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종소리와 함께 40대 초반의 남자 손님이 들어온다. 덥수룩하게 기른 턱수염과 깊게 눌러쓴 모자. 언제적 옷인지 시대을 분간하기 힘들정도로 해진 옷가지들을 대충 걸치고 있는 남자다. 사장님과 난 이 남자에 대해 내기를 했는데 그건 즉 방금 자리에 앉은 저 남자가 흔히 볼 수 있는 기러기아빠인가 혹은 절실한 독신인가에 대해서다.
사장님은 전자에 걸었고 난 후자에 걸었다. 내기의 보상은 5만원. 거의 하루의 시급이 걸려있는 중요한 내기지만 남자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이 시각. 밤 11시에서 12시 사이로 출몰하는 남자는 항상 저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하곤 한다. 우리 피시방은 낮장사가 주류라서 밤에는 손님들이 현저히 줄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과는 안면을 트고 왠만해서는 친하게 지내곤 한다.
밤에 일하는 건 체력적으로도 힘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외롭기도 하다. 물론 사장님이 좋아서 밤에도 얼마든지 게임을하며 시간을 죽일수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달이다. 그것마저도 지나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햇빛이 그리워지게 된다.
“인한아. 형 왔다.”
딸랑.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창수 형이 나를 보며 서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양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형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형 어서오세요.”
창수 형은 조금 불쌍한 케이스다. 벌써 사수를 넘어 오수를 하고 있는데 슬슬 힘들어 하는 기색이 보인다. 그걸 잘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매일 피시방에 찾아와 게임을 하는 걸 보면 어느정도 한계점에 다다른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처음엔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고는 하지만 그게 시간이 길어지고 찾아오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아마도 창수 형은 그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아주 가끔 사장님이 걱정스런 마음에 창수 형에게 뭐라고 조언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형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하곤 한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죽이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난 형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괜히 아픈 곳을 건드려봐야 서로가 좋지 않다. 창수 형도 치유받고 싶을 것이다. "자." "고맙습니다."
창수 형은 언제나 그랬듯 카운터 석으로 들어와 커피를 나눠주며 홀짝 거리기 시작한다. 카운터 석은 다른 피시방과는 다르게 조금 넓은 공간에 티비에 알바생 전용 피시까지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 원래는 손님이 들어오면 안되는 공간이지만 창수 형은 조금 예외다.
“저 아저씨 또 왔구만..”
후룩.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넘기며 창수 형이 말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 맛있게 들려서 나도 따라 커피를 마신다.
“매일 그렇죠 뭐.” “내가 생각해 봤거든? 저 아저씨 일용직이 분명해.” “..그래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저씨들이 대개 저렇거든. 저 봐. 내일에 대한 근심 걱정 없는 저 마우스 손짓을 보란 말야.”
그걸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난 적당히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수다로 30분정도 보내던 창수 형은 본격적으로 스트레스를 풀러 갔다.
“하암.”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피시방 내부를 가만히 훑어 본다. 30~35평 남짓한 피시방 내부. 작다면 작지만 나름 아담한 크기의 피시방이다. 낮에는 시끌벅적한 아이들로 가득채워지는 피시방은 참 정신 없었는데..
“온도가 전혀 다르구만.”
지금은 4~5명의 손님들이 전부인 이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카운터를 보는 것과 청소를 하는 것. 요즘은 계산이 무인 정산기로 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일이 없다. 다른 피시방처럼 먹거리를 주로 파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할 것도 조금 없는 편이었고, 이 시각대에는 더욱이나 뭘 먹는 사람들이 없다.
먹어봐야 마실것들이 전부. 외로운 밤이나 상처받은 마음을 가끔 치유하러 오는 곳이 야간 피시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나 역시 적당히 시간을 죽여야했기 때문에 피시에 앉아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뉴스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뉴스. 그리고 우리 지역 사회 뉴스를 하나하나 훑어 볼 때, 꽤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벌써 5명을 죽인 연쇄살인마. 과연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구다. 그 파랑색으로 빛나는 글을 본능적으로 클릭했고,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헤드라인과 간략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00동. 연쇄살인마. 경찰들의 무능함이 지속될수록 피해자들만 늘어난다.]
관련 기사로는 온통 연쇄살인마에 대한 글들만 가득했다. 평화로울 것 같던 우리동네에 살인이라니.. 언제부터인지 살인이나 자살에 대해 유독 많은 뉴스들이 뜨는 것 같다. 그만큼 세상이 살기 각박해졌다고 해야할까. 어려워졌다고 해야할까.
[연쇄살인마가 남긴 살인의 흔적들로 보아 남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의 범행 패턴으로 볼 때, 사회와 단절된 사람일 가능성도 큽니다. 또한 그는 중년의 남자일 수 있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을 것입니다.]
프로파일러인지 뭐시긴지가 남긴 말이다. 흐음.. 과연 범행 패턴과 현장을 보고서 그런 것까지 유추해낼 수 있는건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추에 지나지 않는거니까.
툭.
너무 모니터에 빠져든 탓에 손님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카운터에 올려진 음료와 군것질거리가 눈에 보일 때쯤 예의 남자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며 계산을 해주니 남자는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멍하니 서서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창수 형이 다가왔다.
“야, 안졸리냐?”
그 말과 함께 내 모니터를 보던 창수 형이 중얼거렸다.
“너도 이거 보고 있냐? 요즘 이게 화제야. 그래서 경찰들이 밤에 순찰하러 다니잖아.” “그정도에요?” “그래 임마.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데.. 이거 동네에 전혀 관심이 없구만?” “저야 뭐..”
창수 형은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기사를 찾아보며 흥미로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곧 고개를 내쪽으로 돌린 창수 형이 말했다.
“야. 인한아 우리 이 놈 잡을래?” “..예?”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자 창수 형은 작게 웃었다.
“농담이지 임마. 야, 그나저나 배고픈데 뭐 먹을래?” “라면 드실래요?” “맨날 먹는거잖아. 좀 더 색다른건 없냐?” “제가 사줄때 드세요.”
그 말에 창수 형은 별말 없이 라면을 고르기 시작했다.
**
다음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근무 피시방으로 향했다. 야간에 일하면서 느낀거지만 이 놈의 피로는 자도자도 풀리지가 않는다. 역시 사람은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한단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조만간 이 일도 정리하고 다른걸..
“꺄아악!”
하늘을 찌르는 듯한 높은 비명 소리에 몸이 절로 움찔했다. 비명소리의 여파가 저 멀리 퍼지는 것을 보아하니 꽤나 큰 소리 같았다. 얼른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훑어 보지만 집중하여 듣지 못한 탓에 소리가 들리는 곳을 캐치하지 못했다.
“..뭐야.”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가 않았다. 비명소리는 다른 사람들도 들었던 모양인지 상가의 여러 사람들이 나와 밖을 이리저리 훑어 보고는 다시 들어가버렸다.
찜찜한 기분을 애써 떨치며 피시방 건물로 향하는데 아주 익숙한 인영과 마주쳤다.
“....”
그 남자다. 오늘도 어김 없는 옷차림. 정말 몸만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충분히 이행하고 있는 단순한 천조각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남자는 정말 주위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뭐 묻었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지난 날중에 이렇게 나에게 말했던 적은 오늘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아, 아뇨..”
내 말에 남자는 말 없이 나를 지나쳤다. 하지만 그와 함께 풍겨져 오는 냄새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비릿한 뭔가.. 그래. 마치 피냄새와 같은 냄새에 머리가 조금 아찔해졌다.
“....”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자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같이 타면 위험할 것 같은 더러운 예감이 드는 것을 왜일까. 그렇게 멍하니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그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곧 고개를 돌리곤 손짓했다.
타라는 것이다. 그 호의를 거절할까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난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5층입니다.]
목적지인 피시방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역시나 좁은 공간에 둘이 있으니 그 냄새가 확연히 느껴졌다. 이건 분명 피냄새가 맞다. 선천적으로 코피가 잘 나는 타입이라 몇 번 피를 흘려봐서 아는데 이건.. 그래. 조금 굳어진 피를 뭔가로 닦아낸 후 신경 써서 씻지 않을 때 나는 그것과 약간 비슷하다.
곧 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서둘러 내리자 남자는 내리지 않고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안가세요?”
내 말에 남자는 말 없이 버튼을 누르고는 내려가버렸다. 뭔가 느낀 것일까? 싸한 기분을 애써 떨치며 피시방으로 들어와 적당히 인수인계를 하고서 가볍게 청소를 끝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지역 뉴스를 검색해보니 헤드라인의 제목이 달라져 있었다.
[이어 터진 연쇄살인. 정말 막을 방도는 없는 것인가?]
단 하루 사이에 살인이 또 터졌다고? 어마무시한 살인마가 동네에 들어온게 틀림 없다. 이러다 정말 밤중에 돌아다니는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대체 경찰들은 뭘 하고 있는건지 원..
30분 뒤 그 남자가 피시방에 들어왔다. 적당한 인사로 환대해주자 그는 말 없이 해당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창수 형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해당 시간에 모습을 비추는 창수 형이 나타나지 않았다.
“뭔일이라도 났나.”
매일 찾아오며 기분 좋은 미소와 따뜻한 커피를 내미는 창수 형의 존재가 꽤 크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와 처지가 비슷해서인가..
곧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혹시 창수 형일까 싶어 고개를 돌리자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가장 가운데에 선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실례합니다. 최근 수상한 사람 보지 못했습니까?”
수상하다라.. 거기를 딱 충족시키는 한 남자가 있기는 한데. 하지만 무턱대고 그 남자를 말하기에도 조금 뭐하고..
“혹시 아십니까?”
이어지는 말에 힐끔 같은 좌석에서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남자를 봤다. 그는 언제나 같은 표정과 자세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리 없지.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을 하려는데 내 시선을 그대로 따라간 경찰들이 곧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은 순간이었다.
“아, 그게 아니라요.”
당황한 나머지 그들의 앞을 가로 막자 경찰들은 딱딱한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확인만 하는 겁니다.”
적당한 힘으로 나를 밀어내는 경찰들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곧 남자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남자는 묵묵히 손을 저었다. 없다는 표시인가? 허나 그 제시처는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확인이 되지 않으면 서까지 가셔야겠습니다.”
꽤 세게 나가는 경찰.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행색은 정말 수상하다고 여겨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정말 전형적인 범죄자의 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액면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지만 남자는 ‘수상한’ 이라는 수식어에 절묘하게 부합될만큼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상황이 상황인지라 살인으로 예민해져 있을 경찰들에게 저런 식의 태도를 보였으니..
“그럴 시간 없소.”
다시 묵묵히 게임을 하는 남자. 경찰들은 곧 남자를 강제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장정 셋을 당해낼리 없는 남자는 힘 없이 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