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하면 귀신이야기부터 참 다양한 썰이 많죠?
그래서 저도 군대에서 겪었던 기묘한 썰을 하나 풀어보겠습니다.
(직접적으로 귀신이 등장하거나 그렇게 재미있지 않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경기도 소재 모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08년 6월 말 군번이었는데 하필 자대배치를 받은 8월초 중대 전술훈련이 실시됐습니다.
어쨌든 힘든 낮 전술훈련이 끝나면 야간 전순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각 소대 별로 돌아가면서 대대 인근 뒷산에 진지를 점령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암튼 제가 속했던 3소대는 진지 이동 출발지점인 기동로 입구 개활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1소대, 2소대, 본부소대 순서로 진지를 점령하고 내려오면 분대별로 올라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1개 소대가 진지를 점령하고 내려오면 30분 내외로 걸렸기 때문에 앞선 소대들의 순서를 기다리려면 최소 1시간 30분은 대기타고 있어야 했던 아주 무료하고 짜증나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1분대 소속이었던 저는 고참들의 시시콜콜한 썰들을 들으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그 때 분대장이 분대원들에게 대기타는 동안 '무서운 이야기'를 제안했습니다.
분대원끼리 돌아가며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에게 PX의 특권이 주어진다고 했는데 저는 뭐 완전 짬찌일때라 그냥 깍두기 신세였죠.
암튼 공포물 같은걸 많이 접해보신분들이라면 귀신이야기 자체가 영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이야기 한번쯤 들어보셨을겁니다.
분대장과 부분대장 이렇게 짬순으로 한창 무서운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구랄것도 없이 순간적인 적막이 찾아왔습니다.
이때도 미신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귀신이 옆에 지나가거나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정적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죠?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대충 분대 세번쨰 서열(쓰리고)쯤 됐던 고 상병이 이야기를 꺼낼 때 쯤이었는데
그 상병 이야기 내용을 설명드리자면 대충 대학선배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친구는 죽고 정작 본인은 살아 남았는데 군 입대 후 그 친구의 망령에 사로잡혀 불침번을 서다 자살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그 상황에 그런 적막감이 찾아왔고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저를 포함한 분대원들도 서로 표현은 안했지만 뭔가 불길한 느낌에 어차피 소대 이동 차례도 다가왔고 일순간 암묵적으로 동의라도 한 듯 이야기를 중단했습니다.
이어 분대는 기동을 시작했고 야간훈련 시 중대 전술훈련 중 진지 점령 구간에 간부들이 매복해 있다가 전시 상황을 가정, 일정 구간에서 모의탄을 쏘는데 군필자분들이라면 당연히 아시겠지만 이게 나름 터질때 소리가 큽니다~
바로 이 구간에서 언급한 모의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동시에...
"야이 X발 새X들아!!!" 하는 아주 크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모의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진지로 이동하는 구간의 기동로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겁니다....
심지어 이 소리를 저희 분대원 전체가 동시에 듣게 된 거죠~
분대장 이하 분대원들은 당연히 간부가 뭔가 훈련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른 고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뒤 그건 아니라는 걸 느꼈던게 해당 지역에 매복해있던 간부님은 소대 부소대장님으로 부사관은 물론 병사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매너도 좋고 인자한 분이라 욕도 잘 안하는 스타일로 알려 있었고 더더군다나 훈련간에 그런 쌍욕을 하실분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분대간 이동거리가 제법 있기 때문에 당연히 소대장이하 다른 간부일리도 없었고 저희 분대장이 소대 왕고였기에 왕고가 있는 분대에 그런 쌍욕을 날릴 정신나간 병사가 있을리도 만무했죠..
그렇다면 주변 민가에 사는 민간인이었을까요? 그도 가능성이 희박한게 훈련간 통제구역 지정으로 진지까지 가는 대대 뒷 산 길목은 민간인이 들어올 수 있을만한 곳이 못 됐습니다.
설령 규정을 위반하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더라도 간부 차원에서 통제가 이뤄졌을테니까요...
더군다나 바로 옆에서 고함을 내지른 듯한 음성이었기에 만약 어떤 정신나간 민간인이 먼 발치에서 소리를 질렀다면 그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을 겁니다.
생각이 이쯤까지 미치자 저를 포함한 분대원들은 모두 벙 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훈련이 진행중이고 기동 중인 상황이었기에 누구하나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할 수 없었지만 진지 점령구간에 도착하자마자 누구랄것도 없이 그 소리 도대체 뭐였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같은 짬찌야 대화에 낄 짬이 되지 못해 그저 동의하는데 그쳤지만 분대장 이하 짬이 좀 찬 고참들끼리 방금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소름돋는다고 상황정리를 하는데 아무리 맞춰봐야 답이 나오지 않았죠~~
훈련이 종료될 때까지 암묵적인 침묵을 약속하고 훈련이 종료된 이후 주둔지로 복귀해 고참급들이 타 분대, 소대 및 간부들을 중심으로 소리에 근원을 찾아봤지만 희한한건 애초에 그렇게 큰 욕설을 내뱉은 간부도 없었고 타 분대원이나 소대원은 이 소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죠.. 저희 분대 분대원들만 소리를 들은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문제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당시 비슷한 일을 겪은 앞선 고참들이 하나 둘 전역을 했고 다음해 중대 전술훈련이 돌아올 때 쯤 저도 분대 내에서 어느 정도 짬이 찬 상태였습니다.
저는 나름 짬도 먹었겠다, 당시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사수인 한 달 고참에게 그 날의 일에 대해 슬쩍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수놈이 무슨 개소리 하냐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언제 그런일을 겪었냐는 겁니다...
사수가 워낙 빡대가리에 고문관이라 그걸 벌써 잊었냐며 나름 조리있게 당시 상황에 대해 이모저모 이야기를 하는데도 당췌 이놈이 진짜 무슨 소리하냐며 오히려 저를 갈구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두 달 선임한테 다시 그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 뱀~ 홍길동 상병이 그 날 일을 전혀 기억못하겠답니다! 그때 완전 소름끼치고 고참들도 막 여기저기 묻고 다니면서 우리끼리 엄청 무섭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자
당시 부산출신이던 두 달 고참은
"임마 뭔소리고? 더위 처묵었나? 언제? 그카고 우리가 언제 귀신이야기를해? 니 전술 작전 수행 훈련간 기도기밀(조용한 침묵을 지킨다는 군대용어) 유지하는거 모르나? 아무리 대기탔어도 그냥 다 조용히 멍 때리고 있었다 아이가?"
그렇습니다... 전술훈련 간 그것도 일개 병사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드문 드문 간부들도 껴 있는 상황에 귀신이야기라니... 아무리 전입온지 얼마 안 된 초짜 신병이었다지만 그걸 몰랐을리 없었다는 사실이 첫번째로 저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럼 서로 사색이 되서 의문의 소리 출처를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던 고참들은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싶어 더 깊은 멍을 때리게 만들더군요...
전입온지 얼마 안 된 신병의 처지라 훈련이 너무 고된 나머지 꿈을 꿨다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기억이었고 분명.. 분명히 제가 겪은 일들은 꿈이라고 하기엔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앞선 상황들이 저의 왜곡된 혼자만의 착각이나 기억이라 하기에도 도저히 과학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생생함이었습니다.. 자그마치 1년여를 그렇게 저 혼자 착각속에 빠졌다는 사실이 충격의 쐐기를 박았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진짜 딱 이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더 언급했다간 저만 정말 병X 될 것 같아서 저 혼자 나름 논리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며 제가 당시 내린 결론은 자대배치 받자 마자 한여름에 나름 버거운 훈련을 수행하느라 잠깐 정신적 착란이 왔거나 혼자만의 대뇌망상이었다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기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전 입대전에도 절대 그런 망상을 즐기거나 착란 증세를 겪은적도 없거니와 전역을 한지 꽤 오래된 지금까지도 그 모든 상황들이 절대 허상이 아니라 정말 생생하면서도 또렷이 겪은 일이라 과학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일이라고 다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살면서 겪은 몇 안되는 기묘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