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1984년도 여름 방학에 일어난 이야기 입니다.
어찌 그리 잘 기억 하냐고 하신다면,
그냥 기억이 나서 기억이 난다 그랬을 뿐인데....가 아니라 대학 신입생때 이야기 거든요.
네, 제가 84 학번 이지요.
저도 20살 파릇 파릇한 새내기 였던 때가 있었답니다.
전 대학을 대구에서 다녔답니다.
정말 파란 만장 하지요?
코리안 보헤미안.........
대구에 있는 경X 대학교에 입학을 하여 디스코 텍도 가고 음주도 배우고 여자는.....
금욕적인 학생 다운 생활을 하던 모범생 이었지요...ㅋㅋㅋ
정말임. 정말임!!!
믿어 줄꺼죠?
저는 전공이 간신히 1,2 학년때만 좀 놀수 있는 과 이다보니( 이건 나중에 좀 더 고민 해보고
여기 연관된 에피소드를 쓰게 되면 알려드리죠)
정말 시간만 나면 x친듯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하던 때 였습니다.
그래도 총장님의 사랑의 편지는 안 받았어요.
흔히들 다른 말로 학사 경고라 하지요?^^
그러다 여름 방학이 되고 전 그 시절 늘 꿈 꾸었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울릉도.
지금 까지도 제주도는 여러번 갔어도 울릉도는 그때가 처음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이었지요.
목적지를 정한 저는 포항에 사는 과 동기에게 전활 했고 그집에서 하루 잘 지내며
친구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넙죽 넙죽 받아 먹었어요.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땐 포항은 지반이 물러 몇층 이상은 건물을 못 짓는 다고 하더군요.
낮은 건물들이 들어찬 거리 풍경이 참 이채로웠죠.
그리고 다음날 저녘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때 포항서 울릉도를 오가는 배는 밤에 출발하여 배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도착을 하던 큰 배 였어요.
저는 그날밤 귀신보다 훨씬 무서운 진격의 배멀미를 경험 해야 했고,
친구 어머니께서 정성 스럽게 해주셨던 그날 저녘밥의 반찬을 하나 하나
눈으로 확인 해야만 했어요.
그겄도 수 차례나......
아오!
지금도 그때 생각 하면 토 나오려 하네요.
제 울릉도 여행 계획은 이랬습니다.
도착하면 해안을 따라 걸어서 울릉도를 일주 하는거 였는데 1박 2일의 코스 였어요.
이른 아침에 울릉도의 중심인 도동항에 도착하여 방 잡으라는 호객 하시는 분들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저동항 쪽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땐 울릉도 일주 도로 공사를 시작 하던 초기 였어요.
울릉도는 진짜....하나의 바위나 같았죠.
해안 따라 절벽 깨면서 도로를 만들었으니까요.
저동을 지난지 얼마 안되어서 부터 길은 끊어지고 산과 절벽으로 이어진....
그래도 울릉도엔 뱀은 없으니 그나마 산길도 풀길도 마음 놓고 헤치고 갈순 있었습니다.
길 잘못 들어 해안 초소에도 들리고 마을도 지나고 아줌마들 한테 놀림도 받고.......
지금 분들은 모르실 그 시절 생활상 이라 생각 하고 여담 하나 올리죠.
그때 대한 민국 젊은이들을 강타한 초 울트라 메가톤급 유행이 있었으니,
그 이름 유니se스와 그 이름 찬란한 짱구 파마 였습니다.
남자 여자 할꺼 없이 남녀가 구분 안가는 디스코 바지와 눈길가는 웃옷,
남녀 똑같이 한 머리 스타일인 짱구파마는
거리를 온통 거대한 브루클리 밭으로 변모시켰고 저도 그 파마를 했었는데
술 취한 휴가 군인 하나가 제 뒷 모습 보고 여잔 줄 알고
저희집까지 쫓아 온 적이 있지요............진짜 많이 취한듯.ㅋㅋㅋ
저는 그 당시 티비에 자주 나오든 미스터 파마란 남자 모델 같은 머리를 기대 했었는데.....
싼 동네 미장원에서 했더니 현실은 마이콜 이었지요....둘리의 마이콜.....
아무튼 남자가 파마 한것을 처음 보신 동네 아주머니 들이 남자가 파마 했다고 쑤근덕 쑤근덕.ㅡㅡ
그렇게 외로워도 슬퍼도 안 지치는 캔디처럼 씩씩하게 걷던 저도 해가 떨어질 저녘이 되어서
체력이 바닥이 났고 더 이상은 힘들다 생각 할때 마을이 나타 났어요.
지금은 지명이 가억이 안 나네요.
도동의 반대편쪽에 있던 마을 이었고 하루 동안 섬을 3/5쯤 돌았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저의 실수 였던 것이 그곳에서 민박을 구한다는 안일한 생각이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이미 어두어 진데다 그 마을은 민박은 없을 것 같은
전형적인 어촌 이었습니다.
꽤 큰 마을 이었는데........
도저히 더 이상 가지 못할꺼 같았던 저는 그 마을에 하나 있는 교회를 보고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불쌍한 6.25 피난민 표정으로
"계십니까? 계십니까?"
"누구요?"
교회 안채 문이 열리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갓 국교에 입학 했을 법한 어린 딸이 나왔어요.
"여행온 학생인데 날이 어두어 민박을 구하질 못했으니 아무 곳이나 좋으니
하루밤만 자고 가게 해주십시요."
그러자 그 목사님은 저를 한번 쓱 보시더니,
교회 종루 바로 밑에 있는 종탑방을 내 주시고 이부자리도 주시더라구요.
그땐 지금 만큼 사회가 각박하고 무섭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고마웠지요.
배도 많이 고팠지만 밥까지 달라 그럴 염치는 없어 그냥 물 한 모금 먹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피곤한 몸에 금방 잠이 들었는데 새볔에 배가 너무 고파 잠에서 깬거 였어요.
ㅠㅠ 이 세상에서 배 고픈거 만큼 서러운 일은 없는 듯.....
그래서 열린 창문 밖으로 바깥 밤 바다를 물끄럼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마을 길 옆에 있는 교회 종탑방에서 창문으로 바라 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그런 위치였죠.
바다와는 5-60미터 정도?
해안은 모래 대신 주먹 만한 돌들로 해안이 이루어진...
주린 배를 부여 잡고 멍 하니 바다가를 보는데 해변을 따라 어떤 아가씨가 걸어 오더라구요.
전 이 늦은 시간에 왠 아가씨가? 하는 호기심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해변을 걸었고 교회앞에 일직선으로 보이는 장소까지 와서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곤 제가 보고 있는 걸 이미 안다는 듯 저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곤 감정 없이 저를 쳐다 보는 느낌?
저랑 그 녀의 눈빛교환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 녀는 바다 쪽으로 뒤돌아 서더니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거 였어요.
제가 원래 여름이고 겨울이고 항상 으뜸 가리개만 입고 자는 버릇이 있거든요.
전 너무 놀라 황급히 옆에 벗어 놓은 티와 바지를 입기 시작 하였습니다.
전 그 여자가 자살 하려고 한다고 생각을 했던거죠.
말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 나가려고 했는데,
그녀를 계속 보면서 옷을 입다가 불현듯 이상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녀와의 사이가 멀지도 않은데 돌맹이로 이루어진 해안을 걸으면서
아무런 소리가 나질 않았다는 거였죠.
아무리 가벼운 여자라도 그렇게 쥐 죽은듯 고요한 새볔에 돌밭을 걸으면
당연히 소리가 나야 하잖아요?
그래서 유심히 보다가 그 더운 여름에 창문을 살며시 닫아 버렸습니다.
그 녀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데 전혀 몸이 가라 앉지 않는 거예요.
울릉도를 가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울릉도는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섬 입니다.
섬 주변이 굉장히 가파라 몇군데 해수욕장으로 쓰이는 곳 이외엔
10미터만 들어가도 사람 키는 우습게 넘지요.
전 창문을 닫고 방에 불을 재빨리 켠후 창문 밑에 숨어 있었지요.
시간이 좀 지난후 몹쓸 호기심 덩어리 레떼는 창턱을 부여잡고 고개를 빼꼼히 들어
바깥 동정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뽁뽁큐 같으니라구......
바로 교회 종탑방 밑에서 위를 쳐다보고 계시데요?
헉 헉 헉.....내가 니들 때문에 제명에 못 죽겠다. ㅠ..ㅠ*
그러더니 제게 내려 오라고 천천히 손짓을 했습니다.
X 됐네....미쳤냐? 내려가게.. ㅜㅜ
방바닥에 몸을 납짝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 내려와........ 내려와..........."
귀를 막아도 들린다는 그 유명한 머리속에 울린다는 그 돌비 씨스템.......
전 귀를 막고 무서워 떨다 지쳐 또 잠이 들었고,
아침에 목사님의 어린 딸이 "오빠! 밥 먹으래요" 라고 하는 소리에 깼고 그 아이가 그러 더라구요.
왜 창문밑에서 그러고 자고 있냐고....ㅋㅋ
아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오징어 회 무침이랑 아침을 먹는데 목사님이 제게
"내가 재워 달라고 하는 사람들 있어도 절대 안 재워 주는데...." 라고 말씀 하셔서
전 왜 재워 주신거냐고 여쭈었더니,
제가 자신이 거절하면 금방 쓰러져 무슨 일 있을꺼 같았다고,
자신이 재워 줘야만 할꺼 같았다고 말씀 하시 더군요.
무슨 촉이 있으셨나?
식사후 사모님이 어린 딸에게 오빠 마을 좀 구경 시켜주라고 하니 꼬마가 제 손을 잡고
마을 구경 시켜 준다고 나가 어제밤 그 녀를 목격한 위치에도 가보고
그 아이랑 방파제에도 가 보았는데 방파제에 잠시 앉아 그 아이에게 직설적으로 물어 보긴
뭐해서 바다를 보고 야 여기 무지 깊다? 빠지면 죽겠는데? 누구 빠진적 없어? 하고 물어 보니
아니? 없는데? 하고 쿨한 대답이 돌아 오더군요.
그럼 걔는 도데체 누구? 왜?
그리고 목사님 부부와 꼬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동으로 다시와
그날 오후 떠나는 배를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기가 급변 하여 폭퐁이 몰아쳐 급히 민박집을 구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안 맞는 일기 예보가 그 시절 오죽 했겠어요?
무려 3일이나 계속된 출항 금지로 폭우 쏟아지는 울릉도에서 민박집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었지요. ㅠㅠ
거기다 민박료를 내고 나자 배삯 이외엔 몇푼 남지 않아 민박집에 냄비 빌려
라면을 끓여 먹거나 불쌍해 보여서 차려주신
민박집 아줌마의 구호 밥상으로 겨우 연명 했지요.
그런데 사건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날밤 그 냔이 또 찾아 왔어요.
어찌 알았는지.......
민박집 제 방 앞이 바로 마당 이었는데 밤에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이 들려 했을 때 였습니다.
그 폭우가 쏟아지는 시끄러운 빗소리에도 또렸하게 들렸어요.
어재 머리속에 울리던 그 목소리....
"들어가도 돼?..................
들어가도 돼?.....................................
들어가도 돼? "
허거거거걱!!!!
이 x친.....아무리 귀신과 사람 사이라도 남녀가 유별 하거늘 어딜?...............
난 아직 여자랑 한방에서 밤을 지낼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거등?
저 아무 소리 안 하고 불법 제조한 초강력 성수가 든 프라스틱 약병을 부여 잡고
언제라도 발사할 준비를 하곤 부들 부들 떨다가
떡 실신 되었다가 부들부들 떨다가를 3일 이나 반복 해야 했었어요.
3일을 꼬박 찾아 왔어......징한 냔!!
전 그렇게 3일밤을 세다시피 하곤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포항으로 겨우 기어 나올수 있었어요.
얼마나 피곤 했던지 배 안에선 골아 떨어져서 진격의 배 멀미도 안 하고요.
그런데 이 사건으로 완전 상거지에 폭탄 맞은 마이콜 꼴을 하고 귀향한 제 몰골에 모성애를 느낀
첫 사랑과 사랑을 시작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도 되긴 하였죠..
아!
!불법제조 초강력 성수는요.
성당에서 애기들 시럽 감기약 플라스틱 병에 성수를 받아 이분 저분 아는 신부님들께 돌아 다니며
몽땅 축성(방사) 받은 발사할수 있는 물총 타입 성수병 이었죠.
ㅋㅋㅋㅋ 효과는 모르겠어도 가지고 다니면 맘은 든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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