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협약이 무효인 근거

행동반경1m 작성일 09.09.23 22: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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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문제는 대개 100년이 지나면 시효가 만료되는 것이 국제법의 통례라고 한다.

 

따라서 간도영유권 문제는 2009년에 100년을 맞기 전에 우리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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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는 일반적으로 백두산 북쪽의 만주 지역 일대, 연변조선족자치구에 해당하는 지역인 북간도(동간도)를 가리키

 

고, 백두산을 가운데 두고 두만강 대안(對岸) 지역인 동간도와 압록강과  송화강 상류 대안 지역인 서간도로 크게 구

 

분된다. 넓게는 만주와 연해주까지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간도분쟁은 백두산정계비의 내용을 둘러싼 국경분쟁인 법률적 분쟁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분쟁의 실

 

상은  백두산 일대의 간도지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임과 동시에 정치적 분쟁이다.

 

따라서 간도분쟁의 핵심지역인 간도영유권의 범위 규정이 선결문제이다. 대개  두만강·압록강 대안을 동·서간도라

 

일컬어 왔다. 이 간도에서 우리의 주권이 발현되면서 시간이 지남에 간도의 개념은 봉금지역으로 더욱 확장되기 시

 

작하였다. 이 지역이 봉금되자 연해주도 자연 봉금되어 무인지대가 되었다.

 

청은 러시아의 강박에 의해 1860년 북경조약을 맺고 봉금되어 온 민족의 고토인 연해주를 러시아에 불법 할양하였으

 

며, 당시 조선은 조약체결 사실도 몰랐다. 그러므로 간도분쟁은 백두산정계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중 간에 완

 

전한 국경선을 결정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양국 간에 광활한 무인지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도분쟁은 봉금지역인 무인지대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임과 동시에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개입된 정치

 

적 분쟁이다.

 

 

  2차에 걸친 한·청 국경회담과 1909년 일·청간의 간도협약 체결 과정에 나타난 논쟁점을 분석하면 간도분쟁을 국경분

 

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점을 열거하면 

 

 

첫째, 백두산정계비의 가치  둘째, 비문 내용의 해석 즉 토문강의 실체

 

셋째, 을유.정해 국경회담의 효력  넷째, 1885년 이후의 교섭서 및 선*정에 대한 견해 

 

다섯째, 역사상의 사실에 관한 쟁점이다.

 

 

 

 

간도협약이 무효인 근거

 

 

1. 을사늑약은 강박 및 원천적으로 조작된 무효조약

 

 

  간도협약의 무효성은 국제법적 법리상 무효임이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첫째, 분쟁 당사국이 아닌 일본이 청

 

과 맺은 간도협약의 법적 근거인 을사늑약이 국제법상 원천적으로 조작된 무효조약이기 때문에 간도협약 역시 무효

 

이다. 일본은 1905년 10월 27일에 ‘조선보호권 확립실행에 관한 각의결정’을 하여 “도저히 조선정부의 동의를 얻을 희

 

망이 없을 때에는 최후의 수단을 써서 조선에게 일방적으로 보호권이 확립되었음을 통고하라”는 방침을 세웠다. 이

 

러한 결정에 따라 일본군은 즉시 서울에 파견되었고 이등박문은 임권조 공사, 장곡천(長谷川) 사령관을 대동하여 11

 

월 17일 황제와 대신들을 위협하여 강제로 을사늑약 조인토록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 지배가 법적으로 합법적이

 

라는 근거를 삼아온 을사늑약이 국제법상 원천적으로 무효조약임이 밝혀졌다. 즉 규장각의 을사늑약의 원본은 고종

 

황제의 서명·날인·위임장이 없으므로 위조 체결된 것이다.

 

 

 

 

2.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에 의해 무효.

 

 

  이와 같이 국제법상 무효인 간도협약이 지금까지 존재하여 1909년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지 아니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에 나타난 일련의 조치인 1943년의 카이로선언, 1945년의 포츠담선언에 위배된다. 카이로 선언

 

문의 “만주 … 등 일본이 청으로부터 빼앗은 모든 지역을 반환하며  …… 일본은 폭력 및 강욕에 의하여 약취한 기타

 

모든 지역으로부터 구축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포츠담 선언의 제8항은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라고 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1945년 항복문서에 이 선언들을 수락하였기 때문에 이 두 선언의 구속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일본

 

은 폭력과 강욕으로 약취한 지역에서 구축되어야 하며, 이것은 1895년 청일전쟁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며 일본이 이

 

모든 지역을 탈취하기 위하여 제물로 바친 간도도 1909년 이전의 상태로 반환되어야 된다. 또한 1951년 체결한 中日

 

평화조약 제4조에는 “중일 양국은 전쟁의 결과로서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체결한 모든 조약·협약 및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1909년의 간도조약은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체결한 협약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효로

 

되어야 한다.

 

 

 

 

3. 법적 권원이 없는 제3국에 의한 영토처리

 

 

  간도협약은 법적 권원이 없는 제3국에 의한 영토처리이므로 무효인 것이다. 이것은 조약의 제3국에 대한 효력 문제

 

로서 국제법상 조약은 당사국에만 효력이 있을 뿐 제3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즉 일반적 성격의 입

 

법조약을 제외하고는 제3국에 의무를 과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약은 그 한도에서 무효이며 또한 국제관습상 비도

 

덕적인 의무를 부과하려는 조약은 국제법상의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간도협약은 제3국의 권한을 중대하게 침해한 국제조약의 성격을 가지며 그 자체로써 주권침해라는 불법

 

행위를 구성한다. 또한 일본은 간도문제 해결을 위한 조약체결능력이 없으며, 간도는 일·청간에 논의될 대상이 아니

 

기 때문에 간도협약에 의해 한국의 간도영유권이 무효화될 수 없다. 한국영토의 변경은 주권의 속성의 문제로서 오

 

직 정당한 한국주권의 행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간도가 최근까지 중국에 의해 점유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권변

 

경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간도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일이 없으므로 중국에 대하여 간도협

 

약의 무효를 선언할 수 있다.

 

 

 

 

간도의 의의

 


1. 우리 땅 간도는 민족, 건국의 발상지이다.

 

 

  간도지역의  백두산·송화강·흑룡강 일대는 애초 우리 민족건국의 발상지로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이 지역은 우리 민족 고조선·부여 이래로 재세이화(在世理化), 弘益人間의 건국이념을 실현시켰던 곳이다.  

 

 

 특히 영문국명인 korea의 발원지인 고구려의 옛 도읍지가 서간도지역에 있으며 발해 옛도읍지는 북간도지역에 있

 

다. 특히, 이 지역 반만년의 역사 중 우리 민족이 3,352년을 지배하였지만,  한족(漢族)의 지배기간은 5백년 정도에 불

 

과하다.

 

 


 2. 고래로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간도지역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로서 수천년간 점유해왔던 곳이며, 근대 조선과 청나라가 봉금지대를 설정 무인지

 

대인 상태에서 우리 민족이 먼저 들어가 피땀흘려 개간하였다.

 

 

 

3. 민족의 역사, 문화 및 동질성의 회복

 

 

  간도회복은 남북통일과 재중동포는 물론 재외동포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의미한다. 반세기

 

이상의 남북분단은 모든 분야에서 이질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간도지역에 거주하는 재중동포들도 지금까지는 우리

 

의 언어와 전통을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지만 3·4세 후손들은 중국에 동화되어 민족의식이 조금씩 이완되어 가고있

 

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 중의 하나가 간도영유권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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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를 옛 조선 영토로 표기한 18세기 영국의 고지도가 발견됐다. 또 동해를 `일본해'가 아닌 `한국해'로 표기한 영국

 

의 다른 고지도도 함께 공개됐다. 특히 이 중 하나는 간도 지역을 조선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두 점의 지도는 모두 1740년 영국 왕실 지리협회 소속의 지도제작자 이만 보웬(eman bowen)이 만든 것으로 서쪽의

 

아라비아 반도에서 동쪽 우리나라, 일본까지 당시 아시아 각국이 다 나와있는 아시아 전도이다.

 

컬러본 지도에는 당시 조선의 영토가 북쪽으로 간도, 만주 지역까지 아우르는 것으로 표시돼 있어 학계의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 표시돼 있는 조선과 중국 사이 국경은 서쪽에서 중국 선양(瀋陽)을 기점으로 시작해 동쪽의

 

러시아 접경 지역까지 연결돼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 기준인 압록강과 두만강 위치보다 훨씬 북쪽으로 치우쳐 있

 

다.

 

간도 전문가인 김우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는 "1708년 중국 청나라가 제작해 유럽으로 전해진 황여전람도(皇

 

輿全覽圖)를 토대로 만들어진 지도로 추정된다"며 "그렇다면 중국이 당시 간도 지역을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는 사실

 

을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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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 키친(t. kitchin)이 제작한 ‘a map of quan-tong or

 

lea-tonge province ; and the kingdom of kau-li or corea’ 지도. 동해를‘sea of korea’라고 표기했다

 

 


 

 

기타 간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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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되찾기 운동본부

 

 

 

출처 : 다음 - 대영제국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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