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지역감정의 심화
1961년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시대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집권세력을 특정지역 출신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그 결과 지역 간 차별이 심화되었고 열세지역에 대한 부정적 담론이 배제의 기제로서 확대․재생산되었다.
정치엘리트 충원과 경제발전에 있어 영남지역을 우선한 것은
차등발전전략 이외의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행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정당성이 약한 군사정권이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보상 관계를 구축한 측면이 강하다.
박정희 정권 시기를 통해 지배세력이 영남으로 결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등발전 전략에 의해 지역적 불균등이 구조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라도 사람들이 느껴야 했던 차별과 박탈감은 심각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차별이 기존의 사회적 편견에 의해 정당화됨으로써 전라도의 소외감은 더욱 확대되었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 서울로 이주한 상당수의 전라도 사람들이 수도권 하위계층으로 편입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 더욱 확대․재생산되었지만,
이를 제어할 적절한 권력이나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될 여지가 없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와 접전을 벌였던 김대중 후보는
유신체제에 대한 강력한 도전자로서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되는데,
호남인들의 소외감은 곧 그의 수난에 대하여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도록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호남인들은 71년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차별을 받게 되지 않았을 것이며,
차별의 원인은 박정희 후보의 당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소외와 차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김대중 후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유신체제 하에서 정부가 김대중 후보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의 도전을
호남인들의 움직임으로만 격하시켜 지역적 편견을 더욱 부추겼다.
그러나 사실상 1960~1970년대 동안 다수의 전라도 사람들은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차별, 그리고 사회적 편견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국가와 지배구조에 대한 협력․동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개인적 차원에서 입신양명을 추구했고
정치적 차원에서도 여․야 대립구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이는 1970년대까지 전라도가 지역감정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집단 지향적인 사회적․정치적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