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우리들의 일그러진 역사 - '한반도'

아스트랄 작성일 06.07.13 15: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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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어중간


한반도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서론에 앞서 20자 평을 하자면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다만 국내용 영화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강우석 감독은 자신의 색깔로 이제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우리 나라 역사의 어두운 면들을 부각시키며 꼬집으려나 하는 예감도 들더군요. 솔직히 앞으로 정치적 태클이 걸리지 않을까 심려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실미도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이 어떤 사회적인 현상을 유발시키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영화의 완성도라는 면에서 보자면, 이전의 실미도보다 한참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배우들은 오랜만의 연기인지 간혹 잘나가다가 어색한 면들을 보이고,
연출진들은 대본 쓰다 졸았는지 너무 틀에 박힌 3류 연속극같은 장면을 수차례 연출하며, 정치인들 중 일부를 아직도 정의와 애국심이 넘치는 열혈지사들로 묘사해 놨습니다.


전 중견 배우들의 이름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영화 작품에 얼마나 어울릴 수 있는 배우가 되는가를 높이 평가하지.
그런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문성근씨는 대사가 좀 더 자연스러웠다면 어울렸을텐데... 존재감이 희미해서 아쉬운 면이 들더군요. 악역에는 어울리지 않는것인가 걱정되었습니다.
차인표씨도 제가 보기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냥 악역으로 밀고 나가는 역이었다면 그 퀭해진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로 주위 배우들을 질식시킬 수 있었으련만...
안성기씨는 실미도와 다름없이 정의의 용사같은 포스를 팍팍 뿌려댔지만 워낙 연기력이 받쳐 주시는 분이라 불만이 없었고, 조재현씨같은 경우는 후반까지 포스를 뿌려댈 기회가 없어 좀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연출.

보는 내내 상상이 가는 판타지적 전개들이더군요.
차라리 노회한 정치가들간의 암투로 그려놨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정치적 문제에서 선악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이익만이 존재한다는게 제 신념이라서 정치권에서 선악이 극명하게 갈려버린 이 부분에서 저는 '공공의적'을 보고 느꼈던 그 리얼리티를 느낄 수가 없더군요.

인과관계에서는 마치 판타지 소설 주인공들처럼 우연을 필연으로 가장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180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중간중간 긴장감이 끊어지는 연출도 보였습니다. 블록 버스터 흉내도 내보려고 폭발신과 함대 배치같은 부분도 있었지만 불발로 끝나, 결국 영화 끝날 때 즈음엔 왠지 모를 답답함과 찝찝함 마저 느꼈습니다. 마치 보다 말았다고 해야 하나. 마지막 안성기씨의 대사가 통쾌하긴 하지만 긴장감 조성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맡은바 임무를 다 해낸건 결국 '삽질신'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리얼한 근 미래의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첨단 관제실이나 즉석에서 초고속으로 금속 성분을 조사해 내는 첨단 과학 장비의 등장 같은 부분도 기술과 인재 유출이 심각한 요즈음 들어서는 왠지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더군요. 원시적인 삽질이 영화를 완성했다면 첨단 장비가 그 들러리를 섰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마무리의 허술함은... 뭐, 말하지 않아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순간 화면이 멈춰서 관객들 전원이 필름에 에러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실미도에서의 연출력은 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 강우석 감독님.

보는 내내 영화의 장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중간한 드라마, 어중간한 블록버스터, 어중간한 심리물?

짧게 영화를 압축하자면, '일본이 왱알거려서 입다물게 해주려고 땅파서 증거 내미는'내용의 영화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물론 의도는 실패했지만) 친일파들을 표면으로 끌어 올린 것이고요.



다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본다면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는 영화같았습니다.
외부로부터 핍박받는 지금, 할 말을 하고 국회의 잡소리를 휘어잡는 무궁한 포스를 뿜어내는 대통령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외교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 일본은 약삭빠르게도 동해가 아닌 일본해의 타당성에 대한 동영상을 제작해서 배포하고 있더군요. 대단한 기회주의자들이라는 것과 함께 일본 국회의원들은 자기나라 정치 하나는 확실히 해 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들도 욕을 먹을지언정 국가 이익은 확실히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 뜨고 빼앗기는 꼴을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도 국수주의적, 우익적 영화 한편 못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남의 나라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일본이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겠죠. 국내용으로 끝나더라도 이런 자극제적인 영화 한편씩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져가는 안보 의식을 고양시키는데에 좋은 활력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조선 민족의 찌질함과 일본해는 당연한 것이라고 왱알거림을 멈추지 않는 일부 네이버 찌질이들을 보면 속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공공의적이나 실미도같은 명작들에 비한다면 다소 리얼리티와 장르감이 떨어지는게 흠이었지만 180분을 투자하기엔 아깝지 않은, 한번쯤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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