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에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면?' 이러한 가상설정은 당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 조사까지 받는 사람은 소수다. 물론 당신도 그 소수가 될 수 있고, 소수 피해자로 인해 그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영화 '프리즈 프레임'은 바로 그 '소수'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백하고도 결백함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을 24시간 프레임 속으로 가두는 '용의자'아닌 용의자. 주인공은 그 프레임을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완벽의 도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디오 테잎이 그의 알리바이는 증명해 줄 수 있지만, 결백과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완벽한 도구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 용의자 선상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은 개인이 자신을 24시간 녹화해도 불가능 한 것이다.
주인공은 '용의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대명사 칭호를 얻었다는 억울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억울해 하는 것은 그 칭호뿐만은 아니다. 법은 분명 그를 '무죄'라 판결했지만, '용의자'라는 칭호는 모든 살인 사건에 대해 잠정적 '살인범'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영화에서 보여준 이러한 상황설정은 분명 거짓, 픽션이 아니다. 살인 사건이 줄을 잇는 미국은 물론 한국도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물론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의 결백은 결국 '프레임'이 증명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용의자'는 주인공과 같은 생활을 해야만 미스테리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인가? 아직도 우리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박현규(박해일)를 살인범이라 생각치 않는가?
영화는 나타내고 있다. 그 소수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개인이 감당하기엔 '용의자'라는 칭호는 너무 버겁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