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에 같은 방향이어서 여자분 뒤를 걷다가 오해받았다는 글 들을 보다보니
1998년 가을 어느 날 심야에 겪었던 이상한 일이 생각 나네요.
당시 전 역삼동 충현교회 부근에서 살고 있었죠.
그 날은 토요일이서 오후에 친구들 셋이랑 잠실쪽 고수부지에서 놀다가
압구정 도산공원 부근의 잘아는 가게에서 초저녁부터 술을 마셨는데
11시쯤해서 친구들은 다들 가버리고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뜨면서
어쩌다보니 저만 그 가게 주인분이랑 밤늦게까지 마시게 되었죠.
(새벽 3시까지 마셨으니 시간으로 따지면 한 8시간 정도...)
하지만, 가게 뒷정리를 도와주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는
다행이도 술이 다 깨서 정신이 너무 맑아져 있었죠.
그래도 음주운전은 안되니까 차는 가게 주차장에 세워두고 일어나면 찾으러 오기로하고
택시를 타러 큰 길까지 나왔는데 그 흔하던 빈 택시가 한참을 기다려도 보이지 않습디다.
'그래~ 그럼 집까지 걸어서 간다.'
집까지는 세블럭 정도 거리로 걸어가면 1시간도 더 걸릴텐데
그 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참...
(아마 술을 마셔 열은 오르는데 가을밤 찬 공기가 좋았나보죠?)
그렇게 도산대로를 건너 왠지 큰 길을 놔두고 골목길로 접어들어
그 경사진 길을 헉헉거리며 유유자적(?) 올라가고 있었죠.
관세청(서울세관)뒤 쯤까지 왔을 때
분명 좀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왠 아가씨가 2~30미터쯤 앞에서 걷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가씨 맞냐고요?)
'어~ 이 새벽에 젊은 아가씨가 일행도 없이 왠 일?'이러면서
상대방이 놀라지 않게 적정거리를 두다보니
야밤에 여자뒤를 밟는 꼴이 되더군요.
어깨에 닿지않는 정도의 단발머리에
흰 블라우스, 베이지색 계열의 무릎정도 길이의 치마, 빨간구두 등...
(아가씨 맞습니다)
단정한 차림새의 아가씨가 앞서 걷는 골목길.
그런 상황이 낮이었다면 참 상쾌한 기분일텐데,
시간이 야밤이다보니 그 모습이 왠지 이상한 느낌을 주더군요.
아니나다를까 언덕을 다 올랐을 쯤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하다 다시 앞을 보니
그 아가씨가 어느순간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 짧은 사이에 마치 연기처럼 사라진거죠.
이제 내리막길이라 보폭이 큰 제 걸음으로 자연스레 제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지나치면서 얼굴이라도 힐끔...ㅋㅋㅋ)
그 때만 해도 이상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무섭지는 않았죠.
전 집으로 가야하니까 계속 걸어내려와 큰 길(학동로?)을 건너 또 골목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YMCA뒷길 좀 안되어서
바로 제가 보고 있는 중에 또 그 아가씨가 한 20미터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타나는 겁니다.
마치 연기처럼 '스르륵~!' 이렇게...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남과 동시에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이를 악물어 막고는
속으로 '악~, 귀신?' 이랬습니다.
앞에서 가고있는 것은 예쁜 아가씨가 아니라 무서운 존재이며 나를 타겟으로 하고있다는 생각에
걷는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릴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그 것의 걷는 속도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골목길엔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구요.
이렇게는 다음 큰 길까지 가기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전 뒤돌았습니다! 그리고 뛰었습니다! 뒤는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행이 잡히지 않고 아미가호텔 맞은편으로 나왔고 택시가 바로 오더군요.
기사아저씨한테 사정사정해서 집 앞까지 택시타고 왔습니다.
현관문 열고 들어갈 때도 한 번 뒤돌아봐지더군요.
혹시나 하면서...
그런 경험을 하고도
이젠 '그 처녀귀신은 얼굴이 어땟을까?'하는 생각이 한번씩 듭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