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 주택 중심의 공급 정책으로 가계 부채 확대
2007년 12월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수요 통제보다는 공급정책을 통한 가격문제 해결'을 기본방향
으로 했다.
신혼부부를 위한 12만호 포함해 연간 50만호의 주택을 신규 공급하고,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신도시 난개발보다 구도심지 재창조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부동산과 관련한 그의 대선 공약은 취임 후 정부 정책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지만 규제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라는 큰 틀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반기에 내놓은 정책들은 대선공약과 인수위에서 기획된 과제들의 부분 조정 수준이었다면 하반기에는
주택거래 감소와 미분양이 증가하자 건설재벌과 경제단체들이 요구한 미분양 해소 대책, 감세, 공급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정책들을 대거 발표했다.
◇집권 1년차, 부동산 버블 붕괴 막아라
2008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기로 인해 국내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부동산 및 건설 경기 부양
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8년 ‘8.21 주택공급 기반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시작으로 ‘9.1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세제’,
‘9.19 500만호 주택 공급 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이후에도 ‘10.21 가계 주거 부담 완화 및 건설 부문 유동성 지원·구조조정 방안’과 ‘11·3 경제 난국 극복 종합 대책’
등을 내놓았다.
2008년 한 해 동안 발표된 96건의 부동산 정책 중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74건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쏟아내
며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와 △수도권 및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수도권 및
뉴타운 재개발 부동산 전매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유명무실화 △수도권 규제 완화 △부동산
담보 대출자에 대한 상환 만기 조정 등을 착착 시행해 나갔다.
2008년 내내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힘쓴 덕분에 2009년 초반을 넘기면서 주택 가격은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
으로 반등세를 나타냈다.
여기에 외환위기 때의 학습효과로 생긴 V자형 경기 회복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작용, 집값 올리기
에 한 몫을 했다.
◇부동산 투기억제 장치의 빗장 풀어
2009년에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기본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 정부는 건설업계의 경영난을 가중하는 미분양
주택을 해소한다며 다양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연초에 ‘분양가 상한제’ 폐지 방침을 제시했고 3월에는 ‘경제 활성화 지원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전에 3주택 이상 다주택보유자와 개인 및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양도세 중과제도 폐지 방안을
바로 적용했다.
연이어 4월에는 강남 3구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 의지를 밝히며 ‘부동산시장 3대 규제’로 꼽혀 왔던 ‘분양가 상한
제’와 ‘양도소득세 중과제’ 등의 투기 억제 장치의 빗장을 풀겠다고 나섰다.
결국 ‘경제 활성화 지원 세제개편안’이 5월 국회를 수정 통과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중과세 제도를 폐지하려
던 정부의 정책이 한시적인 세제 완화로 바뀌고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도 없던 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은 부동산 시장의 투자 심리를 부추기기엔 충분했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침체일로를 걷던 아파트 시장이 2009년 2분기 들어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상
승하면서 투자심리에 불을 당겼다.
2009년 4월 전국 집값은 이전 6개월간 지속되던 하락세를 접고 전월보다 0.1% 상승했다.
이때부터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기 시작한 가운데 본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 확대됐다.
5월 주택담보대출은 전월보다 2조4천억원 늘었고 6월 3조5천억원, 7월에도 3조4천억원 각각 증가했다.
◇정부, DTI 확대로 발등의 불 꺼
정부가 공급 일변도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에 변화를 준 것은 2009년 9월을 넘은 시점이었다.
정부는 7월에 담보인정비율(LTV)를 낮추긴 했지만 8월에는 다시 뛰는 집값을 잡겠다며 보금자리주택 조기공급
(8.27 서민주택대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2009년 8월까지 부동산 가격 오름세가 지속돼 전년말 수준을 회복하고 주택담보대출이 8월에도 2조8천억원
넘게 증가하자 수요 규제로 방향을 선회했다.
가계의 재정 적자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정부는 9월부터 은행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
(DTI) 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했다.
대출 수요가 은행에서 보험사와 상호금융사 등으로 이동되자 10월에는 DTI 규제를 제2금융권에도 적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수도권지역에서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에서도 아파트나 일반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
들게 된 것이다.
DTI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2009년 9월에 4천억의 감소를 보였고 10월 이후 12월까지 1조원대 증가에 머물렀다.
주택가격도 9월에 전월대비 0.7% 상승하며 정점을 찍은 후 상승세가 둔화돼 12월에는 0.1% 증가에 그쳤다.
◇MB 정권 부동산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MB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은 공급을 통한 건설 시장의 안정화다. 이는 건설업계에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것은 공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투기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이유도 투기 수요로 가계 소득에 비해 주택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풀고 중대형 중심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고수하면 필연적으로 주택
담보대출 확대라는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유인책에 넘어간 가계가 투자를 위해 무리하게 빚을 얻어 주택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MB 정권은 지난 2년 동안 부동산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한 결과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것은 막아냈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라는 또 다른 폭탄을 키웠다.
한국은행의 ‘월별 금융시장 동향’ 보고서 따르면 2009년 12월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총 265조1천억원에 이르
러 2008년말 보다 무려 25조4천억원이나 증가했다. 2008년에도 전년대비 18조1천억원 늘어나 239조7천억원을
기록했다.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7년 전년비 4조6천억원의 증가에 그쳐 221조5천억원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나타냈던 것
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게 되면 가계는 이자 부담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감소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 공급을 늘리는 정부의 정책이 경기 부양이 아니라 소비를 위축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더구나 각종 건설·토목 사업 지원을 위한 정부의 확대 재정 기조는 정부 부채 증가로 이어져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기
도록 압박한다. 금리 인상이 단행된다면 가계 이자 부담이 더욱 증가해, 주택 매물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일순
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결국,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위주의 정책은 재정 적자 및 가계대출의 확대를 불러와 우리 경제의 커다란 부담
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실 이에 대한 대안은 명확하다. 전문가들은 투기 수요가 많은 중대형 주택보다는 실수요 중심의 소형 주택과 임대
주택 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주택 등 부동산에 잔뜩 낀 가격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분양에 따른 건설업체의 유동성 위기는 시장에 맡기고, 고통스럽더라도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위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유지하면 할수록 우리 경제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2천700만원대의 평균 연봉을 받는 근로자가 서울에서 66㎡(20평)의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13년간 일해야 한다는
것(현대경제연구원, ‘아파트가격 하락 가능성과 시사점’에서 인용)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주택 가격에 대한 사회
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