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의 여인

므흐읏 작성일 12.10.25 01:16:12
댓글 3조회 5,353추천 6

난 귀신을 보거나 영 능력이 강하다거나 그런건 아닌데 어릴적 부터 기이한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항상 술자리나 모임에서 기이한 얘기를 해주는건 내몫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말하기전 나는 늘 당부한다.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우연의 일치거나 잘못본거니까 믿지마라" 라고..

정작 그런 상황을 실제로 목격한 나는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

-------------------------------------------------------------

 

일에 미쳐있을때의 일이다.

 

한참 신입사원 티 팍팍 내가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무렵, 사회 초년기는 아니었으니 야근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허나, 어느덧 자정이 넘어선 시간에 부단히 피곤했던 나는 선배에게 술한잔 핑계로 퇴근을 권유했고 선배도 혼쾌히 받아들였다.

 

밥도 못먹고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 하며 넌지시 반주삼아 몇잔 기울이고는 따분한 일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따분한 얘기를 주고 받더라도 금방 술자리에 빠져드는것이 직장인이리라...정신 차리고 보니 새벽 3시를 넘어섰다.

 

서로 피곤한 마당에 어서 집에 가자는 선배의 말에 대리운전을 부르려 했으나 이내 핸드폰을 빼앗겼다.

 

"몇잔 마셨다고 그걸 부르냐..걍 가자 태워다 줄게"

 

"그래도 술마셨는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마. 이건 불어도 훈방이다"

 

대화는 길게 했지만 마신건 소주 한병도 안되었으니 괜찮겠다 싶었던 난 아무 생각없이 보조석에 올라탔다.

집에 가는길 혹여나 졸음운전 할까 싶어 쉬지않고 재잘재잘대며 베시시 웃던 찰나..

 

애 엄마라 치기엔 유난히 젊었지만 낯빛이 흐린 한 여인이 갖난아기를 앞으로 안은채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있는것이 흘깃 보이는게 아닌가.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 여자 얼굴부터 훑어보는데 안색이 그렇게 안좋을 수 없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버스가 끊긴지는 한참인데 거기 서있을 일이 없을터, 남편을 기다린다 쳐도 굳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란 법은 없을테고. 그것도 새벽3시에 아기를 안고 말이다.

혼자서 궁리하고 추리하다가 그냥 세상엔 별에 별 사람이 다 있겠지 싶어 탈탈 털어버리고는 어차피 할 얘기도 없었겠다 이거나 말해야지 싶어 선배에게 말을 꺼내었다.

 

"어유~이시간에 무섭게 버스정류장엔 왜 있데, 아줌마가 겁도 없네"

 

선배는 힐끗 보조석 방향을 쳐다보더니..

 

"그러게..아줌마가 정신이 이상한가?"

 

"어? 선배도 봤어요 그아줌마?"

 

"그래~방금 저기 서있더만"

 

더욱이 날 소름끼치게 만드는 선배의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말을꺼낸것은 벌써 세정거장쯤 지났을때였는데..

선배는 방금 지나쳤던 정거장에서 여인을 발견한것이다. 그것도 내가 봤던 차림새와 똑같은 여인을..

 

그때부터 세정거장 전이었네 방금전이었네 옥신각신 되도 않는 일로 선배와 실랑이를 벌였다.

몇차례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하다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하였고 별 실없는 얘기했구만 허허허..하며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술도 많이 안마셨는데 둘다 취해버렸구나 싶어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시작할 무렵 난데없이 전화가 울렸다.

선배가 놀라고 경직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야...너 이거 끊지말고 계속 들어라. 절대 끊지마라...나 미칠거 같다."

 

"왜 그러십니까?"

 

"니가 안믿을수도 있는데....나 아까 정거장에서 또 봤다 그 아줌마..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선배는 그렇게 뜸들이듯 말을 아꼈지만 이내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 주차하려고 하는데.....지금 그 아줌마 바로 앞에 서있다...이거 뭐야? 엉? 야 우리 술 많이 마셨냐?"

 

무서우니 끊지말라는 선배의 부탁에 난 잠자코 휴대폰을 든채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저 화제를 돌리며 선배의 공포감을 낮추려 애쓸 수 밖에 없었던 난 어울리지도 않는 농담이나 던져댔다.

 

"아줌마 축지법 배웠나보네~빠르네 아줌마~......선배 그냥 차 대놓고 뛰어올라가요. 예?"

 

"야..ㅅㅂ 그게 말이냐? 잠깐만..야...."

 

선배는 격앙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몇번이나 부르더니 이내 말을 멈췄다.

그리고 몇초뒤 수화기 너머로 처참하게 들리는 소리..

 

"....온다..온다온다온다..일로 온다고...아아아아 ㅅㅂ...너 뭐야~~~~..아아아아..."

 

차문을 벌컥 여는 소리...구둣발로 마구 뛰어가는 소리...이미 선배의 비명으로 가득한 주차장의 울림소리..

 

그리고 기분나쁜 아기의 울음소리까지...

 

"어어헝 어헝헝 애기가 울어..애기가 운다고 ㅅㅂ...아아아악..어어어어어"

 

선배는 이미 재정신이 아닌듯 했고 난 끝까지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몇분이나 지났을까..선배는 집에 도착한듯 숨을 내쉬며 내게 전화를 끊지 말라 몇번이나 부탁하며 한참을 떨고있었다.

 

선배를 진정시키느라 온갖 헛소리를 지껄이며 떠들어대다 보니 해가 뜨고 있었고 귀신보다 무서운 출근덕분에 둘다 전화를 놓고 잠들 수 있었다.

 

제대로 주차 조차 하지 못했던 선배는 아침부터 차 빼달란 전화에 시달려야 했고..

난 피곤에 절은채 출근길에 나섰지만 둘 중 누구하나 전날 밤 일은 입에 담지 않았다.

므흐읏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