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게임 - 세번째

픽업아트 작성일 08.07.31 17: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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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솔직해져라

 

 

 

 


 



마술이나 스토리텔링, 명품, 외제차, 구라빨, 최면기술로 오늘도 작업꾼들은 온갖 영웅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무용담에 용기를 얻어 오늘도 지난 주말처럼 강남역이나 홍대포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새벽로드를 뛴다.

 

이게 우리시대 작업남들의 현주소다.

 

외제차는 빌린 것이고, SK영업부에 다닌다는 스펙도 구라다. 여자에게 눈꼽만큼의 진심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런 온갖 잡스킬이 난무하는 작업 세계에 솔직함은 사실상 자살시도나 다름없다.

 

그런데 솔직해지라니,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지 않는가?

 

 


 

솔직해지라는 건 자기감정에 한번쯤 솔직해지라는 거다.

 

로드 나가기 전에 당신이 여자 만나는 목적을 한번만 더 생각해보라.

 

혼자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진심으로 자기에게 질문해보라. 여자 만나는 게 정말로 좋은가?

 

 

 


내 얘기를 잠시 해보자.

 

내가 한창 픽업에 맛 들렸을 무렵, 난 거의 매일 헌팅을 나갔고 주말엔 어김없이 동네클럽이나 나이트에서 밤새 시간을 보냈

 

다. 나는 그날그날 커뮤니티에 업데이트 된 새로운 기술을 매번 시험하느라 바빴다.

 

서점엘 가도 미국 수입원서 서적 코너만 들락거리며 어디 NLP나 간접최면에 대한 신간은 없는지,

 

혹여 좋은책을 골라도 픽업과 관련이 없다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 수많은 픽업서적들이 마치 여자 꼬시러 나가라 부추기는 것 같았고,

 

나는 커뮤니티나 책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난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 당시엔 내가 당최 왜 그래야만 했는지 몰랐다.

 

잘못된 성취주의 때문에 나는 커뮤니티에 자랑글을 올리며 내가 따먹은 여자들 숫자 늘리는 재미에 살았고,

 

숫자를 채울 때마다 더 많은 여자를 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도 난 그렇게 사는 게 자랑스러운 남자의 삶이라며 자위하고 살았다.

 

 

 

 

관리해야 할 여자가 많아지면서 한 여자에게 쏟을 정성과 시간은 그만큼 한정되기 시작했고,

 

그만큼 난 더더욱 여자들과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한정된 자원으로 그녀들을 만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거짓말만 늘게 되었고, ‘진짜’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다 피상적인 호구조사와 신변잡기에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작업질을 계속 하던 어느 날 난 갑자기 극심한 피로와 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당장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번호부에 적힌 그녀들의 이름을 쭉 훑다보니

 

어느 한 명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여지껏 이쁜 여자나 돈 많은 여자가 좋다고 생각해왔지만,

 

마치 이제까지 계속 좋아한다고 자신을 세뇌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들은 처음 일주일 정도는 나를 어느정도 재미있는 남자로 생각했는지 쉽게 만나주고 때로 몸도 줬다.

 

허나 그녀들과 나 사이엔 허물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이런식의 작업질이 계속될수록 난 자꾸만 혼자 있고 싶어졌다.

 

내 기억으론 도예를 전공하던 부잣집 외동딸과 홍대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때가 내가 가장 인내하기 힘든 때였던 것

 

같다. 도저히 그녀 얘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어 잠시 화장실 갔다 온다 해놓고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한참동안 멍 하니 거울

 

만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있는게 차라리 편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재정 상태로는 데이트 비용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말하고 싶었는데,

 

꾹꾹 숨기고 책에 나온 메뉴얼대로 그녀 얘기만 잘 들어주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스킬대로, 빽트래킹과 미러링으로 잘 들어주려 해도 그녀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진 말빨도 거덜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연약한 자아를 잡다한 쇼잉들로 가려놓고 그 뒤에 꼭꼭

 

숨어있었다. 행여 진심을 말하면 그녀들이 떠날까봐 내심으론 두려워했었다.

 

결국 그녀들이 반한건 내 매뉴얼이지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모든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해버렸다. 난 견디기 힘들었다. 난 지쳐있었다.

 

밤새 술 마시는 것도 싫고, 모텔 데려가려고 유치한 수작 부리는 것도 역겨웠다.

 

면상 튼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와 냄새나는 모텔침대 위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것도 진저리났다.

 

난 내면의 소리에 한번 귀 기울여보기로 했다. 

 

그래서 당분간 정말로 하고 싶던 일을 하며 보냈다.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 더 여유로워졌고, 친구를 만나건 누굴 만나건 그 상황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뒤로 작업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밤에만 뛰던 헌팅을 낮에만 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밝은 곳에서 밝은 태도로 사심 없이 다가가, 번호를 묻기보단 하는 일이나

 

호불호를 먼저 묻게 되었다. 이상하리만치 대화를 길게 나누게 되었다.

 

나는 나를 솔직히 직업 없는 백수라 밝혔고, 집안 형편도 녹록치 않다 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적어도 굶어죽진

 

않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때부터 진짜 조금씩 남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도 그녀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친구가 있지만 너와도 즐기고 싶다.", "오늘밤은 너랑 정말로 모텔 가고싶다."며 직설적으로 풀어버렸다.

 

거절 당하더라도 나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에 더 이상 상처가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적어도 솔직했으니 거절당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거다.

 

 

 

 

물론 솔직함이 때로 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과하기보단 나는 이렇게 살아온 놈이고 내 과거까지 바꿀 순 없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 감정과 기분에 충실하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냐고,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길게 보고

 

서로 맞춰 가면 되지 않겠느냐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결국 날 떠나는 여자도 있었고, 도리어 내게 더 깊은 애정을 느낀 여자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많은 여자를 유혹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그럴수록 내 외로움이 덜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사담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허나 잡다한 설교조의 글보다 내 경험 하나 털어놓는 게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요점은, 나는 조금씩 진실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제 본론으로 가보자.

 

젖같은 현대사회가 계속 룰과 예절을 강조하다보니 우리는 모두 하나씩 페르소나(가면)를 갖게 되었다.

 

사실 성문화 되지도 않았지만,

 

우린 어렴풋이 아들로서, 아비로서, 선생이나 학생으로서 지녀야 할 룰이 있다고 대충 세뇌되어 있다.

 

그리고 룰만 지키면 우리는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 룰에 기대어 사는 것만큼 편한 게 어디 있는가.

 

 

 

 

문제는 이런 룰이라는 게 유연성과 변화를 상징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는 더이상 어울릴 수 없다는 거다.

 

다시 말하자면, 룰이 사회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당신이 그토록 지키려고 애썼던 법이 다음 날이면 불법이 되는 사회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페르소나가 벗겨질 지도 모르는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락이 절실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못하면 우리는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어던진다는 건 혼돈으로 추락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당신이 하던 그대로를 벗어나면 당신은 혼돈스럽다.

 

허나 신기한 사실은,

 

당신의 자아를 벗어던져도 당신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당신이 철로에 뛰어들지 않는 한, 당신의 태도 정도는 버려도 죽진 않는다.

 

 

 

 

당신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채 목적과 방법에만 매달리면,

 

항상 책상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남몰래 흐느끼며 눈물 흘리는 미국의 어느 저명한 CEO처럼 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자기 내면의 소리에 한 번 귀를 기울여보는 거다.

 

계속 자신을 속인 채, 성과물이나 성취로 자위하다 보면 아무리 많은 여자를 만나도 행복은 여전히 저 너머에만 있다.

 

물론 세상이 당신으로 하여금 솔직해지도록 쉽게 놔두진 않을것이다. 어디서나 눈치는 봐가면서 살아야 하잖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여자에게만큼은 솔직해보라.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솔직해보라.

 

당신이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면 서슴없이 얘기해보라.

 

그동안 여자에게 얘기하긴 힘들었지만, 반드시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구석이 있다면, 거침없이 얘기해라.

 

돈이없는가? 없다고 해보라. 너무 오래사귀어 권태기가 왔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로 전달해보라.

 

여자보다 혼자 야동보며 달달이 치는 게 더 마음 편한가?

 

그럼 잠시 여자를 끊어보라. 당신곁에 여자가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남성이다.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이 솔직함에서 나온다.

 

자아라는 건 매우 영악해서 매일 밤 자기 전 “나는 멋진 사람이다” 10번 외친다든가

 

자기최면을 거는 등의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자신감을 완전히 불러 세울 순 없다. 다 잊고 솔직해보라.

 

 


 

물론 솔직함이 때로 슬픔과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아니, 초반엔 많을 거다.

 

무수한 반대와 거절에 직면할 것이고, 때론 과거의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가면 뒤에 숨고 싶을 거다.

 

허나 어디 자전거 처음 타는 사람이 처음부터 잘 타는 걸 본 적 있는가.

 

자전거 타면서 입은 상처는 언제가 치유될 거고, 완전히 아물면 그 뒤로 당신은 능숙하게 탈 수 있을 거다.

 

상처는 잘 타기 위한 선행과정이지, 부작용은 아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 않다. 의외로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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