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루브르박물관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랑코포니아'.
다큐멘터리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담아낸 보통의 다큐멘터리와는 그 색이 무척 다르다.
현실과 과거, 허구적 재연이 뒤섞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철학과 역사가 공존하는 에세이 같기도 하다.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를 생각하고 본다면 프랑코포니아의 첫 시작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프랑코포니아의 극중 흐름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영화의 화자이자 거대한 바다 폭풍을 만난 컨테이너선 선장과 교신하는 감독의 나레이션.
그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나레이션은 역사 속에서 예술에 지닌 의미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루브르박물관의 지난 발자취를 통해 되새겨본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의 약탈 위험에서 살아남은 루브르, 그 뒤에 숨은 뜻밖의 조력자(이 부분이 궁금해서 본다면 분량은 생각보다 미미함)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는 극적 재미를 전달한다.
영화 도중 수시로 등장하며 혼잣말을 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조적인 두 인물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프랑코포니아의 숨은 의도이자 핵심이기도 하다.
외젠 들라쿠르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유명한 작품에 등장하는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
자유, 평등, 박애로 여겨지는 프랑스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유, 평등, 박애를 계속해서 읆조리며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반면 작은 체구에도 유럽을 지배한 프랑스 지배자로 유명한 나폴레옹, 그가 재임하던 시절 루브르박물관은 지금의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틀을 갖게 된다.
전쟁을 통해 얻은 수많은 전리품들로 채워진 루브르, 나폴레옹은 유령처럼 루브르에 남아 자신의 위대한 전리품을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역사 속에서 예술은 승리국의 전리품이었다.
나치의 점령이 한창이던 시절, 유럽의 많은 곳이 파괴되는 가운데 프랑스 파리는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일종의 안전지대였다.
루브르박물관은 비록 나치군의 점령하에 놓였지만 나치의 약탈로부터 무사했다.
숨은 조력자의 노력도 있었지만 파리는 분명 달랐다.
일례로 러시아(볼셰비키)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등장한다.
나치에 의해 철저히 짓밟혀 수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기능이 무너졌던 그곳은 박물관 역시 빈 액자만 공허하게 남을 정도로 전쟁의 잔혹함이 휩쓸고 지나갔다.
루브르와 달리 나치에 의해 잔인하게 약탈당한 러시아 박물관이 소장했던 예술품.
전쟁은 이렇듯 잔인하다.
비록 직접적인 폭격은 없었지만 루브르 역시 위험할 수 있었다.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안전지대로 옮겨졌던 예술품은 이후 파리를 점령한 나치 고위관계자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할 수 있었지만 당시 이를 담당했던 나치 메테르히니 백작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수집품으로 빼앗기지 않게 지켜냈고, 당시 행정 기반이 남프랑스로 옮겨지고 볼셰비키와 달리 나치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정부시절 루브르박물관 관장 자크 조라르는 파리에 남아 암묵적인 협력으로 루브르를 지켰다.
이 두 사람의 공로는 전쟁 이후 훈장도 받을 만큼 인정받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가 자크 조라르는 모든 기록에서 사라지고, 메테르히니 백작은 이탈리아로 옮겨 그 곳에서 남은 평생을 살며 많은 사람들의 애도를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모나리자, 이집트 고대유물관,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 루브르박물관의 유명 작품을 돌아보는 가운데 끊임없이 등장하는 나폴레옹과 마리안느.
루브르박물관은 수많은 예술작품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명소이자 세계유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 승리국의 전리품이라는 이중적인 면도 있다.
제국주의 시대 약소국이었던 한국도 중요한 수많은 문화유물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예로 조선시대(병인양요,1866) 프랑스군에 약탈 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하기 위한 노력, 현재 한국으로 귀환하긴 했지만 5년마다 갱신해야하는 임대형식으로 돌아왔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했었음)
이렇듯 한 국가의 문화는 전쟁의 승패에 운명이 달라졌다.
루브르에 전시된 예술작품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예술을 예술로만 보기에는 불편한 현실이 분명 존재한다.
영화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정적인 결론를 짓지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예술의 모습만을 감상하기보다 그 뒤에 숨겨진 역사 속 진실로 함께 투영하길 바래본다.
실험적인 전개와 불친절한 화법으로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예술의 가려진 의미를 찾아내듯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낯선 다큐멘터리 영화 '프랑코포니아'도 숨은 조각들을 끼워맞추며 보는 것은 신선한 도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