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론
코엔형제의 명성이야 너무도 유명하지만, 코엔형제의 영화를 본 느낌은 대부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 재미없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감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화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쯤이면 뭔가 단단히 속은 듯한
찝찝한 기분을 맛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돌려서 말하자면, 역시 코엔 형제의 영화라는 말 되겠습니다.
대체 그 코엔 형제의 영화가 무엇이길래 이렇게도 재미없으면서도 명성이 자자할까요?
영화는 시각적 매체를 이용한 장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토리 텔링이기에, '플롯'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감독의 의도하고 있는 틀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고 캐릭터들은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감상자들은 그러한 감독의 의도에 따라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반전을 느끼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장르'가 생겨나게 됩니다.
슈퍼 히어로 물에서는 히어로의 배경, 악당의 등장, 시련, 부활, 헤피엔딩 이라는 전형적인 감독의 의도와
관객의 기대가 생겨나게 되며, 이러한 틀과 기대 속에서 관객은 '감독에 의해 의도되고 또 관객 스스로 기대한'
재미를 얻게 됩니다.
로멘스 물에서는 만남, 오해, 라이벌, 화해, 헤피엔딩 등등이 되겠죠.
어쨌든 이러한 '플롯'에 따른 스토리 텔링에 의해, 관객은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또는 너무 뻔하다는 불평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즉, '장르'라는 것을 통해 감독은 정해진 방법대로 영화를 만들고, 관객은 정해진 방법대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코엔형제의 영화는 이러한 '장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플롯'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코엔형제의 영화에서는 의도된 '놀라움' 도 '교훈'도 '감동'도 없습니다.
100년이 넘는 영화의 역사를 통해서 관객은 '영화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하게 되었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으례히 '놀라움, 교훈, 감동' 등을 기대하게 되지만, 그런것들이 없는 영화라니요.
그래서 코엔형제의 영화는
'아 재미없다'
는 영화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앞서 얘기한 '영화 읽기 방법'에 의할 때 그렇다는 것이죠.
코엔 형제가 '장르'의 비틀기의 대가라 한다면, 우리도 한번 '비틀린' 감상을 해 보기로 합시다.
2. 코엔 형제의 영화 읽기
코엔 형제의 영화는 '다마고치' 게임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피터 몰리뉴'의 게임을 연상시키기도 하죠.
다양한 케릭터를 모아 놓고서 '무언가'를 툭 던져 줍니다. 그리고 각각의 케릭터가 그냥 자기 마음대로
그 '무언가'에 반응하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느낌이란 것이죠.
케릭터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메이지도 않습니다. 스파이라고 해서 매력적이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할 필요도 없습
니다. 킬러라고 해서 레옹같은 특별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대충 주변에 있음직한 그저 그런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케릭터들이 따르는 단 한가지 룰이 있습니다.
'자기의 욕망에 충실할 것'
이란 것이죠. 모두 뻔한 케릭터 들이고 모두 뻔한 욕망이지만, '그 무언가'에 대한 이 케릭터들의 욕망은 모두
천차 만별입니다. 그렇기에 케릭터들 간에 오해가 발생하고 서로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립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누구의 욕망이 성취될지는 알수 없습니다. 모두가 실패할 수도 있고 모두가 성공할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가
성공할 수도 있겠죠.
코엔형제의 영화는 이겁니다.
다마고치 게임에서 스토리가 주는 감동, 놀라움, 교훈이 있나요? 있다면 다마고치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것
뿐이겠죠.
코엔형제의 영화도 '플롯'이 주는 감동, 놀라움, 교훈은 없습니다. 오직 각 케릭터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만이 존재합니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영화라는 것에서 기대하는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죠.
3. 번 애프터 리딩
이 영화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스파이' 영화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스릴도 멋진 총격전도 서스펜스도 없습니다.
그냥 주변에 있을법한 뻔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무언가(정부 비밀 문서라 오해되는 씨디 디스크)'를 놓고
열심히 각자의 욕망을 불사릅니다.
감동도 반전도 교훈도 없으니 그런건 애초에 기대하지도 맙시다.
그저 각자 자신의 욕망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케릭터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미집 같은 복잡한
관계만을 즐겨 보도록 합시다.
아, 반전은 있군요.
다른 영화에서는 '장르'를 형성하는데 아주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유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함에도,
결국 끝까지 그 배우들이 '어떤 특별한' 인물이 되지 않고 끝나 버린다는 점에서 말이죠.
4. 마무리
코엔 형제의 영화는 대부분 본듯 싶습니다. 하지만 '아리조나 유괴사건'과 '바톤 핑크'를 제외하면
'아 재미없다'
라는 감상이 먼저 나옵니다. 머리로는 코엔형제의 영화읽기를 이해하고 있지만, 저 역시 여전히 기존의 영화 감상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코엔형제의 새 영화가 나오면 항상 기대감에 부풀어 영화를 보게 되네요.
보고나면 또다시
'아 재미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벌써 다음 영화가 기대되서 두근두근 합니다.
참 이상한 감독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