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열매들

행동반경1m 작성일 09.07.05 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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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꽃'


"백만학도 여러분, 전대협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1989년 6월30일 평양 순안공항에 첫발을 디디며 외친 한국외국어대 4학년 임수경씨의 일성은 남과 북에 동시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당시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의 프리마돈나가 되었고 8월15일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귀환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통일의 꽃'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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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30일 입북한 임수경이 8월 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나와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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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 판문점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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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전대협대표로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양이 밀입북혐의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수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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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뜰에서 농성중이던 전교조 교사들과 명동성당 청년회원들이 27일 오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를 맞으러 판문점으로 향하자 박수로 환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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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27일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의 판문점 귀환을 맞으러 명동성당을 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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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를 맞으러 판문점으로 가다 연행되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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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를 맞으러 판문점으로 가다 연행되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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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양 귀환을 위해 판문점으로 가려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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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양이 판문점으로 귀환하겠다고 한 27일 서울에서 판문점에 이르는 도로에는 대학운동권 학생들의 판문점행을 막기위해 검문검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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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신부를 북한에 보낸 정의구현사제단의 박병준(왼쪽), 남국현신부(가운데)등이 29일 낮 명동성당입구에서 경찰관이 제시하는 사전구속영장을 확인한 후 영장집행에 순순히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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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8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 회의에 앞서 북한측이 현재 북한을 방문중인 임수경 양과 문규현 신부가 북한에서 벌이고 있는 방북활동을 녹화한 테이프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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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체육회담에 참석한 북측 기자들이 임수경양이 방북 당시 찍었던 사진을 주제로 만든 달력을 가지고 와서 펼쳐보이고 있다.


 

1989년 6월 30일 전대협 대표 임수경(외국어대 불어과 4년)양이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위해 단신으로 평양을 방문했다.전대협은 정부가 평양축전에 참가하지 못하게하자 극비리에 임수경대표를 제3국을 통해 평양축전에 파견했다고 밝혔다.평양에 도착한 임양은 북한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평양축전에 참가하는 동안 북한학생위원회 위원장 김창룡과 함께 조국통일의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8개항의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백두산을 출발, 한라산을 향해 국토를 종단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에 참가했다. 축전이 끝난 후 임양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파견한 문규현 신부와 함께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판문점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귀환한 직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3년 4개월 동안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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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8년 11월 6일, 서울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학과

경력 2001년 방송위원회 남북방송교류추진위원회 위원
1995년 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김일성대 출신이 쓴 북한 이야기 

http://www.journalog.net/nambukstory/14104


사회로 나온 뒤 단체 간부도 맡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일반학생'에서 갑자기 하나의 '상징'이 돼버린 자리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서강대 언론대학원을 비롯해 방송통신대(법학), 미국 코넬대 동아시아 연구소(인권학)를 거쳐 한국외대 언론대학원에서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사고로 홀로 키우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잃던 2005년에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방송위원회 남북교류위원회 추진위원, 케이(K)-티브이 통일프로그램 진행, 학교 강의까지 "잠잘 틈도 없이" 바빴다. 그러다 한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인연이 있었던 경남 합천 해인사로 도망치듯 찾아가 꼬박 1년을 머물렀다.

거기서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이전에 만난 것은 주로 단체·민중 등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평범한 이들과 마음을 열고 만나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임씨는 회고했다. 임씨는 "나만 힘들고 아픈 줄 알았는데 그들을 만나면서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 남 얘기를 듣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 뒤 외국을 떠돌다 2007년 후반기 학교로 돌아갔는데 박사논문에 손이 가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상처가 그를 붙들었다. 올 1월 다시 오스트리아로 훌쩍 떠났다 최근 일시 귀국했다. 이곳에서 부룬디, 시에라리온 등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와 유럽, 미주 등지에서 온 35개국의 학생들과 한 주방에서 밥을 해 먹으며 평화와 인권, 국제관계 등을 배우고 있다. 임씨는 "30대에는 내 개인적인 삶을 살아 보려고 몸부림쳤지만, 40대에는 우리를 위한 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그의 최근 생각은 어떨까. "20여년 전 받은 그들의 진심어린 환대와 통일에의 열망은 내 깊은 곳에 남아있어요. 그들이 힘들게 산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 아프고 이념을 떠나 평화를 이루고 분단을 극복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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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년 08 월 15일 오후 3시27분께 헬기편으로 서울 국립극장 마당에 내린 임수경(왼쪽에서 두번째)씨가 서울시경 수사관들에 의해 서울 2거 9041 검정색 그라나다 승용차에 태워지고 있다.
임씨는 붉은 티셔츠에 흰바지 차림으로 피로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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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가 손을 잡고 1989년 8월 15일 오후 2시20분께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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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에서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에 슬퍼하는 임수경씨

이제.. [1] icon_new.gif 09.07.21. 00:25710dotline.gif 15.gif행동반경1m icon_copy.gif710dotline.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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