
대충 아시는 분만 아시리라 생각되네요..
GOP나 GP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회와 2중으로 단절된 환경에서
그 안에서 1여 년을 생활해야하는 군인들의 갑갑함은 상당하죠..
그런 갑갑함을 달래고자 병사나 간부들은 다른 무언가에서
시간을 떼우거나 무료함을 떨쳐 낼 궁리를 합니다.
우리 소초의 소대원들은 약간 특이한 스트레스 해소가 있었으니...
'고양이 키우기'와 '고양이 죽이기'였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기르던 고양이를 죽이는 뉘앙스를 풍기는데요, 그건 아니구요..
'키우는 고양이'와 '죽이는 고양이'는 엄격히 구분되었습니다.
소초에는 흔히 말하는 짬동물이 하나씩은 있는데,
저희 소초는 '낭만이'라는 어미 고양이 슬하의 3마리의 자식을 둔 고양이 가족이었습니다.
녀석들이 애교가 많고 소초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소초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죠..
가끔 생선반찬(군대 생선반찬...다들 버리죠..)나오면
짬통에 넣기전에 낭만이 가족들에게 던져주곤 했습니다.
이러한 일상이 되다 보니 대대에서 우리 소초의 고양이는 일종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지휘관들도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는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양이들과 GOP에서의 생활을 하루하루 꾸려가던 어느 날 아침..
기상 후 점호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소초원들은 여느 날처럼 낭만이를 찾았습니다.
"낭만아~ 낭만아~"
그러나 낭만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새끼들도 마찮가지였구요..
낭만이가 보이지 않자 분대장 중 한명은 대기포진(소초 바로 옆)에서 새벽에 근무한 병사에게
낭만이를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야,야, 정수야~ 낭만이 못봤냐?"
"못봤는데 말입니다."
"이시끼가 어딜갔지..? 은혜도 모르고 도망간거 아녀?"
"마실나간거 아니겠습니까? 짬시간 되면 돌아오겠지말입니다."
"아~ 이시끼, 소초안지키고 싸돌아댕기기는.."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 동트기 전 전 근무를 섰던 김상병이 눈을 부비며 얘기했습니다.
"제가 3시에 근무설 때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말입니다."
"고양이 싸우는 소리? 어디서?"
"방책 넘어서에서 들렸습니다. 1~2분 동안 들리던이 잠잠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나?"
대화를 듣던 저는 한 분대장에게
"2분아, 방벽가서 내려다 보고와봐."
"예"
방벽이 코앞에 있던 터라 2분대장은 방벽에 올라가 방벽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마저 아침 점호를 위한 스트레칭을 지시하던 찰나,
2분대장이 시껍하며 외쳤습니다.
"소초장님! 여기 낭만이 새끼 둘이 죽어있습니다!"
"뭐?"
저희 소대원들은 아침점호고 뭐고 방벽으로 우르르 뛰어올라갔습니다.
방벽아래에는 2분대장 말대로 낭만이의 새끼 두 마리가 싸늘하게 내팽개쳐져 있었습니다.
새벽 이슬까지 맞은 터라 몸통의 털에는 하얗게 서리를 얹은 듯 보이는 모습..
소대원들은 모두 동요하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추측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책 근무자들이 죽였나?"
"낭만이가 죽인거 아냐? 짬 독차지 하려고.."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지 새끼를 저렇게 했겠습니까?"
"멧돼지가 죽였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멧돼지가 저길 어떻게 들어가냐?"
"하긴,, 멧돼지가 죽였다면 보통 시끄러웠겠어..?"
"김상병, 1~2분동안 들렸다고 했지?"
"예, 1~2분 사이에 두세번 고양이가 소리 지르더니 잠잠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건데..."
"순찰 근무자들이 깜깜한 밤에 고양이 두 마리를 1~2분 사이에 죽인건 말이 안되고.."
그렇게 우리들은 소초의 마스코트 두마리를 잃은 까닭을 생각하며,
생각할수록 복수를 해야겠다는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떤 시끼든, 우리 낭만이 새끼를 죽인 녀석들 가만 안둬.."
"저는 지난번에 햄볶음 반찬을으로 나왔을 떄도 새끼들한테 던져줬는데 말입니다.. 어떤 시끼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자, 자, 그만하고 내려가서 점호 마저 끝내자"
다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방벽을 내려왔습니다.
몇개월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정을 주었던 만큼 소대원들은 약간 침울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낭만이는 어디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