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근무한 부대는 나즈막한 산을 걸치고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이없는건 산의 중간중간에 무덤이 있는데,
추석이나 구정등의 명절이면 민간인들이 찾아와서 성묘를 지냅니다.
아마도 부대가 건설되기전에 지어진 것들이겠지요.
대공초소(산정상의 초소)에 근무하러 가는 길의 양쪽엔 그 무덤들이 듬성듬성 있어서
이등병시절, 밤에 올라갈 때는 아주 끝내줍니다. 사수옆에서 절대 안떨어지죠.ㅋ
그래서 귀신을 보았다, 귀신소리를 들었다(실제로 저도 소리는 들었습니다) 등등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죠.
무덤들 중 몇개는 연병장에서 불과 20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산비탈의 시작정도 되는 곳인데, 보초근무하러 가는 길의 바로 옆이기도 하구요.
근데 이 무덤의 아래쪽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어서 아래쪽에서는 무덤이 보이진 않습니다.
제가 병장 1~2호봉쯤 될 무렵,
우리 포반(포병이었습니다)에 신병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보통은 일주일정도의 적응기간을 거친 후, 본격적인 자대생활을 시작하는데,
인원부족에 허덕이던 때라, 어쩔 수없이 신병에게도 야간보초근무를 세웠죠.
대신, 같은 조의 사수를 상병말호봉으로 묶어서 근무시간도 저녁 10시에서 11시까지로 비교적 이른시간에 보냈습니다.
보초를 다녀온 후,
신병은 많이 혼났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고, 같이갔던 상병은 혼자 시불시불거리는 거였습니다.
왜그러냐니까,
근무 올라가면서 신병이 이상한 걸 봤다는 겁니다.
길 옆에 있는 언덕 위의 나무들 사이로 흰 물체가 자신을 계속 쳐다본 후,
조금있다가 하늘로 솨악 올라가더란 겁니다.
신병이 말하는 장소는 정확하게 그 무덤이 있는 곳이었죠.
그 장면을 보지 못했던 상병은(보통 야간근무갈 땐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신병에게 무덤에 대해서
들은게 없는지 심하게 다그쳤고, 전혀 상황을 몰랐던 신병은 1시간여동안 갈굼당하다 내려왔던 거였습니다.
자대배치 받은지 하루밖에 지나지않은 녀석이 보이지도 않는 무덤에 대해 알 리는 없었죠.
그 이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를 보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얼마후 결정타가 발생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서고있던 보초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가지고 있던 탄창을 꺼내 총에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때도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는데, 내무실에서 쉬고 있던 병사들은 총소리에 놀라 튀어나오고 난리가 났었죠.
당직사관이 자초지종을 물으니,
산의 능선길을 따라 어떤 여자가 자신을 향해 죽일듯이 달려오더란 겁니다.
여자의 눈은 뒤집어졌는지 하얗게 눈동자가 안보이고, 일그러진 표정과 산발의 머리카락에 놀라,
오줌까지 지리며 생각해낸게 총이었고 장전 후 발사했는데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겁니다.
웃긴건,
보초근무 시 지급되는 탄은 모두 공포탄으로 귀신은 커녕 강아지 한마리 못죽입니다.
암튼 그 사건 이후 대공초소는 폐쇄되었고 산 입구에 새로 초소를 만들어 거기서 근무했습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들이라서
이제는 가물가물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아,
아까 신병의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그 날 불침번근무이었기 때문인데,
일단 둘을 재운 후,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죠.
밤새도록 보초 근무자들을 깨우면서
그 날 있었던 일을 아주 상세히 말해주었을 때,
애들의 표정에서 나오는 공포감은 꽤 재밌는 구경거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