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파키스탄 남자 쿠마일,
결혼에 실패한 전적이 있지만 사랑을 쫓는 미국 여자 에밀리.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어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으로 인해 이별을 택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녀가 잠든 14일 동안 쿠마일의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데…
청년 쿠마일은 시카고에서 우버 운전으로 돈을 버는 한 편, 저녁에는 한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관객 앞에 혼자 서서 농담을 이어가는 코미디)를 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그는 자신의 뿌리를 재미있으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요. "파키스탄이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도를 많이 한다는 정도이죠. 아, 많이도 아니네요. 고작 하루에 다섯 번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어느 날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자신에게 호응을 보내줬던 여성 관객에게 접근을 시도합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네요. 시비를 거는 척 다가가서는 재치를 뽐내는 그에게, 에밀리도 관심을 보입니다. 둘은 오랜만에 찾아온 연애감정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서로의 흡입력을 물리치지 못하고 행복한 커플이 됩니다.
<빅식>의 등장인물은 전부 유머러스하고, 전부 사랑스럽습니다. 유일하게 형편없는 놈으로 그려지는 엑스트라는 인종차별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남자 관객하나죠. <빅식>은 이렇게 편견과 싸웁니다. 이슬람 부모 세대의 오래된 전통이 현 이민 세대들에게 얼마나 아픈 형벌인지, 인종차별적인 태도가 진솔한 사랑 앞에서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그 모든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유머를 잃지 않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면서 말이죠.
영화의 후반부, 쿠마일은 뒤늦게 에밀리의 가치를 깨닫고 그녀가 했던 질문을 아버지에게 건네 봅니다. 엄마랑 극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잖아요. 그때 본 영화가 뭐였어요? 하고요.
연애 시절, 에밀리는 그런 것들을 묻는 여자였죠. 자기네 부모님, 그때 보셨던 영화가 뭐래? 하고요. 쿠마일은 답을 모릅니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에게는 '결국 부모님은 결혼했다'는 결론만 중요했을뿐, 부모님의 러브스토리를 궁금해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소설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가 어렸을 때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다고 얘기하자, 남자가 이렇게 묻죠.
-지금은 어디 있어?
-뭐가?
-잘려나간 손가락 말이야.
-(웃으며)몰라. 그런 것을 묻는 것은 네가 처음이다.
저는 <빅식>이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뭐 상관없게 된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요. 오래 전에 잘려나간 손가락의 행방처럼, 결혼이란 결실을 맺은 커플의 지난 연애사처럼. 그런 질문은 주로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기 바쁜 우리들에게는 조금 낯선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낯선 질문들이 때로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는 것이죠.
오늘은 그런 영화를 봤습니다. 낯선 질문을 꺼내게 만드는 사랑을 그린 영화, <빅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