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장 전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lay_la 작성일 07.11.21 23: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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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you

뿌옇게 김이서린 차창에 비친 자신을 손가락으로 두들긴다 닦지도 않은 체 인사한다. 

전에 없던 자신이 또 한명 태어나는 순간이다.

극장 전과 극장 후.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당신과 보기 전의 당신.

그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홍상수라는 사람은 현실주의라는 이름에서 그 값을 확실히 하는 감독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한달 전의 극장전이다.

극장전이라는 제목부터 그럴 것을 예상했지만 도통 뭐가 뭔지 모를 일이었다.

영화가 보여주자는 것이 무엇인지.. 김상경의 마지막 읇조림처럼 결국 생각하며 살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홍상수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본 뒤 떠오르게 된다.

 

현실주의,현실을 모방하는 것은 간단 할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라는 매체는 우리가 실제로 겪는 세상이 아닌 우리가 겪은 것을

복제 하여 혹은 그 바탕을 참조하여 만든 가상의 산물이 아닌가.

결국 한 번 걸러진 뒤에 태어난 모조품이란 것이다.

디테일이라고 할까 그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미미하고 흐릿하게 존재하는 실상의

끝자락들..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당위성이 그리는 곡선 그 완성점에서 자주 목격되는

부조리와 모순들, 극장 전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그 과정의 신뢰도라는 면에선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홍상수 감독을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 거겠지.

 

현실적이라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접하는 이로 하여금 실존적인 문제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떠오르는 감상들에 빠지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들은 장면 장면마다 어찌보면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할까?’ 라는 의문이 들만큼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남의 제사에 떡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이 쉬운만큼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하는 것 역시 쉽다.

홍상수는 영화 전반부에서 유지되는 관객의 확신을 조금조금 깎아 먹기 시작한다.

욕을 하고 말도 안된다고 열었다 닫던 입술은 혀는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즘이면 확신은 반의 반으로 줄어들고 만약 자신이 저런 상황이었다면

이란 의문이 머리를 친다. 머리를 치고 혼란에 빠지고 그리고 당신은 어느새 영화주인공과

자신이 많이 다르진 않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다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비극이며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돼지이다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돼지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겠다. 당신은 영화 속에서 5명의 돼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중있게 다뤄지는 인물만이 아닌 영화 전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돼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 5명은 확실히 우물에 빠진다.

인생을 살면서 예상하고 피할 수 있는 위험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삶을 좀먹고 고난을 불러들이고 그 쓴 맛을 입으로 흘려넣는 그와 그녀는 언제부터

우리 옆에 있었던가.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보다 더 그럴듯한 질문은 그는 왜 영화를 만들게 됐으며 도데체 뭘 만들고 있는걸까?

그 역시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오물들을, 현실이 남긴 자취와 흔적들을, 자신안에 담아두기 힘든 그것들을. 영화를 만들기 전과 만든 후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는 확연히 다르다.

완전히 다르진 않아도 절대 같다고 말할 수 없다.

 

극장전은 두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편의 여자 주인공이 같은 배우라는 것 말고는 사실 연관이 없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이런 말을 한다.

“여배우도 똑같은 여자예요”

“동수씨는 정말 영화를 잘 못 보신 것 같아요”

영화를 잘 못 봤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누구나 같은 느낌을 받고 같은 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영화가 삶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사한 모습은 자신의 삶과 만나

충돌하고 부딪히고 섞이고 때론 그런 것 없이 너무나 스무스하게 스며든다.

삶에서 맞닿은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지에 따라 영화의 의미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그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영화를 모방하고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도 알고 있다.

모르고 있지만 알고 있다. 그녀는 여배우고 그녀를 취한다고 해도 자신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그러나 우리는 쫓고 또 쫓는다. 자신이 어릴 적 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닮고 싶은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서.

 

현실과 가상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발은 굳는다.

그곳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해보라. 당신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가? 웃고 있는가?

비극이라면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에게 찾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희극이라면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에게 찾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극장전 마지막 대사를 떠올려 본다.

 

이제는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애.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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