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앵글-포스터만큼이나 복잡하고 어지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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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현재 100% 이해를 못한 것이 저의 한계입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운전기사가 만일 신이나 일종의 저승사자라면 (태워 드릴까요?) 영화는 주인공이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였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봅니다. 아마 그런 삶이 지속된다면 많은 엄마들이 종종 상황에 따라 그렇게 돌변할지도 모르죠. 자폐아 아들을 데리고 서둘러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빠르게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갈매기가 차에 부딪힌 이후 아이는 울고, 아이가 겁내하자 아이를 달래려다 결국 트럭과.....이 영화는 죽은 이후 부터의 세계를 계속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가 몇 바퀴나 구르는 엄청난 사고로 죽고 나서도 피 한방울 뭍지 않은 주인공(영혼)이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화면이 암전되죠.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못 보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살아있는 제스가 아닙니다.) 자신이 결국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일고, 이를 부정하고 싶은 강한 욕망 때문에 이후로 부분적 기억상실을 일으킨 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스(영혼)이 보고 있는 장면은 사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만(학대하는 제스 A을 죽이고 아이와 떠나는)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나중에 함선에서 맛있게 먹은 과일들이 썩어있는 장면도 보십시오. 또 자신의 동일체를 바다에 떨구고 테이블 레코더가 들리는 방에서 거울을 보며 피를 닦는 장면을 보시면 손가락에 피 한 방울 없습니다. 현실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 영화 초반 아들을 토요일에도 학교에 보냈다는 말은 거짓말이므로(특별반(?)이라서 매일 가나보지라는 트라이앵글 선상에서의 그렉과 빅터의 대화) 그녀 자신도 자신의 이상한 상태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그녀의 자아가 현실의 아들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은 강한 욕망과 절친에게 만날 때부터 포옹을 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둘의 대화 가운데 느끼는 묘한 이성적 감정 간의 내적 갈등이나 대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첫번째 장면의 보트에 올라타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보트에 올라타는 장면을 보면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지만,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전혀 다르죠.)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배에 함께 올라탄 동료들이나 영화 속 함선 사건 또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 아닌 것 같네요.즉 죽은 사람들은 자신과 아이일 뿐 그 사람들은 실제세계에서 만난 존재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미 차사고로 죽었으므로 택시기사에게 선착장으로 가자고 하고 도착한 곳과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죽음 이후 그녀의 의지의 세계가 만들어낸 허상이고, 그 세계에서 죽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문에 또 그들 모두를 죽이거나 죽었지만 두 번째의 대순환에선 모두 살아있는 것이죠.
암전된 화면에서 택시기사가 제스에게 말하죠. 누구도 아이를 살릴 수 없습니다... 만일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였고, 만일 영화의 시점이 아이를 따라 전개되었다면 택시기사는 아이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겠죠. 택시기사가 측은한 표정으로 태워드릴까요? 라고 말하며 그녀의 요구대로 그녀가 향한 곳은 선착장인데, 실제로 도착한 선착장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그녀의 의지 혹은 관념(심적형상)이 만들어 낸 선착장인 것입니다.
미터기(일종의 저승가는 노잣돈을 상징)를 꺼놓은 택시기사(저승사자)와 약속(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승으로 가야함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자신의 운명)을 돌아온다고 말해놓고는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이후부터 주인공이 접하는 세계는 계속해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함선내에서 몇 번이고 시지푸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죠. 이곳은 일종의 저주의 공간)인가 봅니다.
더불어 첫번째 장면의 아이를 학대하던 주인공이 죽은 것은 실재 사건이므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갈매기가 차에 부딪혀 죽은 것도 일회적인 사건이어야 합니다. 때문에 수 없이 차에 부딪혀 죽고 주인공이 동일한 장소에 버려 버린 갈매기들의 수 많은 사체 또한 실재가 아니므로, 그녀의 세계가 현실이 아닌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갈매기는 죽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암시로써 영화 처음 시작 될 때, 갈매기 울음 소리로부터 시작해서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갈매기가 등장합니다. 이미 제스는 죽은 사람이라는 소리죠.
만일 그렇다면 주인공 뿐만 아니라 각각 다른 동일체들의 데자뷰가 조금씩 다른 행동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그녀의 상상 속의 존재들을 모두 죽여야만 현실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그녀의 강한 믿음)를 낳게 되고, 그 함선 내에서 각각의 죽음들이 한가지 유형이 아닌 영화에서 보여준 두 개 세계씩(예: 총을 맞아 죽는 것, 칼에 찔려 도망치지만 수 많은 동일체들이 있는 곳에서의 죽음) 이상의 유형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론 동일한 반복에 갇히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에 대해서 감독은 이 보다 수십 수백개의 각각 다른 시점의 동일체들의 다른 의지와 행동 패턴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중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만을 영화 속 주인공 시점에서 '선택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아무리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고 죽게 만든 죄에 대해서 죄책감이 일고, 되돌리고 싶고, 후회를 한다한들 죽음은 결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은 거울에 붉은 피를 본 주인공(이걸 편의상 제스 B라고 하죠.)이 다시 붉은 피로 똑같은 글씨를 쓰는 '시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영화를 다시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존에 똑같이 연필로 쓴 글씨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는 것과 수 많은 목걸이들이 동일 장소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보며, 만일 이 영화가 '단선적'이고, '동일한' 반복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은 이미 수 없이 반복된 자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비교적 그것은 이해가 쉽지만,
지워진 혹은 없어진 거울의 글을 자신이 새로 써야한다는 것은 이것도 일종의 현실이라는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바램처럼, 각각 다른 시점의 주인공이 이 패턴을 깨뜨리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보일 때마다 마치 포스터처럼 뫼비우스의 띄 안에 또 다른 뫼비우스의 띄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녀가 접한 일종의 삶과 죽음의 중간계에서도 점점 더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날 수도 없는 수렁과도 같은 순환 속의 또 다른 순환들의 연속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셀리의 남편이 이미 거울에 표시된 극장으로 가시오라는 피로 써진 글씨를 지워버리고, 그가 범인은 제스라고 피로 써 놓은 것을 지우고 다시 제스 B가 쓴 걸까요? 또 중간에 영화의 주인공 시점의 제스B가 총을 들고 다시 찾아 온 제스 C를 죽이지 못하고 놔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럼 제스 C와 싸워서 물에 떨어진 자는 제스B가 아니라 제스D라는 이야긴가요?
참 독특한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터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잘 만든 것 같네요. 트라이앵글 안에 또 계속되는 트라이앵글..주인공이 빠져나오려고 하거나, 각각의 제스가 각각의 다른 패턴으로 그 룰을 깨면 깰수록 깊은 수렁처럼 빠져드는 그런 세계...
각각 다른 혹은 동일한 데자뷰에 의해 각각 다른 주인공 제스의 동일체들이 만들어내는 조금씩 다른 행동들이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결과적으론 같은 순환적 결과로 이어진다면, 제스가 단 두 명 혹은 세 명으로 계속 단선적인 몇 명의 그녀의 삶이 반복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지와 패턴이 다르더라도 각기 다른 동일체들의 데자뷰와 각기 다른 행동패턴들이 발생할 때마다, 뫼비우스의 띠 안에 또 다른 무한대의 뫼비우스의 띠가 발생하여,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무한대의 제스B.C.D.E.....가 그 세계안에 끊임없이 발생 혹은 존재하게 되고, 현실로 돌아가려 하면 할수록 더 깊게 갇히고 더 깊게 수렁에 빠지게 된다....뭐 그런 소리인가 봅니다. -_-;;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한 듯 합니다. 폭력적인 엄마, 차사고로 죽은 엄마,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동일한 엄마를 제스 A라고 할 때, 영화에서 카메라가 따라가는 주인공 시점의 제스는 적어도 두번째 시점의 제스 B가 아니라 수 없이 반복된 수 많은 제스 중 하나라로서의 제스B가 된다는 것을..
더불어 이 모든 가정들이 사실이라면, 영화 초반부에 전개되는 주인공 제스 B가 겉으로 볼 때 선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수 많은 반복된 시점에서 카메라가 따라가는 제스 B가 단순한 부분적 기억상실과 데자뷰가 아니라면, 마지막 장면에서의 제스 B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렉이 같이 갈거냐고 묻죠(동일한 사건의 반복) 그렇다면 제스B는 이미 택시기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아들의 죽음을 목격했으므로, 이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예정된 살육의 여정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즉 영화 초반부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으로 몰고가는, 피곤하고, 아픈 사람, 아들을 그리워하고, 데자뷰가 나타나는 정신적인 약간의 문제가 있는 그런 감싸주고 싶은 여성으로 비춰지지만, 현실에서 죽은 제스 A를 제외한 반복되는 모든 제스B,C,D,E....들은 누구도 죽지 않았고, 결국엔 제스 A를 만났거나 만나게 될 것이므로, 카메라가 따라가고 있는 제스 B의 첫번째 대순환(제스A를 만남) 뒤의 두 번째 대순환부터의 여정은 자신이 몰랐던 일들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 모든 일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다시 그 배 위에 올라타고, 올라탈 수 밖에 없으며, 모든 사람을 죽이거나 또 다른 시도를 하는 이미 예정된 살육의 여정이 된다는 그런 설정이 설득력이 있는 듯 합니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제스 B는 제스 C와 똑같은 일행들이 함선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룰을 깨뜨리기 위해 제스 C를 죽이려 하지만, 처음엔 제스 C를 죽이지 못하고 제스 C는 그대로 도망칩니다. 그러나, 곧바로 제스 B는 샐리와 남편이 공격받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윗 층에 숨어서 총을 쏘려는 제스 D(솔직히 그녀가 제스 D인지 E인지 아니면 더 많이 반복된 제스 중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순서상 제스 D)의 머리에 총을 맞추죠. 만일 이것이 그냥 스친 것이 아니라면, 제스는 이 세계 안에선 아들에게로 돌아가려고 한들 결코 모두를 포함 스스로를 죽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혹여라도 그냥 스쳤다고 해도 제스 D가 잔인하게 샐리 부부를 난도질하는 장면은 영화 속 주인공 시점인 제스 B와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순환 뒤의 또 다른 순환으로 이어져 언젠가는 제스 B 혹은 또 다른 제스가 자신이 만들어낸 의식적 세계에서 또 다른 동일체을 모두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을 포함하여 그녀가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인다 하더라도, 그녀가 대순환을 거쳐 처음으로 돌아간 의식의 현실세계에서는 여전히 제스 A라는 폭력적 자신이 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들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이 세계에서 괴물이 되어가면 갈수록, 끊임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안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죽음의 순서들도 참 묘하게 들어 맞습니다. 샐리가 헤더를 그렉에게 소개시켜주죠. 그러나 그렉은 오로지 세즈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영화 중반에 보면 헤더가 얼마나 헤픈(?)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즈와 그렉을 제외한 헤더, 샐리, 샐리의 남편,빅터 모두 처음 만나는 사이이므로(선상에서 서로 인사하는 장면) 그렉이 샐리에게 세즈의 아들 이야기를 하고 이를 또 다시 헤더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이상 헤더가 세즈의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죠. 만일 샐리가 그렉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다시 헤더에게 말해준 것이라면, 그렉과 샐리는 적어도 세즈나 세즈의 아들을 측은하게 여겼을지 몰라도, 이에 대해서 비꼬듯 반응하는 헤더는 그녀가 가장 미워하는 첫번째 대상인 것입니다.
또한 샐리는 마치 세즈의 친구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즈와 그렉을 걱정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세즈와 샐리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사실 샐리는 그렉을 아까워하고 있죠. 이것은 세즈의 가상세계에서 그렉을 놓고 벌이는 만들어낸 일종의 여성들간의 묘한 질투심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렉과 짝 지워주려는 샐리의 친구 헤더가 폭풍우에 휩쓸려 가장 먼저 죽게 되죠.
그 다음은 자신의 비밀을 이상하게 의심하고 있는(아들이 토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것) 빅터를 의도적이진 않지만, 아주 우연히 죽음으로 몰아 가죠.
그 다음이 공교롭게도 자신이 마음을 두었던 그렉입니다. 함선에서 이 안에는 선원이 없다고 말하며 세즈 너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자. 세즈가 화를 내고 내 세계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하죠.
맨 마지막이 샐리 부부입니다. 샐리는 처음 선상 장면에서 마치 세즈의 친구처럼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녀는 친구일수도 없고,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세즈보다 그렉을 아까워합니다. 여자들의 묘한 질투심 뭐 이런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세즈를 의심한 샐리의 남편과 함께, 그렉이 총에 맞아 떨어지면서 자신에게 총을 쏜 것이 세즈라고 말했다고 하며, 세즈에게 욕을 하죠. ㅁㅊㄴ이라고...역시 둘 다 세즈에게 총을 맞거나, 잔인하게 난도질 당합니다.
폭력적 자아를 지닌 세즈에게 자폐증 아들은 대인관계에서 가장 큰 부담감이면서도 자신이 철저히 혼자가 되고, 모두를 적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외로움과 분노의 잘못된 표출 뭐 이런 것이겠죠.
택시 기사가 시지푸스의 그 신인지 저승사자인지 모르지만, 돌아올꺼냐는 그 약속 무섭네요...헐
아무튼 무지 정신없고 어지럽고 사람 헷갈리게 잘 맏는 영화임은 틀림없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