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엔 고유 소음… 국적 바로 노출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잠수함은 일본산
기사입력 2008-03-22 15:47 | 최종수정 2008-03-22 16:06
지난해 12월 독일 잠수함 제조업체가 해군에 인도한 최신형 214급(1800t급) 1번 잠수함인 '손원일함'이 소음 등으로 일부 작전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수함은 소리로 적에게 추적되기 때문에 소음이 크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본지 3월 15일자 보도
◆잠수함, 침묵하지 않으면 죽는다
'침묵하라, 그것만이 살길이다!'
안병구 예비역 해군준장이 최근 펴낸 '잠수함, 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는 책에서 잠수함과 소음과의 전쟁을 묘사한 대목이다. 안 준장은 우리 해군의 독일제 209급 잠수함 1번함인 장보고함 초대 함장을 지냈고 그 뒤 잠수함 전단장까지 역임했다.
잠수함은 소리를 내면 적에게 발견돼 어항 속의 붕어 꼴이 된다. 그래서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한다. 잠수함의 소음은 네 가지 종류다. 스크루에서 나는 추진음, 함내(艦內) 장비에서 나는 기계음, 바닷물을 가를 때 나는 유체음, 승조원이 움직이며 내는 소음이다.
◆소음 없애려 동원된 첨단 과학
요즘 잠수함은 스크루의 날개 수를 종전의 5개에서 7개로 늘리고 형태도 부드럽게 물을 밀어낼 수 있게 특수 굴곡형으로 바뀌었다. 내부 소음을 없애기 위해 '쇼크 마운트(shock mount)'라는 충격 흡수장치도 설치했다. 특수고무로 x자형이나 h자형인 이 장비는 금속과 금속 연결 부위에 장착된다. 1990년대 초 209급 잠수함 1번함인 장보고함을 독일에서 인수하는 도중 최종 단계에서 이 쇼크 마운트가 깨진 게 발견돼 소동이 벌어졌다. 승조원들은 밑창이 부드러운 '잠수함화'를 신는다. 말을 하지 않고 수기(手旗)로 의사소통을 할 때도 있다.
◆잠수함의 역사는 소음과의 전쟁사
잠수함은 원래 필요할 때만 잠항(潛航)하는 배였다. 그러나 2차 대전 후엔 필요할 때만 수면 밖으로 나오는 배로 변했다. 수중에서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 발전기를 가동해 잠수함의 디젤 전지를 충전하는 '스노클 시스템'이 개발된 것이다. 잠수함이 물 밑으로 사라지자 사람의 눈이나 레이더가 무용지물이 됐다. 물속에선 레이더파가 힘을 쓸 수 없어 잠수함의 소음만이 추적 단서가 됐다.
잠수함을 찾는 수단은 소나(sonar:sound navigation and ranging)라 불리는 음향탐지기다. 그러나 음파로 바다속 잠수함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음파는 수온이 낮은 곳으로 꺾이고,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에서는 물 덩어리가 잠수함처럼 비치기도 한다. 바다에는 파도와 해류 소리, 상선·어선이 내는 소리가 섞여있다. 이 속에서 잠수함을 찾는 것은 '시끄러운 디스코텍에서 혼자 카세트 녹음기로 명곡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있다.
◆잠수함 소음은 인간지문과 같다
잠수함의 소음은 사람 지문처럼 고유의 특성이 있다. 러시아 잠수함은 미국 것보다 소음이 크다. 중국 잠수함은 시끄러울 정도다. 일본 잠수함은 세계에서 가장 조용하다. 원자력 추진 핵 잠수함은 추진기관 특성상 디젤·전지로 추진되는 재래식보다 소리가 크다.
미국의 공격용 핵 잠수함 '로스앤젤레스(la)'급(級)은 초기형이 120㏈(데시벨) 정도로 재래식 잠수함 수준이다. 중국의 주력 공격용 핵 잠수함 '한(漢)'급은 140㏈로 '깡통'급이다. la급 잠수함이 조건만 좋으면 500㎞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한' 급의 소리를 잡을 수 있다.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탑재 구형 핵 잠수함 '양키'급은 135~140㏈이었지만 양키급을 개선한 '델타Ⅲ'은 125~130㏈로 줄었다. 영화 '붉은 10월호'의 주인공인 세계 최대의 핵 잠수함 '타이푼'급은 125㏈ 수준으로 알려졌다.
우리 해군 주력 잠수함인 209급(총 9척 보유)은 재래식 잠수함 중 조용한 편으로 소음이 100~110㏈ 수준이다. 이는 209급이 2~3㎞ 이내로 접근했을 때에야 겨우 소리를 잡아낸다는 뜻이다. 미국의 최신형 공격용 핵 잠수함 '씨울프'급과 '버지니아'급의 소음은 209급과 비슷하다.
우리 해군이 차기 주력 잠수함으로 도입 중인 214급은 209급을 개량한 것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해군에 인도된 214급 잠수함 1번함인 손원일함의 소음이 독일 제작사인 hdw사가 제시한 기준치를 초과했다. 손원일함의 소음 기준치는 209급의 100~110㏈ 이하여야 했지만 특정상황에서 기준보다 40㏈ 가량 높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소음이 40㏈이나 높아졌다는 것은 원래 목표치보다 8배 이상이나 먼 거리에서 상대에게 탐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