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렸을 적의 일입니다.
당시 이면지역의 작은 마을에있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저는 여느 마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서 형제들과 친구들과 산을 다니며 먹을거리를 찾아먹곤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이차이가 적은 제 동생과 또래 친구 셋, 총 다섯은 학교가 파하면 책가방부터 집에 넣고 바로 뒷산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뒷산에는 밤이며 버섯이며 다람쥐들이 숨겨놓고 잊어버린 열매들은 물론이고 어쩌다 군의 것으로 보이는 철쪼가리를 찾는 날이면 사탕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눈에 불을키고 뒷산을 누비곤 했습니다.
산을 따라 반나절을 걸으면 버스로 40분은 걸리는 이웃마을의 오래된 사찰에도 닿을 수 있었기 때문에 뒷산에는 이미 사람들이 다니는 인로가 나있었습니다. 이토록 인적있는 뒷산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모두가 꺼리는 길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귀신이 나온다며 겁을 먹여놓고 혹여라도 근처에 간것이 발각되면 엉덩이가 터지도록 맞는 그 곳은 색색들이 천들이 나부끼는 작은 초가.
어른들은 산길을 따라 가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나올라 치면 아주 어린애에게는 짐승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고 조금 더 겁을 줄 필요가 있으면 귀신이야기를 하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조금 머리가 큰 아이들은 그곳은 귀신이 아니라 무당이사는 곳이라며 괜히 갔다가 옴붙으면 재수없다고 알아서들 피했지만 우리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그곳만큼 오싹한 흥미를 자극하는 곳도 없었습니다.
마침 도시에서 유명한 범죄자가 이 동네로 내려왔다더라 하는식의 소문이 돌 때였기 때문에 밤이 되어 몰래 빠져나와 담력시험을 한다던가 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근처에 가볼 수 조차 없었던 그곳은 그렇게 우리들에겐 소문만 점점 무성한 금역이 되어있었습니다.
.2
제가 그곳이 귀신집이 아니라 무당이 있는 곳이라더라 하는 소리를 들은 것은 5학년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누나에게 들은 소식은 처음엔 의아함이었지만 나중엔 허무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같은반 친구들 중에서도 이미 그 실체를 알고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더러는 아니라며 자신이 귀신을 봤다며 귀신집 소문을 우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한바탕 소란이 인 후 진실을 확인하겠다는 호승심이 인 몇몇이 그곳에 다녀와 무당은 커녕 사람이 살기에도 아주 작은 집 하나가 전부라는 사실확인까지 된 이후로는 더이상 저에게 그 곳은 금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제가 실제로 그곳에 가본것은 몇년이 더 지난 중학생 때였습니다.
진학문제로 아버지와 크게 싸운 후 계획없이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저는 친구의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은 뒤 집으로 돌아가는 척 눈치를 보며 뒷산을 향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개의 울음소리인지 무엇인지 모를 짐승소리가 들렸습니다. 컹컹이는 소리는 분명 개의 울음소리였겠지만 당시 저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늑대울음이라 생각하며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론 진학을 못할바에야 산길을 따라 사찰에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되겠다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을 결심이랍시고 하며 절에 가려던 생각이었지만 중간정도 걸어 길이 나뉘었을때 무슨 변덕이었는지 문득 그 곳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나는건 갈래길에 섰을 때 '그러고 보니 그때 애들이 저곳엔 무당도 귀신집도 없다고 했었지. 한번 확인해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는 것.
생각보다 더 한참을 걸어 올라갔지만 아이들이 말하던 색천이 메달린 나무라던가 허름한 집모양의 무언가는 전혀 보일 생각을 안했습니다.
여름의 산은 흙과 잡초들을 밟는 제 발소리 외에도 여러가지 으스스한 소리들로 가득했습니다. 정체모를 풀벌레들의 소리와 간간히 섞여 들리는 컹컹소리는 아직 어렸던 저에겐 귀신보다 더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겉으로는 호기롭게 ' 이만큼 왔는데도 안보이다니. 어쩔 수 없군 돌아가자!' 하였지만 내심 공포에 질려 아버지와의 싸움이고 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던 저는 뒤를 돌아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걷고 걸어도 나와야 할 갈래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턴 인로도 뚝 끊겨 보이는 것이라곤 나무기둥 뿐이고 낮이라면 멀리 읍내쪽 산 능선에 나있는 전신주라도 하나 찾아내어 향해갈텐데 밤이 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탓입니다.
더군다나 아까까지는 시끄럽도록 울려대던 풀벌레소리도 밤만되면 울어대던 뻐꾸기소리도 들리지 않고 들리는건 오로지 제 쿵쾅이는 심장소리 뿐.
식은땀에 등이 절로 축축해졌을 즈음 저멀리 한 아저씨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폼이 사람임을 확신한 저는 일단 멈춰서서 "저기요!!아저씨!!" 하고 소리쳤지만 아저씨는 멈추지 않고서 앞으로 절뚝거리고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혹여나 놓칠새라 다급해진 저는 울퉁불퉁한 길을 뛰어 아저씨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가까워질수록 그 아저씨 뿐만아니라 앞서 걸어가는 다른 일행이 보였습니다. 일렬로 서서 빠른걸음으로 숲길을 헤쳐가는 그들의 뒤를 쫓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아저씨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중학생의 다리라지만 이토록 달렸는데도 걸어가는 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은 어두움에 질려있던 저라도 이상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아함 다음에 찾아오는것은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나무뿌리사이에 몸을 답싹붙여 쓰러지듯 앉은 제 눈앞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분명 제 눈앞에서 앞을 향해 간 인영들이 다시 뒷쪽길을 통해 걸어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낙엽없는 여름이라지만 저정도의 사람들이 지나가려면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라도 날 법 한데 들리는 것이라곤 나뭇토막이 달칵달칵이는 소리뿐.
마지막으로 뒤를 걸어가던 인영이 저 앞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이후에 미친듯이 뛰어 산을 내려갔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제 기억엔 없습니다. 그저 눈을 떴을땐 걱정이 만연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어머니가 있었다는것. 그리고 저는 제 방에 누워있었다는 것 뿐입니다.
들었던 얘기를 풀어보자면 저를 발견한 곳은 옆마을이었고 새벽일을 나가던 할아버지께서 공황해있는 저를 발견하시곤 순경에게, 그리고 순경이 제정신이 아닌 제게 물어 집에 연락을 했다는 것.
다만 잔뜩 화가 난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제가 기절을 해버렸는데 그 이유가 뭔가 했냐면 제 손에 쥐어져있는 나무판을 발견하고선 억소리도 없이 기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무판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왜 꼭 쥐고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을뿐이고 그저 막연히 '아 그때 나뭇토막이 달칵이던 소리가 이것이었나보다.' 하고 생각 한 것과 그 썩은 나무판에 적혀있던 [ 그ㅅㅐ ] 라는 단어가 기억 날 뿐입니다.
.3
난생 처음으로 겪었던 공포였지만 날이 밝자 몇 일이 더 지날 것도 없이 제정신을 찾은 저는 그 이후론 다신 밤에 뒷산을 찾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건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영웅담처럼 떠벌릴 수 있는 일이 되었고 대학진학에 실패해서 입대, 그리고 제대 후 무작정 상경해 이름없는 작은 회사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간 이후로는 일부러 떠올릴 가치조차 없는 일 그뿐이었습니다.
제가 그 일을 떠올린건 제 딸아이가 5살이 되던 해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의문의 병으로 앓며 병원을 전전하다 어머니께 억지로 끌려간 점집에서입니다.
으허으어
맨날 쓰던 스타일로 쓰자니 어색해서 새로운 느낌으로 써봤는뎈ㅋㅋㅋㅋ더어색햌ㅋㅋㅋㅋ
이면마을인지 무슨면 무슨읍 무슨리 할때의 면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서 그냥 마을로 적었음!!
다음화는 이번주 안에 올라옵니다!! 아..아마도?
-8 그 ㅅㅐ(2)
이야기꾼 - 의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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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일을 떠올린건 제 딸아이가 5살이 되던 해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의문의 병으로 앓며 병원을 전전하다 어머니께 억지로 끌려간 점집에서입니다.
1.
"자네 구신을 본적이 있지?"
생각보다 젊어보이는 점쟁이는 내게 다짜고짜 귀신을 본적이 있냐며 다그쳤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뒷산에서 겪었던 일들은 어린날의 추억과 함께 기억속 깊은곳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생각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기억해낸건 함께온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짧았지만 굵었던 가출사건을 찰나에 기억해 내시곤 자세히 말해드리라며 나를 다그치셨습니다. 그제사 그 때 일이 떠오른 제가 드문 드문 정확치못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점쟁이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자신은 신내림을 받은 이가 아니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이쪽으로 연락하여 다른이를 알아보라며 명함한장을 내주었습니다.
전화통화를 하여 이름 모를 남성에게 용한 무당의 번호 하나를 새로 받았고 그렇게 찾아간 곳은 강원도의 할보무당집이었습니다.
허름하였지만 나름 구색을 갖추어 지어놓은 집 안에는 박수무당 한분과 청년 한명이 전부였습니다.
의미모를 그림들과 물건들로 가득한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무당은 제게 쌀알인지 소금인지 모를 흰 알갱이들을 뿌리며 무섭토록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이 분명한 말이었지만 무어라 외치는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고 또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어머니께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무당과 청년이 창호지를 덧바른 오래된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그 위에 부적으로 보이는 흰 종이들을 붙여놓고있었는데 그 일을 한지 한참이 지난 듯 왠만한 창문에는 부적들이 틈사이로 가득 붙여져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괴이하다거나 내게 행하였던 무례를 떠올리며 불쾌해 하기는 커녕 이유 모를 상쾌함을 느끼는 내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내 몸이 가볍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2.
어쩌다 저런놈을 달고 왔어
이것이 바로 무당에게 제일로 들은 소리였습니다. 영문을 모르고서 앉아있는 제 옆에서 어머니는 입을 바들바들 떨며 간간히 불호를 외울 뿐이었습니다.
왜그러시냐는 내 물음에 횡설수설 하시던 어머니의 말을 이해해보자면 밖에 귀신이 있다는 그 말 뿐.
다만 어머니는 떨리는 몸으로도 분명하게 문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나는 곧 괴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고속터미널에서 마을버스를 갈아타 이곳근처에 내린것이 저녁즈음 이었으니 내가 누워있었다는 몇시간을 생각하면 밖은 깜깜해야 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문밖이 낮도 밤도 아닌마냥 희푸르게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당은 그것이 빛이 아니라 내게서 쫓겨난 음기라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설명하였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내게 귀신이 붙어있었는데 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을 방밖으로 쫓아내었고 그것이 다시 붙어오기 전에 문을 걸어잠구었다는 것입니다.
눈을 떴을때 문과 창문틈으로 빼곡하게 무언가를 붙이던 모습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째서 내가 기절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벼워졌다고 느꼈던 등 뒤로 식은땀이 촉촉히 베어나왔습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무에 기대서 숨을 헐떡이던 중학생때의 나처럼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뒤늦게 어린날의 그 사건을 설명하는 나를 보며 무당이 말하길 그네들이 너같은 아이를 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너는 홀려있다가 천운으로 빠져나왔으나 등뒤에 몹쓸것을 붙여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아픈것도 이 때문입니까?" 하고 묻자 딸아이를 직접 본것이 아니니 알 수는 없으나 저것을 보면 아마도 어리고 약한것을 먼저 취하려 한 것일 확률이 크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딸과 아내를 향한 미안함에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3.
이제 남은 것은 과연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방법을 묻는 내게 무당은 첫째로는 부적을 둘째로는 굿을 권하였습니다. 다만 저들이 호의나 나를 향한 한恨으로 붙은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전자라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억지로 떼어놓지 않아도 때가 되면 그들이 떠나 갈 것이고, 후자라면 후하게 값을 치뤄 망자를 위로하여 떼어내면 될 것인데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람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으로 문이나 창문이 덜컥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와 어머니는 소리가 날 때마다 흠칫 놀라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았고 전문가로 보이는 무당은 둘째치더라도 그 옆의 청년도 우리못지않게 긴장한 티가 역력하였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그날, 뒷산에서의 일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출을 하였고 뒷산에를 갔고 그곳에서 귀신을 봤던 것 같아서 무서움에 산을 내려와보니 옆마을이었다.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그 때 까지만 해도 이 일이 얼마나 깊이 관련된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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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일을 떠올린건 제 딸아이가 5살이 되던 해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의문의 병으로 앓며 병원을 전전하다 어머니께 억지로 끌려간 점집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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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구신을 본적이 있지?"
생각보다 젊어보이는 점쟁이는 내게 다짜고짜 귀신을 본적이 있냐며 다그쳤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뒷산에서 겪었던 일들은 어린날의 추억과 함께 기억속 깊은곳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생각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기억해낸건 함께온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짧았지만 굵었던 가출사건을 찰나에 기억해 내시곤 자세히 말해드리라며 나를 다그치셨습니다. 그제사 그 때 일이 떠오른 제가 드문 드문 정확치못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점쟁이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자신은 신내림을 받은 이가 아니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이쪽으로 연락하여 다른이를 알아보라며 명함한장을 내주었습니다.
전화통화를 하여 이름 모를 남성에게 용한 무당의 번호 하나를 새로 받았고 그렇게 찾아간 곳은 강원도의 할보무당집이었습니다.
허름하였지만 나름 구색을 갖추어 지어놓은 집 안에는 박수무당 한분과 청년 한명이 전부였습니다.
의미모를 그림들과 물건들로 가득한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무당은 제게 쌀알인지 소금인지 모를 흰 알갱이들을 뿌리며 무섭토록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이 분명한 말이었지만 무어라 외치는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고 또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어머니께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무당과 청년이 창호지를 덧바른 오래된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그 위에 부적으로 보이는 흰 종이들을 붙여놓고있었는데 그 일을 한지 한참이 지난 듯 왠만한 창문에는 부적들이 틈사이로 가득 붙여져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괴이하다거나 내게 행하였던 무례를 떠올리며 불쾌해 하기는 커녕 이유 모를 상쾌함을 느끼는 내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내 몸이 가볍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2.
어쩌다 저런놈을 달고 왔어
이것이 바로 무당에게 제일로 들은 소리였습니다. 영문을 모르고서 앉아있는 제 옆에서 어머니는 입을 바들바들 떨며 간간히 불호를 외울 뿐이었습니다.
왜그러시냐는 내 물음에 횡설수설 하시던 어머니의 말을 이해해보자면 밖에 귀신이 있다는 그 말 뿐.
다만 어머니는 떨리는 몸으로도 분명하게 문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나는 곧 괴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고속터미널에서 마을버스를 갈아타 이곳근처에 내린것이 저녁즈음 이었으니 내가 누워있었다는 몇시간을 생각하면 밖은 깜깜해야 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문밖이 낮도 밤도 아닌마냥 희푸르게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당은 그것이 빛이 아니라 내게서 쫓겨난 음기라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설명하였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내게 귀신이 붙어있었는데 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을 방밖으로 쫓아내었고 그것이 다시 붙어오기 전에 문을 걸어잠구었다는 것입니다.
눈을 떴을때 문과 창문틈으로 빼곡하게 무언가를 붙이던 모습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째서 내가 기절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벼워졌다고 느꼈던 등 뒤로 식은땀이 촉촉히 베어나왔습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무에 기대서 숨을 헐떡이던 중학생때의 나처럼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뒤늦게 어린날의 그 사건을 설명하는 나를 보며 무당이 말하길 그네들이 너같은 아이를 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너는 홀려있다가 천운으로 빠져나왔으나 등뒤에 몹쓸것을 붙여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아픈것도 이 때문입니까?" 하고 묻자 딸아이를 직접 본것이 아니니 알 수는 없으나 저것을 보면 아마도 어리고 약한것을 먼저 취하려 한 것일 확률이 크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딸과 아내를 향한 미안함에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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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과연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방법을 묻는 내게 무당은 첫째로는 부적을 둘째로는 굿을 권하였습니다. 다만 저들이 호의나 나를 향한 한恨으로 붙은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전자라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억지로 떼어놓지 않아도 때가 되면 그들이 떠나 갈 것이고, 후자라면 후하게 값을 치뤄 망자를 위로하여 떼어내면 될 것인데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람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으로 문이나 창문이 덜컥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와 어머니는 소리가 날 때마다 흠칫 놀라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았고 전문가로 보이는 무당은 둘째치더라도 그 옆의 청년도 우리못지않게 긴장한 티가 역력하였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그날, 뒷산에서의 일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출을 하였고 뒷산에를 갔고 그곳에서 귀신을 봤던 것 같아서 무서움에 산을 내려와보니 옆마을이었다.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그 때 까지만 해도 이 일이 얼마나 깊이 관련된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