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교도대이야기 9부

건데기만세 작성일 12.06.21 17: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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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건데기만세 입니다.
소수분이라도 저의 글에 관심가져주시고 답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번회는 군대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현장감을 살려 대화체를 사용하니 양해 바랍니다.

2002년 3월.
아침에 부모님께 큰절하고 논산훈련소 신교대 운동장에 삼삼오오 몰려드는 사람들사이에 파묻히며,
그래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전역하면 꼭 여자친구하고 결혼부터 해야겠다라고
어린마음을 먹고 있었어.

군대 가기 6개월전,
분명히 나는 군대를 가버릴 몸이니까
절대 나한테 정 주고 마음주지 말라고,
그냥 후배로만 남아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했지만,
오빠 말고는 학교에서 정 붙힐 곳도 없다며 매달렸던 그 친구.
유난히 심한 공주병덕에 첫번째 씨씨였던 남자한테 모질게 버림받고,
그 남자놈이 은밀한 연애생활의 일거수까지 다 까발리는 바람에,
세상에서 가장 음탕한 여자으로 전락해버린 그 여자친구.
둘이 좋으면 여자가 먼저 리드해서 옷을 훌러덩 벗어 재낄 수도 있지...
여자친구가 씨씨였던 그 커플은 유독 아꼈던 새내기 커플이였는데,
그렇게 지저분한 뒷모습을 보이니,
남자놈보다 학교생활이 어려워 지는 그 여자친구가 불쌍해 보였고,
연민으로 이것저것 신경써주다보니 정이 들어버려 군대간다고 내치기도 힘든 상황..

"6개월 만이라도 남자친구 하자"
라는 그 친구의 말에 너무 쉽게 녹아버렸고,
왕따당하는 그 여자친구와 덩달하 따돌이가 되버린 나는
오히려 남눈 의식없이 한학기 내내 둘만 뜨겁게 사랑했어.
부끄럽지만,
여자의 알몸을 처음 본것도 그친구,
여자의 체온을 처음 느낀것도 그친구,
여자와 이틀밤을 둘이서만 보내본 것도 그친구였어.
서로 집이 멀었던지라,
입대 삼개월전에 그 친구가 있는 지방도시에 내려가니,
자기 남자가 자기보러 몸소 먼길 와준다고,
외박도 안되는 엄격한 집임에도 불구하고,
방까지 따로 잡아놓고,
꾀제제한 모텔방에다가 바리바리 싸들고온 술안주로 술상 차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다소곳한 모습으로 기다려주던 착한 여자친구였어.
물론 약간 오글거리는 과장된 애교가 좀 부담스럽긴 했어도,
뭐 나한테 이쁘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뭐가 싫겠어.
그렇게 정신없이 연애질 하다보니,
어느새 입대 날짜 다가오고,
평소 우리 커플 이쁘다고 밥도 사주고 아껴주던 기숙사 패거리 예비역 형님들에게
"나없이는 살아도 외로움은 못참는 애니까 좋은 남자 생기면 방해하지 말아줘요"
라고 당부해놓고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쿨한척 입대를 했지.

입대하니,
나란 호로자식은 부모님 생각보다,
항상 나한테 딱 붙어 매달리며,
뜨겁고 싶다고 속삭이던 그녀 생각만 더 앞서고,
말로는 기다리지 말라고 쿨하게 들어왔지만,
만약 기다리게 되면 나하고 결혼하자고 편지를 조심조심 써내려가고 있었어.
틈만나면 편지쓰던 나와 달리,
그녀의 편지는 그렇게 많이 오질 않더라고.
물론 내용은 보고싶다 사랑한다 하지만,
내 욕심이 지나쳐서 인지 그 양이 많지 않아 섭섭했지만서도,
그 짧은 기간에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려니 하며 훈련소 생활 적응하려고 애썼어.

훈련소 6주, 후반기 교육 2주동안 편지는 딱 세통왔어.
편지내용이야 "사랑한다"라는 말과 "보고싶다"라는 말로 채웠지만,
편지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은 내 마음의 반도 안될만큼 애절하지 못했어.

그 편지의 수량도 수량이지만,
편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뭔가 의무적이였다고나 할까...
난 너무 보고 싶어서 정말 미칠 것 같은데,
목소리만이라도 듣게되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입대 전에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이 친구가 나를 너무 좋아해줬는데...

교도소에 도착해서 고참들의 모질고 거친 구타와 얼차례를 받으면서도,
이 친구와 언젠가 전화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고,
드디어 첫 통화 하던날...
"나야"
"어? 어..... 오빠..."
느낌이 좋지 않았어. 굉장히 의외라는 그 느낌.
전화가 올지 몰랐다는 그런 느낌을 딱 받는데..
막사의 왕고가 시켜주는 전화였고 오래 할 수도 없고 해서 무슨일 있는지 물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무슨일이 있다고 생각했어.

눈치없는 왕고는 어서 사랑한다고 크게 외치라면서 다그치고,

어쩔수 없이 "사랑한다!"라고는 했지만,

"나두"라고 하는 그 목소리는 힘이 없었어.

 

그리고 며칠 후,
궁금해 미칠 것 같던 여자친구의 시덥잖은 그 목소리.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편지 한통이 왔어.
편지에는 "반송"이란 마크가 찍혀 있었고,
반송처는 후반기 교육을 받았던 장소,
여자친구가 후반기 교육처로 보냈던 편지가,
교도소로 반송되어 온 것이였어.

속주머니에 일단 고히 모셔두고,
하루종일 두근거리며 근무서다 화장실 4사로에 짱박혀서 꼬깃꼬깃 펼친 그 편지의 내용.

학교에서 둘만 뜨겁게 연애하던 그시절,
친구 기숙사의 방장형.
유독 우리커플 많이 챙겨주던 그 형들 패거리.
내가 술먹고 속앓이 한다고 그 형방에 대자로 뻗어 헛구역질 해대고 있으면,
내 머리맡에 소젖 한사발 따라 놓고 먹으라고 편지 써서 나가주던 참 선한형.
넌 군생활 잘할테니까 걱정말라면서 막내라고 이것저것 신경써주던 형과 형친구들...
내가 입대하기 전날 전화해서,
"만약 여자친구가 나때문에 많이 힘들어서 다른남자 만나면 형이 잘 판단해줘요"
"뭘 판단해"
"나쁜놈만 아니면 돼요. 형처럼 착한 사람이면 돼요.."
이말이 분명 화근이였을 거야.
가증스럽게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눈물을 일부러 떨궈 번진 그 편지엔,
그 착한형이 너무 잘해줘서 오빠를 놓아주겠다고,
오빠 군대갈 때 얘기했던 것 처럼,
나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좋은 사람 만났다고 눈물 젖은 내용 적혀있더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탈영자들이 그냥 정신병자인줄 만 알았었는데,
그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처음 이해하는 순간이였어.
막사에서 한참 구타가 심할 때였는데,
맞아도 아프지도 않고,
더 때려라 맞아 죽게라고 자포자기까지 드는 심정인데...
정말 심하잖아,
4주만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건.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나 그렇게 아껴주고 챙겨주던 그 착한 형이랑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여자친구도 잃고, 좋은 사람도 잃게 되고...
그런데 바보같이 전화해서 물어볼 수는 없었어.
내가 뱉었잖아.
내가 괜히 쿨하고 멋있는 척 하려고 쓰잘떼기 없는 말 뱉은 거잖아.
그래서 둘이 잘된거고,
난 버림받은거고...
전화할 기회가 생겨서 형들 패거리 중 한명에게 전화했더니,
ㅎㅎㅎㅎ 둘이 또 왕따됐데.
어째 너는 남자만 사귀면 주변사람과 그렇게 적이 되니.
불쌍한 너는 왜 항상 그렇게 어렵게 사람을 사랑해야만 되니...
나라도 그냥 놓아주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햇어.
나라도 그냥 행복하라고 빌어줘야 한다고 또 멋있는 척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

몇주는 정신 줄 놓고 생활하다가,
슬슬 충격과 공포에서 한발짝 띄어 놓을 수 있게되고,
가슴에 한품은 남자가되어 속으로 참고 삭히면서 시간을 보냈고,
첫휴가 때도 전화도 안하고 그냥 그냥 친구들과 술이나 퍼먹고 재입대 했어.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노래가사처럼 흉터가 됐는지 잊혀지지가 않는거야.
그냥 가서 욕이라도 한푸데기 할까,
아니 그냥 두사람 잘 되라고,
나 때문에 부담 갖지 말라고 형한테 얘기해줄까...
참 고민 많이 했어.
비가 추적추적 오는 감시대위에서,
아무 걱정도 없는양 자기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내가 이별한 이 황당한 스토리의 드라마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세상사는 것의 아주 작은 일부겠지.
내가 지금은 비록 많이 아프지만,
일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겠지.

2002년 3월 입대후 8개월이 지나 일교 정기휴가 14박 15일을 받았어.
상처도 흉터도 전부 사라질 때 즈음,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좋은 기억을 줬던 형들마저도 등돌리는 것이 어렵고 싫어서,
학교 기숙사를 찾아갔어.
여자친구와 바람난 그 형은 없지만,
그 형 패거리들은 나 휴가나왔다고,
족발, 치킨, 막걸리, 맥주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한상차람 해서 준비해줬고,
그렇게 술먹고 취하기 시작했지.

한참 술을 목구멍을 부워 들이키고 있는데,
형들이 내 눈치를 자꾸봐.
아마 내 여자친구를 앗아간 그 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할테고,
그 소식에 얼마나 힘들었냐고 묻고 싶었겠지.
"둘이 잘 살죠?"
느닷없는 내 물음에 형들이 우물쭈물 대더라고.
"그 여자애... 휴학했다"
휴학? 왜? 둘이 잘 지내서 옹기종기 학교 다니다가 졸업해야지? 왜?
휴학이란 말에 머리가 복잡해 지기 시작했어.
주변사람들이 그렇게 괴롭혔나?
하긴 내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그 친구들이 그 여자애를 많이 안좋게 봤겠지...
"걔.. 임신했다.."
이런 계란말이 조카 신발끈에 들어붙는 3류영화 스토리틱한 상황은 또 뭐냐..
임신까지 하셨데.
근데.. 혹시 내 아인가?
내새끼는 아니겠지?
"걱정마라. 임신 6주란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하얀헐크를 줄여 백크라고 불리는 3학번 위 형님이 말했어.
소주건, 맥주건, 막걸리건 있는데로 마셨어.
빨리 이 상황을 잊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거든.
다 잊고, 다 잊었다고, 다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았나봐.
머리에 기억은 잊었는데 몸의 기억이 못있는 건지,
자꾸 몸이 으슬거리며 몸살기운 오르듯이 열이나고 힘들고 현기증이났고,
언제 쓰러져 잤는지도 모르게 그날은 잠이 들었어.

다음날 아침,
역하게 콧구멍으로 올라오는 온갖 술냄새 때문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학교앞 슈퍼로 터벅거리며 걸어나갔어.
얼마나 쳐잤는지 학생들이 전부 점심먹으로 나온 시간이더라고.
다행히 비가 오고 있어서 햇살이 뜨겁지 않아 술기운이 심하게 오르진 않았지만,
그때까지 술이 덜깨서 온몸에 술냄새가 장아찌마냥 쩔어서 우산살 휘어진 골프우산 어깨에 이고
터벅터벅 걸어 슈퍼앞 횡단보도에 서 있었지.
어? 정말 뻘쭘한 우연이였어.
횡단보도 2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서로 마주친 그 시간.
노란 우산도 기억나.
친구와 서 있는 그 친구와 마주보는 그 짧은 시간...
안경을 안쓰고 있었는지 그 형체가 뚜렷하진 않아 처음엔 환각인가 싶었어.
근데 내가 어떻게 잊었겠어.
6개월동안 맨날 나를 기다리던 그 장소에서 그 형체로 서 있는 여자인데.
나를 보고 있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내 표정은 분명히 기억나.
울었거든.
비오는날 얼굴도 새카만 키도 덩치도 이따만한,
머리도 짧고 겨울날씨에 반바지 입고 있던 왠 군바리 같은 놈이,
청승맞게 횡단보도에서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무언가 바라보며 울었거든.
영화에서 처럼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눈물도 아닌,
콧물을 있는데로 훌쩍거리며,
손바닥으로 눈물과 콧물을 계속 닦아내며,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변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울었거든.
내가 왜 눈물이 났을까.
신호가 바뀌어서 반대편 사람들이 계속 건너오고 있었고,
그 여자친구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눈물이 멈추지가 않아.
어제 술이 떡이 되서도 울지 않았던 것 같은데,
추억이 도화선이 되서 내 머릿속에 있던 좋은 일들만 터뜨린 것 같았어.
정말 이러면 안되는데,
그 친구를 만지고 싶었고,
데리고 어디론가 가서 안고 싶고 이야기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친구가 그냥 옆을 지나쳤어.
그냥 옆으로 모르는 사람인양 지나쳤어.
못봤을 수도 있고, 못봐야될 사람인양 지나쳤어.
놓치면 안되는데..
뭐라고 말을 해서 얼굴이라도 더 보고 싶은데,

등신같이 울고만 있으니 돌아보고 부를 수도 없어서.
그냥 그자리에 서서 계속 울기만 했어.

"오빠.."
칙칙한 그 날씨에 청승떨고 있는 내 등뒤에서,
8개월전 나를 항상 부르던 그 목소리를 들었어

 

 

 

길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2부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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