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백수라 돈 몇천원이 없어 괴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중 아주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건지게 되었다.
어제 OCN에서 방송해 준 씬시티.
언젠가 본 기억이 났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개봉당시 상당히 나의 흥미를 끌었던 작품을 생각해 냈다.
이 영화의 장점은 몇번이고 칭찬해도 부끄럽지 않을 영상미가 있다. 스타일리쉬한 색채 대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마치 8,90년대 풍의 미국식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잔인하면서도 흑백으로 처리되어 원초적인 거부감을 덜었고, 강조할 부분에는 상대적으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스토리가 아닌 그 영상 속에 빠져들게 한다. 액션이나 느와르계 영화를 싫어하는 나의 누나마저 사로잡아 버린 영화. 그것이 쟁쟁한 배우나 뛰어난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그 독특한 영상미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 역시 컴퓨터 전원을 살포시 내려야만 했다.
그 뛰어난 영상미에 필자는 영화를 보다 순간 스토리를 잊어버린 황당한 경험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라면 세 주인공들간의 관계이다. 그들은 모두 씬시티의 어둠 속에 존재한다.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만난 적이 없다. 세 에피소드 곳곳에 유기적이지만 필연적이지 않은 만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색다른 기대와 즐거움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세 편 모두 주인공의 독백 형식으로 제공된다. 그것은 3편의 짧은 에피소드를 유치하지 않게 소화해 내고 영화의 깊이 역시 보장하기 위해 주인공이 사건의 전말과 이해관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덕분에 헐리우드에서도 드문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영상미 덕분에 묻혀버린 감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 역시 만화 원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들은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아니다. 씬시티에서는 너무나 흔한 스트리트 파이터, 사진작가, 그리고 정직한 형사이다. 그들이 나선 것은 위대한 사상이나 사회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대한 복수와 저항이 이들의 모토이며, 결국 드와이트를 제외하고서는 아름다우면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액션씬 역시 훌륭하다.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인 만큼 이 영화는 낚일 걱정없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걸 보장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신은 마브가 농장으로 복수하러 갈 때 휘발유통을 던지던 장면과 하티건의 마지막 장면.
하지만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피해갈 수 없는 단점도 있었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드와이트의 경우, 그가 사진 작가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었다. 왜 저렇게 나서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인터넷에서 시놉시스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하티건 역시 마찬가지. 만화 원작이라 관객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지식을 요구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장면이 기대가 되는 부분에서는 너무 빨리 사건이 종결되어 페이스가 지나치게 빠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에피소드간의 단락 구분이 모호해 바로 전 에피소드에 대한 여운을 바로 지워버려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옴니버스라는 걸 모르고 처음보는 사람에게는 다소 황당스러운 전개. 주인공의 독백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한순간 스토리를 놓쳐버릴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