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신은 못난 남자
연애경험이 한 두 번씩 쌓이다 보면 자신만의 작업 패턴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패턴대로 계속 해 나가다 보면 패턴은 어느새 룰이 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룰이 너무 자연스러워지고, 더욱 시간이 지나면 그 룰대로 하지 않으면 불안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전의 유연했던 때를 잊어버리고 어느새 틀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이 만약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다. 당신은 이미 유연함을 잃었다.
때로 당신의 룰이 당신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여기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어느 대장암치료 전문 의사가 계속되는 야근으로 어느 날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워 자기 스스로 몰
래 진찰기를 대보니 종양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자기 자신 대장암 전문인지라 지금의 증세라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
했다. 결국 그는 유서까지 써 놓고 아내에게 미리 바람을 잡아 놓았다. 헌데 동료의사가 마지막으로 CT촬영이라도 한번 받아
보자고 권유했다. 기꺼이 촬영에 응한 의사는 기겁했다. 촬영결과 우습게도 종양이 아닌 그저 한낱 위염 따위였던 거다. 한숨
놓은 동료 의사가 이렇게 충고했다.
“진짜 세상에 가장 강한 플라세보가 의사가 주는 암시라더니, 이건 정말 가장 강력한 역 플라세보네요“
이 이야기는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저자 박경철이 겪은 실화다.
당신이 당신의 지식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면, 그만큼 상황을 오해할 가능성도 커진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건 세상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도 그렇다.
역설적인 사실은, 무언가를 강하게 믿는다는 건 그 반대의 것을 완전히 불신한다는 거다.
우리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벗어남과 동시에 어느 지식에 속박되어버리고, 지식이 쌓이면서 자기가 믿는 것 이외의 것은
불신하게 된다. 그래서 편견과 아집은 무식한 사람보다 좀 배웠다 하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아무것도 몰랐던 옛 시절로 한번쯤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잃어버린 순수함을
다시 찾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연애 한번 못 해본 초짜가 카사노바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연애초보의 지식은 전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연하다.
당신의 연애패턴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이제까지 당연한 패턴이라 생각했던 것이 당신을 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5년 전에나 통하던 작업방식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거나, 여자는 항상 이벤트를 좋아한다며 항시 색다른 이벤트거리만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작업 방식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다른 면도 놓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당신은 다양함을 잃고 있다.
그래서 나이트를 다니던 사람은 클럽보다 나이트가 점점 익숙해지고, 채팅을 하던 사람은 헌팅보다 채팅이 편하다.
작업 효율성을 떠나 자기만의 구장을 벗어나면 누구나 불안해진다. 그리고 자기가 하던 방식을 벗어나면 두려워한다.
성숙이라는 건 세상사가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닫는데서 시작한다. 늘 확신에 차 있던 예전의 자신이 부끄러워
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
나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고, 세상은 넓디넓다는 걸 인정한다면 이제 한 걸음 나아간 거다.
작업에도 다양함이 있고 여자도 다양하다. 다양하기 때문에 배움을 멈추어선 안되고,
배움을 멈추는 그 순간 당신의 연애사에 더 이상 진보란 없다.
당신은 당신의 한계를 인정해야만 한다. 사실 우리 마음은 너무나 연약해서 남의 의견에 쉽게 휘둘리기도 할 뿐더러,
그렇게 휘둘리는 자신의 줏대 없음이 너무 싫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피하지말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연약한 자아를 순순히 인정한 다음에야 울타리를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다.
자기가 무얼 모르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만큼 현명한 사람은 없다.
혹시 당신, 남에게 충고 해 주길 좋아한다거나 스스로 이론엔 빠삭하다고 느끼는가?
내가 아는 바로 충고하길 좋아하는 사람 치고 성장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자기 울타리 안에 꽁꽁 갇혀있어 벗어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자기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 혼자 끙끙 앓아대며 관련 이론은 섭렵하지만, 그 반대 이론은 완전 쌩 무시한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감이 하늘에 차서 연애에는 어느 정도 달통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혹은 이런 이론 따위나 다른 사람의 스킬을 두고 쓸모없다느니 허접스럽다느니 배우길 기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당신, 자존심의 상처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없다며 합리화 하는 건 아닌가?
왜냐하면 배우기 위해선 자기가 모자라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인정해야하니까 말이다.
당신이 원하는 건 단지 여자 잘 꼬신다는 ‘칭찬’인가 아니면 ‘진정한 유혹자’인가. 무얼 택할 것인가.
자존심을 버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멈춰선 채로 남들 칭찬만 들으며 자위만 할 것인가.
허나 신기하게도, 자존심을 버리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내 안에 넘쳐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커지고 넓어지는 게 마음이니까.
작업꾼은 당신 혼자가 아니다. 당신보다 앞선 사람은 분명히 있다.
고집을 한 풀 꺾고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다보면, 당신이 섬길만한 스승이 반드시 있다. 그에게 배우라. 작업꾼이 되는 가
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런 사람에게 직접 배우는 거다.
그래도 당신이 최고라 생각된다면, 당신과 대등할만한 능력 갖춘 자도 있을 거다. 그럼 그와 함께하라.
당신이 진정 원하는 건 여자를 유혹하는 거지, 희대의 작업꾼으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잖은가.
홀로 고민하지도 말고, 책이나 세미나 동영상도 던져버리고 한 번 쯤 남에게 직접 배워보라.
나도 내적인 고민들로 지인들과 내 고민을 항시 나누고 있다.
그러다 보면 정도 쌓이고, 굳이 해결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외로움은 덜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못난 남자다.
역설적으로 못난 남자라는 건 앞으로의 진일보를 염두에 둔 못난 남자라는 거다.
당신이 못난 남자라면 당신은 잘난 남자보다 몇 백배는 더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잘났기 때문에 아는 게 콩알딱지만한 남자.
못났기 때문에 매일매일 배워야 하는 남자.
명심하라. 당신이 원하는 건 진짜 ‘카사노바’지, ‘당신은 카사노바요’라는 칭찬이 아니다.
픽업 구루의 강연 중 마음에 와 닿는 대사가 있어서 하나 옮겨둔다.
"Would you rather be right and have nothing,
or would you rather be wrong once in a while, open your mind up and grow, and get the result that you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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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찬가지지만, 글을 올린 후의 반응이 무척 기대되네요. 이런 기대심리는 저도 어쩔 수 없나봐요..
피드백 주신 수많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이너게임은 마치겠습니다...
아직 보고 듣지 못한 분야가 많아서 좀 더 배운 후에 다시 찾아뵙도록 할게요.
그때는 좀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