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형제도 많았어.
6남매였다고 하셔.
다 죽고 이젠 이모랑 막내 남동생만 사셨지만.
똥꼬 찢어질 만큼 극빈 화전민 집안의 딸이 뭐 먹고 살았겠어?
이모가 지금 저리 비리비리 하신 저질 육신을 가질수 밖엔
없는 이유를 난 저기서 찾아....불쌍한 춘천댁.ㅜㅜ
그런 집인데 전쟁까지 났으니 무슨 좋은 일이 있었겠어?
이모가 당신 얘긴 절대 잘 안하시는 분이지만,
난 함께한 세월이 길다보니 알게 된 얘기들이야.
심지어는 뜩이 아저씨에게도 잘 안 하시는 이모 과거사.
감자라도 배불리 한끼 먹은 날은 세상에서 젤 행복한 하루
였다고 해.
그런 힘든 삶 속에서도 불행은 찾아 오더라구. ㅜㅜ
그나마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지시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어.
도와줄 사람 하나 없어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산을 파고
아버지를 땅에 묻었어.
아이들은 아직 일을 할수없을 만큼 어려 가족의 생계는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 되었대.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일을 하셨지만
어머니까지 7이나되는 대가족의 생계를 이으시기가 너무 힘들었대.
지금 내가 생각하긴 아마 영양실조 였을듯.
형제들이 하나 둘 병으로 쓰러지고 연달아 오빠,언니가 4이나
세상을 등졌대. ㅜㅜ
그리곤,
마지막엔 결국 어머니까지 쓰러지시곤 결국 그해를 못 넘기고는
병으로 돌아가신거야.
밥도 못먹는 판에 약인듯 한첩 쓰셨을까?
이모는 두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그 겨울 언땅을 파고는
아버지 옆에 어머니를 손수 묻으셨다고 해.
그리고는 대를 이을 남자 아이가 없던 먼 친척이 찾아와
남동생만 데리고 갔대.
둘 밖엔 안 남은 남매인데 좀 거두어주지...우왕!!..ㅠ..ㅠ
그때 이모 나이 겨우 11살 이었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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