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옛날에 다른 곳에 올렸던 글)
공부를 전문적으로 한 것도,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우연히 생각나서 올립니다.
-----------------------------------------------------------------
랜드 오브 더 데드(시체 시리즈 4편과 좀비 영화들에 대한 소고)
스포일성입니다.
(극장에서 보고 지난 번에 올린 글을 약간 수정,추가해서 올립니다. 영화 보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취향이 있는 것이니 너무 공격하진 말아주세요..^^;;)
저는 어떤 영화건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오히려 건지는 것이 많더군요.. 우선 영화를 영상미학 쪽으로 보시는 분들에게는 영화 초반부가 가장 인상 깊으실 것 같습니다. 기존 최근 영화들(시체들의 새벽, 28일후, 레지던트 이블등)에 나오는 좀비들의 행동양식에 익숙하시거나, 이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시는 분들은 다소 황당할 수 있을 겁니다. 시체 시리즈 말고..새벽의 저주 역시 각본 원작이 조지 A. 로메로였고. 이번 작품에선 새벽의 저주를 기획한 데니스 E. 존스가 다시 기획을 맡았다는 것을 보면, 영화 장면 중 비슷하다 싶은 느낌의 장면들도 보이기도 합니다. 시체시리즈를 접하지 못하고.. 새벽의 저주로 강한 인상을 받은 분들은 조금이나마 친근감을 느끼는 장면들(차량같은)이 등장하곤 하죠.
반면 기존 시리즈물을 보셨거나, 조지 A. 로메로 특유의 사회적 풍자의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은 이 영화에서의 시체들은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오늘날(TODAY)"엔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보실 겁니다. 분명 조지 A. 로메로는 좀비 영화의 대부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번 작품은 사회적 풍자나, 고어적 분위기에 머물기만 하지 않고.. 영화 중간 중간의 음악이나, 장면들이 상당히 대중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내려는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시대적인 대세가 아닐까 싶네요..어쩌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 속 메시지를 이해하길 원했고. 한 편으로는 이미 그도 유명인사가 되었을수도 있습니다. 노력은 많이 했지만..좀 부족하다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엄청나게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특수효과나 스케일면같은 부분에서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좀비나 고어씬은 아직까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만큼, 수면 위의 영화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좀비영화하면 참혹한 장면들을 즐기는 분들을 위한 조금은 이상한 장르의 영화라고 오해되는 경우도 많죠..하지만 저에게 조지 A. 로메로는 그런 감독이 아닙니다. 조지 A. 로메로의 좀비들은 공포라기보다는 여전히 뭔가 슬퍼 보이죠..미약하게 남아있는 추억들을 본능적으로 따라 하고 있는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욕망..우리들의 '일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결국 이 영화의 주 맥은 상업영화라기보다는 충격적 영상을 통한 강한 사회풍자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갈등구조는 욕심에 가득 찬 권력, 부유층들과..그 속에서 빌붙다시피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곤층..좀비들이 지배한 대부분의 땅들에서 약탈을 하는 용병들...이들을 현시대에서 어떤 부분의 축소판으로 봐야하고, 각각을 누구로 비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1편부터 연결한다면 백인우월주의와, 흑인을 죽이는 장면들..대학살과 땅을 차지하는 인간들.. 근본주의적 제국주의 역사를 풍자한 인류사. 과연 누가 더 잔인한가?? / 2편에선 쇼핑몰을 배회하는 좀비들은 물질만능, 자본주의에 세뇌된 우리들 자신을 상징하고..그 시스템이 오히려 온 세상을 점점 더 지배하고.. / 3편에선 국가주의의 실험대상으로까지 전락한 좀비들이 스스로 학습을 하고, 무기를 다루며,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나..인간의 마지막 보루마저도 전복된다는 것.. / 4편에선 인간의 오만이 건설한 새로운 시설..그러나 이젠 좀비들의 물건을 약탈하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사회..이에 반해 보다 진화한 좀비들..그들은 단지 욕구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빼앗긴 땅과, 일종의 자유와 독립과 인간의 가장 큰 삶의 터전인 땅(Land)을 되찾는다는 '노예해방'의 구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4편에서 흑인 좀비 우두머리(빅 대디)가 물에 첫 발을 딛고 건너는 장면에서는..쿤타킨테(아프리카 흑인 노예 - 고전 드라마: 뿌리 6부작 )가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연상되더군요. 쿤타킨테가 참혹한 노예의 신분으로 대서양을 건넌다면, 4편의 흑인 좀비 빅 대디는 노예가 아닌 투쟁의 전령처럼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단지 느낌이 그랬어요.
물론, 시체시리즈를 연장선상으로 보면 노예란 단지 흑인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2편과 3편에서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누굴까요? 하나의 거대한 모순적 사회 시스템에 중독 되어버린, 수 많은 사람들은 아닐까요? 우린 흔히 TV와 언론 속에서 더 많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답들을 끊임없이 찾으려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부분 포장과 허상과 거짓이 더 많죠. 스크린은 때론 이데올로기의 산물이고, 사람들에게 특정 쇼프로, 특정 드라마와도 같은 일종의 '중독'이며, 거기에 길들여진 수많은 '스크린 좀비'들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권력의 훌륭한 거름더미가 되고, 종종 정치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하구요.
4편에서의 그들의 분노와 복수..단지 느낌이 그랬어요^^;; 사람들에게 점점 더 퍼지고..중독 되고..더 많은 사람들이 좀비화되고, 사람들의 사상 체계가 무너지고, 무력화 되고, 더 나아가 길들여지게 하기 위해서, 권력에 의해 고안된 거대한 시스템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진화하여, 권력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이죠. 이런 해석 말고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무늬만 인간들이고..무늬만 인간적인.. 세기말적 부정이 만연한 이 지구촌 사회에, 시체만도 못한 인간성 상실시대에, 보다 더 원초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좀비들이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들은 환경파괴와 대자연의 복수처럼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듭니다...
원래 좀비의 개념은 죽은 시체들이 걸어 다니는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거의 하나의 코드처럼 공식화 되었지만, 처음 부두교에서 착안하여 좀비영화를 제작할 때도 그랬구요.....좀비란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한 예로 좀비 영화에 나치즘이나 전쟁의 요소를 상징한 적도 있습니다. Revenge of the Zombies (1943)가 대표작이죠. 기존에 좀비 영화와는 달리 [좀비의 역병]1966년에서 무덤에서 깨어나는 좀비(시체)개념이 도입됩니다.
'기존에' 좀비란 인간의 욕망에 의한 상대적인 피해자였고, 노동 등을 착취당하는 착취의 개념 등으로 사용된 존재로써, 자주 영화의 소재로 다루었습니다. 마치 흑인 노예나,전쟁,물질주의, 자본주의 윤리가 망가진 사회에서 산업화의 도구로 착취당하는 극단적인 노동자 계급, 사회의 빈곤과 병폐처럼 말입니다. 그 한 예로 "무덤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일종의 사상적인 깨우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체의 뇌를 공격해야만 완전히 반응하지 않는다는 개념도 여기에 연결해서 이해하시면 되구요.. 반면, 영화 속에서 왜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는가? 같은 기원에 대하여 사람들이 많이 신뢰하는 언론의 반응은 여전히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기존에 언론이 인간 사회에 던져주던 메시지의 신뢰성이 서서히 의심받는 장면이죠. 이것은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진보하고, 경제가 고도로 성장 발전해도, 사회의 극단성과 맞물려 인간들 내면에 뿌리깊게 만연해 있는, 해명할 수 없는 그 무엇, 그 어떤 존재, 그 어떤 절대적 공포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심과 경외감을 극심한 혼돈과 공포와 맞물려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좀비와 연관된 공포의 개념이 부두교적 발상을 넘어, 이제는 사람을 공격하고, 더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뜯어 먹기까지 한다는 극심한 혼돈의 개념을 가장 잘 표현한 거장이 바로 조지 A.로메로 였습니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극심한 공황, 사람들의 공포감, 시스템에 대한 불신, 계급 갈등 문제 등의 뿌리 깊은 골의 위험요소들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상당히 평화로워 보이지만, 인간의 억눌린 감정들과 공포심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잠재해 있는지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이를 극대화시킨 영화적 장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로메로의 2번째 작품 [시체들의 새벽]에서의 좀비는 물질 만능주의(쇼핑몰)에 세뇌, 중독 되고, 급속도로 전염 되어가는 우리들 자신의 병든 모습들을 상징한 것이었다라고 한다면, 학습능력의 좀비 역시 이미 시체시리즈 3편에서 등장했었습니다. 1985년 작 'Day of the Dead'가 그 작품이죠. 이 영화는 표면적으론 볼 때, 엽기적인 고어씬으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충격적 영상보다도 담겨진 메시지가 더 '공격적'이고 '도전적' 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그동안 미국의 국민들에게 강요되고, 주지되어 왔던 내셔널리즘과, 무분별한 군사증강, 다양한 도구로 실험되어지는 좀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류가 이미 자행했던 핵무기나, 생체 실험 등이 떠오릅니다., 물론 감독이 직접적으로 이것을 상징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화 후반부에서 좀비들이 인간을 역이용하고, 공격하죠. 기존의 단순한 본능적 육식의 욕망의 공격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무기'를 사용하여 인간을 공격한다는 것은 과학과 실험 등 우리들 스스로의 실험적이며, 잔인했던 역사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제 4편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일종의 사상적, 이념적 대립구도로 인간과 좀비를 해석하면 꽤나 재미 있습니다. 로메로 감독은 최초의 작품부터 미국과 사회전반의 의식들을 비꼬았기 때문이죠.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표면상의 민주주의와 미국을 움직이는 강력한 그림자 제국의 실세 유대인들, 종교적 원리주의, 정치적 이념과 군사력이 조우하며,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대국인만큼 제국의 어두운 이면과 뒷골목을 파헤쳐보면 미국처럼 인종과 인종간의 갈등, 종교적 편견과 경제적 빈부격차, 계급간 갈등과 골이 깊은 국가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화 속 인간들의 삶처럼 말입니다.
혹자들의 말처럼, (다소 비약적이긴 하지만) 3편과 4편의 인간과 좀비들과의 결전을, 마치 미국과 이라크 전으로 비유해서 바라 보면,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종종 영화 속 용병들의 심리상태에서도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죠. 적극 좀비박멸에 나서는 용병들, 거대한 차량을 개조하고 은근히 뒤로 빠지고 회피하는 용병들은, 이라크 전을 게임처럼 즐기던 미군들이 떠오르며, 어찌보면 미국의 경찰국가 뒤에 가리워진 경제적 이익과, 자원전쟁, 보수주의 사상과, 다양한 전쟁 참전의 자긍심과 당위성을 호소하던 사람들이, 그 전쟁의 상처 뒤에 남겨진 각 국의 정치,사회적 불안과 갈등, 책임을 뒤로하고 입을 다문 채, 오히려 시체들의 땅에서 경제적 이익을 챙겨오는 현실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처럼, 미국이란 사회와 종교 원리 주의, 경제적 이득이 맞물린 정치 외교적 정체성의 이면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애써 그런 모순을 망각하려는 듯, 마치 후세인의 이빨을 검사하던 장면을 연상시키는 상류층의 좀비 쇼와 방탕한 파티의 날들로 하루하루를 소비하죠..
영화에서 좀비들은 현실의 부시에게 이라크처럼 악의 축이고, 미국이라는 제국의 이익에 반하는 박멸시켜야 할 존재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좀비들의 공격은 마치 테러와도 같이 가장 완벽하고 위용을 자랑하던 영화 속 상징적 건물처럼, 무역센터를 일순간에 무너뜨립니다. (무역센터를 과연 누가 공격했는지는 아직도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말입니다.....) 그들을 조정하려고 쏘아올린 화려한 폭죽에 좀비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빅 대디는 앞으로 나아갈 것을 종용합니다. 여기서 폭죽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폭죽..화려함..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에 많은 영향력을 주고, 이목을 끌게 만드는, 즉 미국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CNN 같은 언론과 다양한 쇼 프로그램들의 화려함은 아닐까요? TV 앞에 앉자서 코카콜라와 햄버거와 피자를 즐기며, 울고 웃고 동화하는 비대해져 버린 모습들은 갈수록 '스크린 좀비'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요?
영화에서 그들을 괴물시하고, 점점 더 노예화하고, 극단적으로 그들을 박멸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수가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됩니다. 통제가 되질 않죠. 최종적으로는 아둔하다고 생각했던 그들도 서서히 진화하고 세력화 됩니다. 영화 속 클라이맥스.... 그들의 집단적 인육축제는 인류의 탐욕과 부패한 권력을 향해 너무도 처절하게 난도질하는 복수의 장면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좀비와 주인공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뭘 의미할까요? 전혀 다른 문화와 사상, 다양한 민족과 종교, 끝없는 반목과 이데올로기, 빈부와 계급갈등, 이런 것들이 아닌 결국엔 하나의 지구촌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너무 비약이 심한가요? ^^ ㅎㅎ
최근에 와서는 레지던트 이블처럼 과학이 좀비를 만들어낸다는 개념도 있고, 좀비가 뛰어다니는 등 좀비의 개념은 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다양화 되며 상업적으로 성공해 가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빠르게 이동함으로써 긴박감을 조성하죠.. 물론 사이코 과학자가 좀비를 만들어 낸다는 고어 작품은 이미 오래 전에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호러액션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이를 현대적 흥행의 코드로 가장 잘 완성한 작품일 것입니다. 좀비 영화중 개인적으로 가장 특이하게 본 것 중 하나는 좀비를 '메시아'로 다루는 좀비영화도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무토스'라는 독일영화 (PREMUTOS:DER GEFALLENE ENGEL, 1997)입니다. 이 영화의 잔혹성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영화가 끝나면서 Bodycount가 139명(이 영화에서 죽은 사람 139명)라는 자막까지 보여줄 정도로 참혹한 난도질의 영화죠..
좀비영화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인간의 내면세계의 또 다른 단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어찌보면 그들은 우리의 왜곡된 이데올로기가 창출한 또 하나의 피해자들이며, 과거에는 마치 노예처럼, 바보처럼 수동적이었던 그들이, 현대로 갈수록 무언가를 깨우쳐가고, 우리 자신과 헤게모니, 부패한 시스템, 사회부조리를 점점 더 참혹하게 공격하고 파괴하기 위하여, 그들 역시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좀비는 인간 사회, 인간 내면의 또 다른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작품으로 돌아가서..조지 A 로메로의 영화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것들이지만, 좀비를 보면서 과연 이 시대의 좀비란 무엇일까?? 우린 정말 무엇을 더 혐오스럽게 생각해야할까? 같은 질문들을 던지게 됩니다.
개인적 평점: 7.5점
(전작들에 비해서 좀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아울러 장면장면들도..조금 싱겁죠.)현대인들은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들속에 이미 많은 면역력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다만 확실한 것은 조지 A. 로메로의 영화는 항상 시대와 사회를 풍자하기에 5편도 제작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감독들이 오마주를 바쳐왔으니까요.또 한 세기 미국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제 5편의 시체시리즈..혹은 제2의 로메로 감독의 비판력과 독창성을 풍자적으로 표현할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ps: 황당한 새벽의 저주(숀 오브 더 데드)는 영국의 실업문제와 가정, 기타 사회전반을 비판한 블랙 코미디 좀비 영화입니다. 무엇을 풍자했는지 찾아보세요^^
[추가분 - 참고사이트모음]
★DJUNA님의 시체시리즈 영화 리뷰모음
1.살이있는 시체들의 밤
http://djuna.cine21.com/movies/night_of_the_living_dead.html
2.시체들의 새벽
http://djuna.cine21.com/movies/dawn_of_the_dead.html
3.시체들의 낮
http://djuna.cine21.com/movies/day_of_the_dead.html
★제 허접한 리뷰보다 2만배는 더 잘 분석한 멋진 리뷰모음: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st=code&sword=41361&od=goodcnt&nid=133294
★조지 A. 로메로의 좀비 영화 이해하기: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id=10701&type=24
★참고사이트: 호러 익스프레스 - 좀비영화 잔혹장면 주의
http://horrorexpress.co.kr/bbs/view.php?id=HEspecial&no=39
-----------------------------------------------------------------------
시체 시리즈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오리지날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감독: 조지 A 로메로)
1978년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 (감독: 조지 A 로메로)
1985년 시체들의 날 (Day Of The Dead) (감독: 조지 A 로메로)
2005년 시체들의 땅 (Land Of The Dead) (감독: 조지 A 로메로)
2007년 시체들의 일기 (Diary Of The Dead) (감독: 조지 A 로메로)
리메이크
1989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감독: 톰 사비니)
2004년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감독: 잭 스나이더)
2008년 시체들의 낮 (Day Of The Dead) (감독: 스티브 마이너)
---------------------------------------------------------------
2007년 다이어리 오브 더 데드는 좀 거시기 했던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