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가 포함되니 원작소설을 알지 못하는 분은 알아서 백스페이스.
1. 가장 무서운 세상의 끝.
인간이 시력을 잃어버린다면? 이 간단한 문장을 바로 영화에서는 "세상의 멸망"으로 보여주었다.
하루를 무언가 빼고 살아본다고 생각해보자.
귀를 막고 하루를 산다는 것, 코를 막고 하루를 산다는 것, 말하지 않고 하루를 산다는 것, 누워서 하루를 산다는 것...
그러나 눈을 가리고 하루를 산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수많은 사람들, 어쩌면 전세계의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시력을 잃어버린다....
세상의 멸망에 괴물이 나온다던가, 소행성이 떨어진다던가... 상상을 할 뿐 실제 느끼기엔 참 먼 이야깃거리다.
그러나 눈이 먼다는 것은 바로 체험이 가능한... 정말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포라 할 수 있겠다.
2. 인간의 추악한 본성.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첫 희생자. 그 희생자를 처음에는 모두들 근심어린 눈으로 보는 듯 하다.
그러나 그 곳에서 직접 손을 내밀어 도와준 사람은 희생자를 등쳐먹기 위해 접근했었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 완벽한 약자의 입장에 놓이게 되고 자신이 순간 강자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이 든 사람은 그 약자를
부리나케 먹어치운다. 이 세상에 평등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 평등이란 그저 이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에는 이러만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강자가 된 사기꾼은 집까지 은근슬쩍 들어오며
마치 부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려 부인을 겁탈할 생각까지 한 듯 하다. 본인은 그 추악한 사기꾼이 집을 나가는 척 하면서
오히려 집 안에 있다가 부인을 욕보일꺼라 예상했었다. 비록 거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더욱 참혹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총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같은 소경들 안에서 군림하려는 자
가 나타나고, 전투가 벌어지고, 사람이 죽어나간다.
아무 필요도 없을 고가품을 식량을 미끼로서 추징하고, 약탈하는가 하면 여자들을 데려다가 욕보이며 욕망을 채운다.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본능을 사악하게 보여준다. 식욕, 성욕, 수면욕...
초반 수용소 내에는 그런 본능밖에 남지 않은 듯한, 마치 동물들이 모여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여기저기 오줌, 똥이 흩
어져 있고 그걸 밟으며 지나가며 그 위에서 잔다. 물론 옷도 필요없다. 아무도 보지 못하니까... 실제로 영화내에서는
옷이라는 건 아무 필요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참혹한 환경에서도 아무나 붙잡고 섹스를 하는 등 구역질이 나는
상황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평소에 장님이라는 이유로 약자에 있던 사람은 오히려 어둠에 익숙한 자신이 막 시력을 잃어버린 자들의 위에 군림할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보여준다. 그렇게 눈먼자들의 수용소는 추악함 그 자체로 물들어간다. 존엄성, 가치, 신념...
그런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3. 보지 못하는 군중안에서 볼 수 있는 한 사람.
그 와중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구라를 치고 들어온 여자, 의사의 부인은 끝까지 시력을 잃지 않는다.
보지못하는 자들 안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무한한 강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부인은
성녀로서 영화내에 그려진다...
부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남편과, 그 주변인을 보살핀다. 그러면서 수용소내의 참혹하고 끔찍한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며, 절망하고 좌절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부인은 강해진다.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알게 되며, 강자의 위치를 지배의 수단으로 쓰는게 아닌,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쓴다.
또한 부인은 자신이 강자의 위치에 있음을 숨긴다. 물론 극 중 몇몇 곳에서 자신은 볼 수 있음을 암암리에 상대에게 암시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을 특권으로 내세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부인은 주변의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한다. 바로 총을 든 남자가 여자를 바치라 할 때 자신이 앞장서서
몸을 버리게 되는 점.
눈이 보이는 그녀로서는 당장에 흉기를 들고 그 남자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를 위해 그녀는 희생한다.
헐리우드 영화속의 슈퍼히어로와 같은 설정이라 볼 수도 있겠다. 막강한 강자의 입장, 약자를 보살피는 마음, 약한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그녀는 모두를 구하며 영화 속 내내 고전한다. 자신 앞에 있는 현실속에 수없이 좌절하면서...
4. 세상의 멸망, 그리고 진정한 해피엔딩
눈먼자들의 도시는 눈먼자들의 세상으로 바뀐다. 세상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그 현실은 정말 처참하다.
식료품가게 근처에 가지 못한 자는 죽었다. 먹지 못하니 죽는 수밖에... 식료품 가게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직 식욕만을 가지고
끝없이 먹을 것을 찾으러 기어다닌다. 주인을 잃어버린 개는 시체를 뜯어먹으며 살고 있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자리에서 끊임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세상의 멸망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나 절망으로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부인은 끝까지 일행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한 일행을 씻기고... 음식을 하고... 부인의 집은 마치 지옥속에서 피어난 천국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첫 희생자가 시력을 되찾는다.
영화속에서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메세지를 던져주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5. 예술영화의 범주에 있는 "눈먼자들의 도시"...
본인은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현실감을 느꼈다. 그만큼 영화는 관객을 영화내의 상황에 동화시키고
감독이나 원작소설이 전하려는 메세지를 여과없이 모두 날려준다.
위에 글을 쓰면서 미처 쓰지도 못한 여러가지 고뇌와 아이러니한 상황, 참혹한 광경, 추악한 본성이 수없이 남아있다.
나머지 부분은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느껴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