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방송의 신뢰도를 믿는다. 그것이 바로 영상매체의 힘이다.
내 눈으로 보면서 내 귀로 들었다.
방송에서 저렇게 대통령의 쾌활한 미소와 함께 적극적인 칭찬을 이어가고 있는데,
설마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이끌겠느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설마, 방송이 저렇게 칭찬하고 있는데 내 삶을 파괴할 정책에 대해
방송이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 독재자들의 언론장악 ]
“민주주의의 기초가 진실이라면, 독재체제의 기초는 주장이다.
독재체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이다.
이들이 주장하면 그게 통하는 법이다.” _나오미 울프
독재 권력은 독자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을 공격하는 동시에,
사실을 왜곡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퍼트린다.
언론인에 대한 중상모략과 함께 그들을 해고하겠다는 압력을 행사하고,
공영방송에 재갈을 물린다,
이런 언론통제는 독재정권에겐 필수적인 것이다.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은 가장 먼저 언론의 입을 막았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지 않고는 독재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비리와 비민주적인 실상을 언론에서 낱낱이 보도하기 시작하면
그걸로 독재자의 운명은 끝이다.
국민들이 그에 대한 저항을 펼 것이기 때문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잡은 후 곧바로 당시에 인기를 끌었던 라디오를 장악했으며,
괴벨스는 국영 라디오 직원 가운데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자들을
13퍼센트나 해고했고,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 사태 이후 외국 언론인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언론인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또한 언론에 대한 탄압은 사실에 대한 조작으로 이어진다.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이 아니라 큰 거짓말 한 번에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히틀러의 말처럼, 나치 독일에서는 나치의 메시지가 거짓의
선전선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작된 메시지들은 상황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고전적인 심리전의
수법이다. 이렇게 되면 진실은 실종될 뿐만 아니라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진실의 절대적이며 영구적인 위상이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 상징조작의 명수, 괴벨스 ]
아마도 우리는 역사상 유래 없는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다.
혹은 가장 악랄한 범죄자이거나. - 요제프 괴벨스 , 나치 선전 부 장관 -
"대중은 여자와 같아 자신을 지배해 줄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계속하다보면 결국에는 모두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국민에게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한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긍당하지 않는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에게 한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 괴벨스의 언론이용 ]
나는 히틀러가 괴벨스를 만들었듯이 괴벨스가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전시 독일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
선전은 정신적 인식을 전할 필요도 없거니와 점잖을 필요도 없다.
성공에 이끄는 것이 좋은 선전이다." 그는 온갖 매스미디어의 기술을 총동원해가며
현대 대중선동의 기본과 선전의 무서운 효과를 처음으로 보여준 교과서였다.
- 홍사중 <조선일보> 논설고문.
그는 ‘민족공동체’를 내세워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흔들어 대중선동에 성공했다.
그 결과 독일 국민들은 나치즘에 현혹되어 전쟁에 나섰고 히틀러를 '신의 도구'로
까지 격상시켰다.
정치가로서의 미디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먼저 눈을 뜬 그는
미디어 조작을 통해 단 시간 내에 독일 국민의 정신을 지배했다.
괴벨스는 영화보다는 라디오에 먼저 주목했다.
그는 라디오 보급을 위해 34-35년엔 국가 보조금을 사용하여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평균 급료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게 했다.
세계에서 가장 싼 라디오였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렀다.
독일인들은 찢어지고 갈라지는 듯한 히틀러의 목소리를 이젠 라디오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독일 각지 어디에서고 전당 모임이 있거나 연설이 있을
경우 라디오 중계차량이 그 뒤를 따라 전국 방송을 하게 했다.
매일 아침 일찍 베를린의 각 신문사 편집자와 모든 지방신문 기자들은 선전부에
집합하여 괴벨스나 그의 조수들에게 지시를 받았다.
괴벨스는 편집자와 기자들에게 어떤 뉴스는 발표하고, 어떤 뉴스는 잘라버리고,
어떤 뉴스는 어떻게 쓰고, 어떤 제목을 달고, 어떤 행사는 취소해야 하고,
어떤 행사는 개최토록 하며, 그날의 논설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지시했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히틀러가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기가 무섭게
소문을 잠재울 만한 효과적인 방법도 연출했다.
즉 히틀러의 살아있는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격려 연설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도부 쪽에서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두려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으로 세뇌시킨 것이 주효했던 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국민들의 대부분은
히틀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 방편으로 괴벨스는 역사적인 예를 들고 여러 사례들을 비교했으며,
소위 불변의 역사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최후수단으로 어떤 종류의
비밀병기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괴벨스의 활동은 특히 후방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었으며 바야흐로
총력전의 주창자가 되었다.
히틀러는 때때로 괴벨스가 만약 옆에 없었더라면 나치 정권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재능있는 나치의 무대감독은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가장 소름끼치는 잔혹극의 연출을 마쳤다.
전날 그는 히틀러의 뜻에 따라 제국의 총리로 임명되었다.
단 하루 동안, 불과 몇 평방미터의 공간 속에서
그는 그렇게 마지막 후계자가 되었다.
[베를루스코니의 언론장악]
당신의무의식을 파고든다
그의 정치성공의 기반은 ‘방송장악’에 있다. 그는 방송을 정치에 이용한
이탈리아 최초의 정치인으로 거론된다.
새로운 뉴스보도 방식을 이용한다. 이른바 ‘샌드위치 뉴스’ 정치적 공방이
큰 사안에 대해 ‘정부-야당-여당’ 순으로 입장을 듣는 것이다.
야당의 입장도 방영되기에 얼핏 공정한 보도일 듯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청자들은 ‘마지막 입장’을 옳게 느끼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공정히 보도되지만 늘상 정부가 일방적으로 승리할 뿐이다. 정부 권력에게
‘사유화’된 방송으로 전락한 것이다.
2001년 재집권에 성공한 그는 방송시장 45%를 점유하고 있던 공영방송
<라이>(RAI)마저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2004년 ‘가스파리법’이 통과되면서
라이의 이사 3분의 2가 정부·여당 편향 인사로 채워졌다.
시민 300만명이 모여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전파를 타지 못했다.
민영과 공영 방송 모두 권력이 소유한 결과다.
베를루스코니는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전통적으로 좌파를 지지해 온 노동자
계층과 젊은 유권자들까지 '전향'시켜 압도적인 승리를 얻는다.
갖가지 오락과 선정성이 도배하는 미디어 프로그램 앞에 고단한 일상을
던져버리고, 정치에는 관심 가지지 않도록 한 고도의 정치 전략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