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평을 무시하고
어쨌든 DC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뭐 전체적인 감상은 '나쁘지 않다' 정도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몇몇 단점을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이 아래부터는 스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리고 보고 나서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색채감은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냐, 였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데드풀마냥 엽기발랄하고 유쾌한 영화였다면 이 포스터는 상당히 적절했을겁니다.
그러나... 뒤에 다시 적겠습니다만,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캐릭터들이 그렇게 가벼운 애들이 아닙니다.
지극히 DC스럽다고 해야할까요.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뱃대슈의 악평에는 유머가 없어서다-라는 자체분석 때문에
재촬영/편집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그 지점이 혹시 이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색채감은 영화 극초반과 극후반, 딱 둘만 나옵니다.
오프닝과 엔딩에서만요.
굳이 비교하자면 오페라극장에서 발랄한 애니음악을 틀어놓은 느낌?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넘어갈수는 있지만, 영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어쩔수 없습니다.
어색해요.
뭐, 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본편과는 크게 상관 없거든요.
1. 영화는 재밌었나?
이걸 중점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럭저럭 볼만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평가내리기 위해서는 몇가지는 무시하고 넘어가야했습니다만,
적어도 뱃대슈만큼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은 아니었습니다.
(감독판을 보면서 그걸 한번 더 느꼈습니다-잭스나이더 본인으로서는 혼자서만 욕먹는게 억울했을 듯)
정확히는 이것저것 섞은 비빔밥 같다고 할까요.
간단한 줄거리를 보자면, 악당들을 모아서 위험한 임무에 투입시켜서 완수한다-뭐 이런건데
이 흐름은 잘 따라갑니다.
잘 따라간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풀겠습니다만, 어쨌든 기본적인 베이스라인에서 심하게 튀는 부분은 없습니다.
초반 개인스토리가 너무 길었다, 지루했다 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솔직히 DC에 관심없다면 할리퀸, 조커 빼고 누굴 알겠습니까?
메인으로 이 영화를 끌고 나갈 캐릭터라고 한다면 당연히 어떤 인물인지는 짚어줘야겠죠.
화끈한 액션!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작전 투입 이후로는 나름 재미있습니다.
2. 개인스토리가 문제였나?
이 영화의 개인 스토리는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데드샷과 딸, 조커와 할리퀸, 준 문과 플래그.
각각 신파/광기어린 사랑/애절함 정도로 나뉘고
이게 극 전체를 끌고 나갑니다.
기본 베이스는 악당들이 모여서 적을 쳐부수는건데,
의외로 이 세가지가 반복적으로 돌림노래처럼 계속 튀어나옵니다.
데드샷의 개인 감정에 대해 계속 짚어주고,
할리퀸의 사랑이 어떤건지 계속 드러내고
안티히어로의 숙주를 애인으로 둔 남자의 고뇌를 잊을만하면 보여줍니다.
그게 적절했으면 참 좋았겠는데 너무 과해요.
너무 과해서, 극을 이끌고 나가는 할리퀸과 데드샷이 농담을 쳐도 마음껏 웃기가 미안해집니다.
영화 내내 농담이 부족했다는 평을 봤는데, 그건 아니에요.
영화 내내 농담은 넘쳤습니다.
똘끼 넘치는 애들을 모아놨으니 안그러는게 이상하죠.
문제는 이상하게 넣어야할 장면을 쳐내고 신파를 늘려놓은 느낌이 있다는거고,
그게 눈에 너무 보인다는거.
극단적인 예로 '울어라 이것들아!'라고 강요했던 7번방의 선물을 떠올렸다면 오바일까요.
3. 착한 악당.
영화 내내 강조하지만, 통제가 안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모아놓은 집단입니다.
착한걸로 턴힐시키려면 데드샷 하나 정도로도 충분했었음에도
할리퀸도 의외로 착하고, 의리라곤 없다는 부메랑도 의외로 착하고,
킬러 크록도 착하고, 엘 디아블로도 착하고...
'난 여자와 애를 죽였어'라는 고해성사에 숙연해지는 악당들이라니.
허허허.
그나마 제일 똘끼넘치는 할리퀸도
'사실은 똘끼가 넘쳐서 조커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조커를 사랑하기 때문에 똘끼를 갖게 된거야'라는 식의 설득을 합니다.
(인첸트리스의 환상이 말해주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나쁜놈들이 나쁘질 않아요.
가오갤 보는 줄...
물론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극악무도하다고 통제불능하다고 영화내내 강조하며 불안해하는게 무색해지니.
사실 살펴보면 영화 내내 그런 상반된 행동이 자주 노출이 됩니다.
어쨌든 얘네, 너무 착해요.
4. 그래서, 너네 왜 싸우는데?
이게 가장 첫번째로 왔어야합니다.
그리고 사실 영화감독이나 스토리작가도 마땅한 답을 못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데드샷과 할리퀸을 중심으로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킬러크록은 그나마 파워맨역할이라도 있지,
부메랑, 슬립낫, 카타나는 여타 조연 1,2,3으로 배치했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니면 아예 빠지거나.
심지어 할리퀸은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조커를 죽게 만든 사람을 구하러가기 위해 싸웁니다.
어쩌다보니 데드샷이 리더처럼 활동하고, 이 집단을 제어해야할 머리들은 무능해지면서
그냥 어쩌다보니 데드샷과 할리퀸을 겸사겸사 따라오는 들러리로 전락하게 됩니다.
뱃대슈처럼 편집과정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말 별로 설득할꺼리가 없으니
전형적인 팝콘무비를 만들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5. 그래서, 망했나?
친구가 가장 먼저 물어본게 '망했냐?'였습니다.
저는 그건 아니라고 했고요.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듯, 할리퀸이 매력적으로 나옵니다.
비록 원작에 비해 많이 순둥이가 되었다지만,
블랙위도우=스칼렛요한슨이 된 것 처럼,
할리퀸=마고로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뱃대슈같이 전혀 관계없던 인물이 갑자기 두각된게 아닙니다.
영화 내내 중심에 있던 인물이 매력적이라는건 캐릭터성을 갖고 가야하는 히어로물에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데드샷과 할리퀸은 건졌어요.
조커야 뭐 배트맨과 한 몸인 셈이고, 전능한 모습 빼고는 짧게만 노출되어서 아직 평가보류.
나쁘진 않았습니다.
6. 문제점을 꼽는다면?
예전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문희준/박준형이 나온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박준우 기자가 고등어와 된장으로 밀푀유를 만들어서 대접한 후 나온 평이 있는데,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욕심으로 똘똘 뭉친 맛인데 그 욕심이 너무 느껴진다'
라는게 있습니다.
딱 그런 평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블 영화로 치자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토리성과 앤트맨의 캐릭터성, 데드풀의 유쾌함을 모두 가지려고 욕심부린 나머지
이것도 저것도 정돈하지 못한 혼합물이 나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도 감독판이 나온다면 인물들의 행동에 좀 더 설득력이 생길거라고 믿기 때문에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워너브라더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쁘진 않지만, 훨씬 더 좋아질 수 있었어요.
재앙은 아니지만,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뱃대슈는 원더우먼을 건졌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퀸을 건졌으니
뭐 그걸로 된거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사과형님의 배트맨도 아직 기대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