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조짐...
구정이 다가오자 가슴이 설랬습니다.
고향이 부산인 저는 부산에 사는 할머니와 누나 그리고 친구들 형님들과 약속을 다 잡아 놓고
짐도 다 싸놓고.. 27일 아침이 어서 오길 설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버스표도 예매했기 때문에 또 밤늦게까지 딸치다가 늦잠자서
버스 놓치는 일은 피하고자 일찍 잠에 들려고 했죠..
그런데...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발을 털면서 가더군요.. -ㅅ- 냐웅!
뒷다리 앞다리 탈탈탈... 그리고 침대위에 올라가는데... 발자국이 꼭꼭꼭 찍혀있더군요...
어라? 하여 살펴보니... 벽쪽 바닥에 웬 물이 고여있는겁니다. 그것도 한군데가 아니라... 이곳저곳에..
응??? 뭐지???
닦아내니.. 또 다시 올라 옵니다.....
물이 새나봅니다..-_-;;ㅎㄷㄷ
그때부터 살짝 패닉... 수도관이 터졌나..?-_-;? 아님 반지집인데 벽쪽 어딘가 금이가서 물이 쌓인게
우리집으로 들어오나... 일단 수도관부터 잠군 저는 혹시나 윗집에서 물이 새거나..혹은 수도를
틀어놓고 어디갔다거나 하는 만화같은 일이 있을까 싶어... 윗집으로 올라갔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계세요를 여러번 복창했으나 벌써 고향길 떠났는지 집이 비어있더군요...
거기다 비도 주적주적 내리고...
일단 주인집에 연락하니.. 내일 아침에 설비 관련일하는 아저씨를 보내주신다고 하더군요..
걸래로 물을 짜서 물닦는것도 여러차례... 손바닥이 아플때쯤되니 극도의 피로가 몰려와
아몰랑 하고 자버렸습니다.. 이거 물 닦는것도 끝도 없을꺼같고... 일단 할수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냥 맘 편하게 잠이나 잤습니다.
바닥에 물이 솟아오르니... 가습기 안틀어놔도 되네 개꿀 ㅋㅋㅋ 하며 맘편히 잤죠..ㅋㅋ
27일 워터월드..
눈을 떴습니다.
알람 울릴시간 훨씬 이전에... 집이 너무 조용해서 깼습니다..
이명이 있어서... 조용하면 이명 소리때문에 잠을 못자기에..컴터도 켜놓고(게임으로 낚시돌림ㅋ)
음악도 틀어놓고 잤는데... 모든것이 꺼져있었죠...
네.. 정전이었습니다. 합선이라도 됐는지 휴즈가 나갔는지... 여튼 전기가 나갔더군요..
휴대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5시... 망할 일찍도 일어났지.. 일단 오줌이나 누려고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찰박...
으허허... 그 차가운 물의 감촉에 깜짝 놀라서 발을 떼고는 휴대폰 라이트로 바닥을 비춰봤습니다.
.... 물이 고여있더군요.. 그것도 무쟈게 많이..;;;; 수심이 족히 1cm는 되어있을꺼 같았습니다...
물로 가득찬 바닥 위 침대에 앉은 모습이 마치 물위에 떠있는 배 위에 있는듯 해 나름 운치가 있더군요..
전기가 나갔으니 보일러도 꺼졌고 전기장판도 꺼졌으니... 숨쉬면 김이 나올정도로 추웠습니다.
평소 안을라 치면 지랄 해대는 고양이도 그때만은 얌전히 안겨있더군요.
고양이를 안은체 타이타닉 마지막 장면 떠올리며 바들바들 떨며 주인아줌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매우 이른 아침이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했습니다만.. 안받더군요..
그래서 문자를 남겼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적었드랬죠..
여튼 침대위에서 궁상떨며.. 할일없이 자다가 졸다가 고양이 만지작거리다 핸폰으로 짱공유 보는 따위의
시간 떼우던 중 주인아줌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사람을 보내긴 했는데... 지금 다 대목이라 고향길을 가서 인부를 구할수가 없다고
어쩌면 좀 오래 걸릴수가있다.. 하지만 일단 아저씨부터 보내겠다.. 더군요.
그때부턴 아저씨 기다리며.. 버스표 예매 취소하고.. 부산에는 못내려간다 연락도 돌렸습니다.
전화로 낄낄낄 이게 무슨일이야? 크크크 하며 수다떠는 중에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봤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알게된사실은...
같은 반지층인 옆집에서 보일러가 동파했는데... 여기서 물이 콸콸콸콸 쏟아져 나왔나보더군요.
저희집이 더 지대가 낮아서 그 물이 세어서 들어온건가 보구요..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그 동파된 보일러로 부터 쏟아지는 물을 잡을 길이 없는지 보일라 수리공도 부르고..난리도
아니더군요.. 그러고 있는 중에 주인아줌마가 보낸 아저씨까지 가세해서 물길을 잡더군요.
그때 시각이 9시쯤이었고.. 전 추위에 떨었던 데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아저씨한테 저 잠시
밥좀 먹고 오겠다며 편의점가서 백종원 도시락 먹고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사건은 모두 해결되어있더군요...
저희집만 빼놓고요..-ㅅ-;
그때부터 서울에 살고있는 친구를 불러다가 물퍼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친구가 오는 동안 겜방에서 게임을 하며 몸도 녹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죠.ㅋㅋ
친구가 찾아오자..근처 천냥백화점같은데서 쓰레받기와 세숫대야를 사들고 갔습니다.
대략 12시부터 물을 퍼나르기 시작해서... 6시쯤에 끝나더군요..
지금 근육통에 고생하는거보니.. 평소 핼스장에서 하는 운동은 쓸모없는 근육이 확실합니다 ㅋㅋ
작은방큰방부엌겸거실 이 세군대 모두 물이 고여있었는데 푸는것도 일이 장난 아니었지만
장판 아래에 꿀렁꿀렁 고여있는 물을 꺼내는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하는수없이 커터칼로 잘라낸 후에 밀대걸래로 바닥을 잘라낸부분으로 밀어서
물을 끄집어 내는 방법을 사용했죠.. 그렇게 사용한 제 수건은 더이상 쓰기가 찝찝해
버려버리고 이 참에 뽀대나는 수건으로 싹 재구입을 했습니다.
참으로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만하길 다행인거 같고.. 또 어릴적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문현동 살때 동내 옆에 흐르던 똥천강이 범람해서 홍수가 일어나 집 옆에 있는 공중화장실의
똥물을 다 퍼서(?) 집안을 가득 채우던 때에 비하면 일도 아닌셈이죠. 당시 형태를 보존하고
있던 똥이 집에 쌓인 물위로 둥둥떠다니던게 기억이 생생하네요..ㅋㅋ
지금은 고작 1cm니... 당시 물이 책상위까지 올라와...옆동내 여인숙으로 피신했던 때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ㅋㅋ
역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한게... 딱히 이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한건 없지만
멘탈보존에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군요.. 이까이꺼..ㅋ
지금 바닥의 물을 말린답시고 보일러를 이빠이 틀어놓은지 이틀째인데... 바닥 뜨겁고
가스비도 살짝 걱정이긴 하지만... 너무 건조한탓에 목감기가 생길려고 하네요...;;
불과 일주일전에 겨우 나았는데 다시 목감기라니이..!!
기회를 틈타 장판아래의 쿠퀘한 곰팡이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챙고 있습니다만 정말 이만하면
다행이다싶네요..ㅋㅋ
아..그래도 운이 좋았다 싶은게.. 원래 26일 회사마치고 바로 내려가려고 했었는데 그날은 내려가봐야
만날사람이 없어서 예매 취소하고 다음날로 잡은건데... 만약 저 내려갔을때 일이 벌어졌으면...
끔찍하네요.. 부산 내려갔다 집에오니... 두깨 1cm의 얼음바닥이 저를 반기고 있었을 상황이니까요..
그리고 또 운이 좋았다 싶은게... 원래 땅바닥에서 자는데.. 최근에 침대를 구입했습니다. 이 침대가
구명보트 역할을 할 줄이야...ㅋㅋㅋㅋ 만약 침대없었으면... 자다가 수재를 입을 뻔했네요.ㅋㅋㅋ
차편을 구할 방법도 없고.. 또 심신도 지치고 집안 꼴도 걱정되서 이번 구정일정은 모두 취소했는데..
할머니께서 저 좋아하는 식혜도 만들어놨는데 못내려와서 많이 아쉬워하시더라구요..
다음달에 시간 내서 뵈러 가야할듯^^;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 보상같은건 어떻게 되는건가요?
하루 친구랑 같이 고생한거랑 고생한 친구한테 밥먹이고 노래방 쏜다고 든 돈이랑
이불이랑 수건이나 기타 등등 이참에 버린거 말고는 재물손해도 없어서.. 청구하기도 뭣한데다가...
사실 보상 받는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거같지도 않고... 딱히 안받아도 되긴하거든요..
되려 업만 쌓일거같은... 물론 사실 귀찮은게 제일 크지만요..ㅋ
근데 주인아줌마 말로는 옆집사는 사람이 30대 초반의 여자 혼자 산다고 해서...
솔직히 이참에 안면이나 텄으면 하는게 제 솔직한 흑심....이라;;(전 37세 총각...)
근데 보상을 들먹이며 접근하면 첫인상이 좋지 않을꺼같기도하고..;
이쪽으로 좋은 조언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긴글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복많이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