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Kirth 작성일 11.09.19 16: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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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습니다.

 

"어디냐?"

 

수업이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죠

 

제대 후 복학...

 

아직 학생이라는 것에 적응이 잘 되지 않을 무렵이었죠

 

사귀던 여자친구도 없었고... 나름 자유랍시고 싱글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사실 여자친구를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그렇게 안들던 시절이죠

 

"어디긴 어디겠냐. 과 건물에 있지. 수업 끝났어?"

 

"그려, 비도 오는데 막걸리나 한잔 하러가자"

 

"나 아직 수업 좀 남았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

 

"그려 알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친구를 기다리는 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도서관으로 올라갔습니다.

 

공부를 오래할 것도 아니고 그냥 서고 근처에서 책이나 꺼내 읽을까 싶었죠

 

 

 "보자... 그럼 한 시간만 때울만한게 있나..."

 

그렇게 도서관 서고를 뒤적거리고 있다가

 

그녀를... 보았습니다

 

살짝 젖은 머리, 동그란 눈,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녀

 

리포트용 자료라도 필요했는지 친구와 함께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죠

 

잠시 저도 모르게 그녀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와 눈이 마주쳤죠

 

갑자기 그녀의 친구가 저에게 다가옵니다

 

"저기요"

 

그녀의 친구는 목소리를 낮추고 저를 불렀습니다

 

"네?"

 

"저 신입생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이 책 빌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신입생...

 

그 당시 02학번인 그녀들은 너무나 귀여운 느낌의 꼬마들 같았습니다

 

반대로 예비역이던 저는 아저씨처럼 보였겠지요

 

"아.. 그럼 학생증 보여주고 대출해 가시면 되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가는 그녀의 친구와 몇 발자국 뒤에서 이 쪽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렇게 둘이서 도서관 밖을 나갔습니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저는

 

그녀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불쌍한 예비역에게 내려온 하늘의 선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저기 잠시만요"

 

그녀들이 뒤를 돌아봅니다

 

"저기.. 혹시 헌팅 당해봤어요?"

 

"네?"

 

"헌팅 당해 봤냐고요"

 

"아니요"

 

"그럼 제가 그 쪽 신입생 분들 인생 최초로 헌팅하는 사람이 되겠네요"

 

둘이 픽 웃습니다

 

"저희는 두 명인데 그 쪽은 혼자잖아요"

 

"30분 뒤에 한 명 더 올거에요. 제 친구가 저보다 훨씬 잘 생겼어요"

 

그녀는 귀가 빨개졌습니다

 

내가 너무 들이대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어디 과 다니세요?"

 

"국제통상학부에요"

 

"죄송한데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조금 이따가 전화 드릴께요"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날 저녁 친구를 대동해 그녀를 다시 만났고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신입생이지만 재수를 하고 들어와 다른 학생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둘이서만 붙어다니고 학교에서 만큼은 베스트 프렌드라고 하더군요

 

활달하고 잘 웃는 그녀의 친구와는 달리

 

그녀는 말도 없고 조용했습니다

 

그러다 가끔 쓸데없는 농담에 웃어주는 그녀를 보며 저도 모르게 자꾸 그녀를 웃게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녁자리가 끝나고

 

그녀를 데려다주려고 일어섰습니다

 

"제가 집까지 모셔드릴께요"

 

"네? 안그려서도 되는데..."

 

"안되요. 누가 중간에 물어가면 어떡해요"

 

그녀는 또 웃어줍니다

 

그렇게 만난 그녀는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까지 제 여자친구가 되어 주었죠

 

월드컵이 시작하기 직전...

 

월드컵의 열기가 한참 고조되던 그 때

 

그녀는 휴학을 하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날아온 장문의 메일...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 더 공부를 하고 싶다던 그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하던 그녀

 

그래서 매정하게 모든 걸 끊어버리고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답 메일을 보냈죠

 

열심히하고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해... 그 해 봄에 만났던 그녀는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저는...

 

월드컵 기간에 길거리 응원가서 다른 여자친구를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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