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솥을 들고 나타난 남자

온리원럽 작성일 13.06.06 10: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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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1년을 갓 넘긴 스물여섯 살 직장인 다인. 통장잔고 1,670원이라는 충격적인 숫자를 확인한 다음날, 직장 동기의 소개로 ‘경제적 성공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의 브런치 모임’이라는 의미의 ‘경성이브’에 참석하게 된다.

통장 잔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무엇으로 재테크를 시작할 수 있을까.

연금, 보험, 펀드… 너무 어려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안경을 쓴 30대 남자가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어제 소연이가 정신교육 어쩌고 하더니, 이거 뭔가 살벌한데?

기초노령연금과는 별개로, 보험사에 몇 억씩 즉시연금을 넣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정부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70%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기로 한 건, 우리 사회가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길게는 10년간의 공백이 생기는 데다 고령인구는 점점 늘어날 텐데요, 장기적으로 보험주의 전망이 밝다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요즘 부쩍 느끼는 건데, 돈 많은 자산가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그 점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은행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은 농담처럼 그러더군요. 20만 원짜리 연금보험에 드는 것보다 보험 관련 주식을 사두는 게 수익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고요.”

“오, 그거 말 되는데요? 이 참에 매달 한 주씩 모아볼까요?”

안경남의 말에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뭐야, 저게 웃겨?

꿀꺽, 몰래 침을 삼킨다. 사람들은 다시 진지하게 보험이니 연금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 목말라.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물도 안 주나? 옆자리에 앉은 소연이는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경청하고 있다. 표정만 보면 저 대화를 다 알아듣는 눈치다.

훈남 셰프, 등장하다

알 수 없는 재테크 이야기들이 지루해질 즈음, 앞치마를 두른 한 남자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브런치 모임, 경성이브! 그 이름에 혹해서 10시쯤 지하철 안국역에 도착했다. 소연이를 따라 풍문여고 길을 한참 걸어 도착한 곳은 작은 한옥을 개조한 카페 겸 레스토랑. 테이블 예닐곱 개의 소박한 실내, 한옥 같지 않은 모던한 인테리어와 가게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널찍한 주방이 인상적이다.

이미 네 명의 사람들이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테이블 끝 빈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카드가 어쩌고 보험이 어쩌고 펀드가 어쩌고……. 익히 예상은 했지만, 하품만 나온다, 진짜.

“하하, 이번 주 이슈는 단연 기초노령연금이군요.”

반쯤 딴 세상으로 놀러 나갔던 정신이 확 돌아온다. 이야기 내내 주방에서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던 남자가 물기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걸어 나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메뉴를 급하게 변경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오오, 드디어 허 셰프의 등장인가? 가까이서 보니 키도 크다. 180이 될까 말까? 아주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하얀 요리사 복장이 꽤 어울리는 ‘훈남’이다. 살짝 눈웃음 지을 때는 요즘 잘나가는 ‘훈남’ 가수를 닮은 것도 같다. 황급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좋은 논의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초연금에, 양육수당에, 4대 중증질환 보장까지 복지혜택은 많이 늘어나는데,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날지……. 결국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계산인데, 그로 인한 파급효과가 어떨지 고민해보세요. 내가 수십 억 자산가라면 어떻게 할까, 많은 월급쟁이들은 세금을 아끼기 위해 무엇을 할까. 개별 보험주 분석에 들어가신다면, 계열사 지배구조도 눈여겨보시고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 큰 ‘훈남’이 똑똑하기까지! 셰프니까 요리도 잘할 테고, 이거 뭔가 관심 가는 전조인걸!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허 셰프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뜨거운 솥의 뚜껑이 열리면

“안녕하세요, 여기 주인장 허윤회입니다. 소연 씨 친구 분이시죠? 환영합니다. 처음 오셨는데 너무 우리 이야기만 했나 봐요. 다들 인사하시죠! 저, 성함이…….”

“아, 안녕하세요, 윤다인입니다. 소연이랑 같은 회사 입사동기고요. 스물여섯 살, 입사 2년차에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원하는 경제적 성공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봐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좀 쑥스러운걸!

“자, 다인 씨가 처음 오셨으니 오늘 브런치 메뉴는 다들 아시겠지요?”
허 셰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와! 좋아요, 좋아! 흐흐. 소연 씨가 모임에 처음 온 날 먹었으니까 꽤 오랜만이네요.”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여자가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한다. 엥? 무슨 메뉴이기에 저렇게 반기는 거지? 새 멤버가 오면 먹는 메뉴가 정해져 있나보다. 혹시 사발주? 에이, 대학 새내기 신고식도 아닌데 설마. 그리고 여기는 레스토랑이라고!

재테크 초보에게 추천하는 메뉴. 갓 지은 따끈한 밥처럼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재테크의 ‘밥’을 알아보자.

“현재 다인 씨 저축액이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첫 월급을 받은 재테크 초보라고 가정하고 오늘 메뉴를 정했습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저는 늘 첫 재테크 브런치로 이 메뉴를 준비한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죠. 자, 식사할 준비 하실까요?”

저축액이라는 말에 통장 잔고 1,670원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닌다. 얼마냐고 물어봐주지 않아서 고마워요, 허 셰프. 사람들이 테이블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허 셰프가 커다란 무쇠 솥을 들고 나타났다. 뭐, 뭐지? 저 메뉴는?

육중한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 냄새가 퍼졌다. 와!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이런 레스토랑에서 리조토도 아니고 흰 쌀밥이라니. 이거 말고 다른 메뉴가 또 있는 걸까?

“하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시군요. 저는 금융상품들을 음식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첫 월급을 받은 재테크 초보에게 추천하는 음식은 바로 ‘밥’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쌀로, 저만의 불 조절 법으로, 무쇠 솥에 갓 지은 밥이지요. 자, 다들 앉으세요, 그릇에 담아드릴게요.”

적금은 밥이다

속이 깊은 리조토 접시에 각자의 밥이 담겼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에 봄동 겉절이와 뚝배기에 담긴 해물된장찌개, 오이 피클과 낙지 젓갈까지 한상 가득 차려졌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침도 못 먹고 와서 어려운 얘기 듣고 있었더니 배가 고프네. 일단 밥부터 한 입 먹고 보자, 반찬 없이도 입에서 살살 녹는구나!

“여기 참기름이랑 고추장도 있으니, 봄동 겉절이에 비벼 드실 분은 같이 드세요. 텃밭에서 따온 고추도 된장에 찍어 드시고요.”

“와, 이 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네요. 집에서 하면 왜 이런 맛이 안 나지?”

체크셔츠 여자가 봄동 겉절이를 옮겨 담으며 말했다.

“하하, 칭찬 고맙습니다. 다인 씨도 입맛에 맞으십니까?”

“네, 정말 맛있어요. 사실 아까부터 배가 좀 고팠거든요.”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허 셰프가 말했다.

“맛있죠? 한국 사람은 역시 밥입니다. 요즘 쌀 소비량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밥은 우리 식생활의 기본 중 기본이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재테크 상품 역시 기본 중의 기본! 바로 적금입니다. 굳이 말을 만들어보자면 ‘적금은 밥이다’라고 할까요?”

정신없이 입으로 들어가던 숟가락이 저절로 멈췄다. 적금이 밥이라고?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적금을 권하다니, 제가 엉터리 같죠? 적금은 누구나 들 수 있고, 너무 쉬운 재테크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매일 먹는 밥처럼, 꼭 필요한 재테크 상품이랍니다. 이제 자산관리를 시작하는 초년생들에겐 더더욱 그렇죠. 마저 드세요. 후식까지 다 드시면, 오늘의 재테크 레시피를 알려드릴게요.”

적금에도 레시피가 있나? 그냥 은행가서 들면 되는 거 아닌가. 옆을 보니 그렇게 열심히 떠들던 사람들이 말 한마디 없이 우걱우걱 밥을 입에 퍼 넣고 있다. 아 몰라, 일단 먹고 보자! 적금은 밥이다, 이 말만 기억해두면 되겠지, 뭐!

[허 셰프의 재테크 레시피]
맛있게 적금 넣는 3가지 법칙

 

1. 적금은 밥이다! 3년간 은행을 떠나지 마라

금리가 높은 적금을 찾아서 가입한다. 은행권 특판이나 신협,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적금을 활용하면 좋다. 만기는 기본적으로 1년으로 하되, 조금이라도 금리차이가 난다면 13개월짜리로 가입한다. 다른 스킬은 필요 없다. 매달 월급날, 따박따박 적금으로 직행한다.

 

2. 쌀밥보단 잡곡밥! 적금통장도 섞어라

한 달 저축가능 금액을 나누어서 2개 이상의 적금에 가입하라. 혹시 중도에 급전이 필요하게 되면 한 상품만 해지하고 나머지는 유지하면서 후에 여유가 다시 생겼을 때 새로 가입하면 된다. 자유적립식 적금은 나약한 의지력을 시험에 들게 하므로 초보 시절에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3. 물 조절이 생명! 우대금리, 비과세 모두 챙겨라

만 2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1,000만 원까지는 세금우대. 소득세 9%와 농특세 0.5%만 내면 된다. 또 새마을금고나 단위농협과 수협, 신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최대 3,000만 원까지는 농특세 1.4%만 부과된다. 0.1%라도 금리 높은 곳을 찾되, 너무 목숨 걸지는 말자. 이자보다 교통비가 더 나오는 수가 있다.

 

[이 글은 쉽고 재미있는 재테크를 알려주는 가상의 카페 '경성이브'를 배경으로, 이를 통해 성장하는 20대 직장인 다인이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형식의 재테크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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