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쪽수가 문제는 아니야..

건공이 작성일 09.06.01 16: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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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인 1952년 1월, 세계 최강의 미 공군이 500여회의
출격에도 불구하고 폭파하지 못한 철교가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평양~덕천간 평덕선과 평원선이 지나는 승호리 철교였다.

 

이 철교에는 대공화기가 2중, 3중으로 포진하고 있어 최신예 전투기로
무장한 미 공군도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미군은 한국 공군에
파괴임무를 위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공군은 미 공군의 낡은 F-51 무스탕 10대를 지원받아
일본에서 1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출격, 북한군의 전차부대를 보란듯이
격파해 우리 공군 최초의 기념비적인 출격기록을 남기며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임무를 부여받은 우리 공군은 3대를 1개편대로 하여 3개편대가
출격했다.

 

조종사들은 출격 전날 밤 손톱과 유서를 남겨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사생결단을 했다. 1952년 1월 15일. 제1편대를 제1진으로 하여
제2,3편대가 시차를 두고 발진했다. 이들은 이미 유서까지 남기며 죽음을
각오한 터라 미군이 상상할 수 없는 초저공비행으로 철교를 폭파하고
주변의 대공화기 진지도 쑥밭으로 만들었다.

 

최신예기로 무장한 미 공군이 500여회나 출격하고도 폭파하지 못한
승호리 철교를 무스탕 9대가 모두 폭파하고 무사히 기지로 돌아옴으로써
공군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이때 강릉기지에서 이들을 기다리던 초대 공군참모총장 김정열 장군은
책임을 완수하고 돌아온 조종사들을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한 미 공군은 ‘한국 공군이 설마’하고 믿지 않다가 항공사진을
찍어 폭파를 확인한 후에야 경탄했다고 한다. 오직 구국일념 하나로
하늘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가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요
참 군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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