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사회적․정치적 정체성의 형성과정으로서의 지역주의 심화
1960~1970년대까지 전라도는 선거에서의 개표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뚜렷한 지역주의 성향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자 전라도 사람들이 '지역'을 준거로 결집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는데,
이것이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은 그 발생과정에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라도 사람들의 사회적․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지역주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광주민중항쟁은 경제적인 지역 간 불평등문제를 정치의 전면으로 전환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80년 당시 광주 시민이 공유했던 공권력에 의한 생명박탈 위험, 외부로부터의 차단이 부여한 심리적․사회적 고립감,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 미국에 대한 실망 등은
전라도 지역의 정치적․사회적 정체성 형성과 집단적 결집의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이다.
광주민중항쟁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이 아닌 개인적 입장 속에서 여야로 분열되어,
선거에서 지역적 결집이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면서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를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실현시킬 정치집단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인식은 정치적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전라도 사람'으로 행동하겠다는 '정체성'을 갖도록 하였다.
사회적 차별과 정치적 소외,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을 경험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그 이후 여러 선거에서 그들은 소위 고정표 또는 몰표라는 형식으로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완벽하게 표출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다른 지역의 유권자들은 똑같이 정치적․경제적 불평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심으로 정체성을 획득할 결정적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각 개인별로 여․야 성향과 지역적 연고가 중첩되어 나타나면서 전반적으로 분산된 투표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전라도 사람들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체성 획득에서 얻게 된 높은 지역적 응집력과 강한 저항력은
여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전라도 사람들의 강한 지역적 결집은 지역차별과 지역감정의 산물인 동시에,
지역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게 된 것이다.
특히 영남과 충청 지역사람들에게는 큰 긴장감과 경계심리를 유발해서
영남지역 사람들에게는 방어의식을, 충청지역 사람들에게는 경계의식을 강화시켜 놓았다.
물론 이러한 경계의식은 강원도나 서울 및 이북 지역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그 방어의식과 경계의식은 다시 전라도 사람들에게 던져져서 호남에 대한 차별화를 더욱 증폭되었다.
그것은 다시 호남의 소외의식을 증대시키고 저항의식을 높여서,
'호남 대 非호남'의 지역갈등을 갈수록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우리 나라의 지역주의는 각 지역마다 형성원인과 배경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호남지역 사람들은 차별과 소외의식을 오랫동안 경험해 왔던 상황에서 80년 광주민중항쟁이라는 계기를 통하여
강력한 '지역' 중심의 집단 정체성을 얻게 되면서 지역주의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이에 비해 영남 지역 사람들의 집권당지지경향은 장기적인 보상-지지 관계를 경험하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적 결집에 비할 것이 못되었다.
또한 충청지역의 경우 뚜렷한 보상-지지 관계도, 그들만의 정체성을 형성할 어떤 계기도 경험하지 못하였다.
충청지역의 지역주의 성향은 "남들이 뭉치니까 우리도 뭉친다"는 식에 가깝다.
호남지역 사람들과 영남지역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지역주의 성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충청지역 사람들은
경계심을 얻게 되는 과정 속에서 약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지역주의를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4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