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골콘다 근천에 사는 노예에 의해 1701년에 발견되었다. 이 노예는 자기 다리에 상처를 내어 붕대속에 감추어 해안으로 도망쳤다.
그 후 영국인 선장에게 비밀을 말하고 자신을 자유의 나라로 피신시켜 주면
반을 나눠 주겠다고 제의 한 후 봄페이로 향하던 중
선장은 흑심을 품고 노예를 죽이고 이 원석을 쟘천드라는 보석상에게 5천달러에 팔았다.
그 후 선장은 죄의식의 정신착란증으로 목을 매어 죽었다. 1702년 이 돌은 F.T.죠지마드라스의 통치자
토마스 피트(그의 손자는 후에 영국의 윌리암 피트 수상이 됨)에게 넘어 갔고
그는 이 것을 영국에 보내 쿠션쉐이프 브릴리언트로 커트해서
140.50캐럿트의 돌과 작은 돌들이 많이 나왔다.
1717년 이 커트된 돌은 프랑스를 섭정하던 오르레안공 필립 2세에
65만달러에 팔린 후 리젠트 다이아몬드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772년 루이14세를 위한 대관식의 왕관에 붙여지게 되었다. 마리 레신스커 왕비는 왕관에서 이 돌을 다시 빼어 머리의 장식품으로 사용 했으며
1792년 왕가의 보석들이 도난 되었을 때 없어졌다가 파리의 어느 다락방에서 발견된 후
1797년 나폴레옹을 돕기 위해 저당에 잡혀지기도 하고
나폴레옹은 이 돌을 칼자루에 넣어 1804년 대관식에 착용했다.
이 돌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된 후 그의 두 번째 처인 마리 루이자를 통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시스 1세에 넘어 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 왔다. 1825년 촬스 10세의 대관식에서 몸에 착용되고 나폴레옹3세 시대까지
왕관에 붙어 있다가 국유재산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진열되었다.
좀 사연이 긴 다이아몬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