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후배는 정신이 텅 비어 보였어.
주위에 있던 우리들은 궁금 했지만,
후배의 그런 모습에 아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어.
나도 마찬 가지였고.....
그렇게 공기가 얼어 버린거 같은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를 한바퀴 멍한 눈으로 빵 둘러본 후배가 갑자기 통곡을 하기 시작 했어.
그리곤 누가 말릴새도 없이 일어서서는 자기 짐도 챙기지 않은채 뛰쳐 나갔어.
우린 잠시 당황해 있다가 여학생들에게 눈짓을 했지.
남자 애들이 따라갈 문제가 아닌듯 해서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여자 애들에게 무언의 따라가란
싸인을 한거야.
고맙게도 자기들도 걱정이 되었던지 몇몇의 여자애들이 곧 뒤따라 뛰어나갔어.
우린,
이미 연습은 생각에도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였어.
별써 몇몇이 빠져 버렸으니 합주 연습의 의미도 없고.....
다들 묵묵히 자기 악기와 짐을 싸고는 아무 말도 없이 기다렸어.
여자 후배들 짐도 다 싸주고.....
아무튼 그렇게 났으니 무슨 연락이라도 누구에겐가는 오게 될꺼란 생각으로 말야.
한참을 그렇게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에 누구하나 말은 안 꺼냈지만,
모두 보통일이 아닌건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지.
느낌들은 다 있으니 충분히 불행한 일을 감지하고도 남을 분위기 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한 사람에게 전화가 왔어.
전화를 건 사람은 아까 울면서 뛰쳐나간 후배를 따라나섰던 다른 여학생 이었고,
전화 받은 사람은 우리 동아리 3학년 회장 이었어.
급히 전화를 받아든 회장이 뭐라 묻기도 전에 그쪽에서 말을 해대었나봐.
듣기만 하던 회장이 응, 엉, 그래서? 들의 짧은 추임새만 넣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얼굴이 초당 단위로
급격히 굳어 갔어.
이윽고 회장의 입에서 으음....하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나더니 알았다며
모두에게 전한다고 하고는 니들이 수고 좀 하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어.
우린 모두 다음에 나올 회장의 말에만 집중하며 입만 쳐다보고 있었어.
한참 뜸을 들인 회장이 드디어 무겁게 입을 열었어.
애들 한테 전화 왔는데 여름 방학때 가서 봤던
그 후배의 오빠랑 언니가 지금 교통사고로 돌아거셨다고
지금 택시로 상주 내려 가려하는데 지갑이랑 다 연습실에 두고 와서
회장에게 좀 자기들 있는 곳으로
가져다 달란 전화 였다고 해.
회장은 부회장에게 그날 안나온 단원들과 선배들에게 전화 해주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모여 내려가자고 얘기한후,
여자애들 지갑을 들고 나갔어.
난,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어.
멍한 상태로 상주로 다른 단원들과 함께 내려갔어.
선배들도 따로 교통편을 마련해 내려오고,
그 후배 같은 과 친구들과 교수님들도 내려왔지.
그렇게 장례식장에 들어 섰는데 후배가 울 기운도 없어서
멍하니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키고 있었어.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이더라?
단지 장소만 시골집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뀌었을 뿐,
내가 꿈에서 본 그 장면 그대로 였어.
심지어는 내가 꿈에서 본 단원들 얼굴 까지도 말야.
그 날의 사고는 토요일 이었는데 그땐 주 5일이 아닌지라
오전 근무후 업무가 끝난 오빠가
오랜만에 병원을 일찍 끝낸 여동생을 데리고
식사를 하곤 집에 들어가려고 외식 장소로 가다
일어난 교통 사고 였어.
시내를 벗어나는 길에 급 커브 길에서
반대 차선에서 속도를 내고 달리던 트럭이 커브를 돌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해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일어난 참변 이었어.
속도가 너무 빨라 제동도 못하고 거의 정면 충돌을 해버린 사고에서
승용차에 타고 있던 오빠와 언니는 현장에서 즉사 한거였어.
이미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숨이 끊어진지 오래였고
보호자를 찾던 의료진이 오빠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에 입력되어 있던 동생에게 전화를 한거였어.
사고가 커서 방송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고 했다데......
난 있는 동안 빈소에 절 할때 "상심이 크시겠습니다"란 말 이외엔
후배랑 한마디도 못했어.
무슨 위로의 말을 할수가 있겠어?
우린 일이 있는 사람은 일찍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장례내내 빈소를 함께 지켰지.
후배의 학교 친구, 고향친구들 부터 돌아가신 오빠랑 언니의 친구들까지 다들 오셔
도와주셔서 우리까지 나서서 도울 일도 없었지만 말야.
장례가 끝나고 우리 동아리 사람들은 학교로 돌아왔어.
힘내란 얘기만 해주고 말야.
그리고는 몇일후 집에서 뒷정리를 하곤 후배는 서울로 올라왔어.
초죽음이 되어선 그래도 장례식때 다들 도와줘서 감사 하다는 얘길 하러 온거였는데,
참 보고 있기가 민망 하더라.
후배는 그런 후 바로 휴학을 하고는 잠적해 버렸어.
우린 이미 발표해둔 연주회 때문에 연습은 했지만 제대로 될리가 없지.
그해 정기 연주회는 그야말로 망한 연주회가 되어 버렸어.
후배는 그렇게 휴학을 하곤 두번 다시 학교로 돌아 오지도,
소식도 들리지 않았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아무도 소식을 몰라.
나도 녀석의 안부가 너무 궁금해 관심 가졌지만 내가 졸업 할때 까지도
그뒤로 틈만 나면 주위에 물어 봤을 때도 아무런 소식 한자 들을수 없었어.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항상 기운내고 꾿꾿이 살아 줬으면 하는 바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