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찌라시 말고.
http://www.kea.ne.kr/upload/catalogue_file/60a21aec9785858701f944f24f46446b.pdf
좋은 논문이 있어서 올립니다. 한국경제포럼에 실린 논문입니다.
논문 읽기 귀찮은 사람을을 위한 결론만 짤라 붙이기.
위에서 우리경제 발전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 1960년대의 수출촉진정책과 1970
년대의 중화학공업정책에 대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 때문에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과 공업화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결론내리기 어렵다. 1960년대 초에 시작한 수출급증은 우연성이 높은 세 번의
평가절하가 촉발한 것이다. 1960년 중반 이후의 수출촉진정책은 그와 함께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수출을 저해하는 효과를 중화함으로써 수출에 대한 장애를 제거하였던 것으
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화학공업정책은 경제성장을 시켰다. 그 정책의 강도 높은 산업
간 차별 대우가 당시 수출품의 대부분을 생산하던 경공업을 희생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속성장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기적 이후의 경제성장은 국제분업의 이득을 빼놓고는 설
명할 수 없다. <그림 4>가 보여주듯이, 1992년의 세계교역량은 구미선진국들이 공업화하던 1800
년대에 비해 실질기준으로 500배 이상 크다. 현재 중국의 고속성장은 이렇게 방대해진 세계시장
에의 참여 없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경제의 고속성장은 1820년에 비해 100배 이상 컸던
1960년대의 세계시장에서 국제분업의 이득을 얻은 결과이다. 한 나라가 이 잠재적 이득을 얼마나
현실화하느냐가 그 나라의 경제성과를 좌우하고 있다. 동아시아 기적의 4개국들은 그 이득을 현
실화하였던 나라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정책이 환율현실화처럼 중요 가격변수의 왜곡을
바로 잡거나, 수출촉진정책처럼 국제분업에의 참여를 방해하는 장해물을 제거하는 것일 때에 우
리 경제는 국제분업의 이득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http://www.steeldaily.co.kr/data/20084/4020082014521posco-2.doc
포스코 홍보실에서 나온 자료이며 제철소의 건설시도가 박정희 전에 계속 있어왔고 여러 이유로 실패한 것을 설명한 자료입니다. 그당시 제철소 건설에 대한 시도가 있었던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제철소 건설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네요.
여러번 실패했다는 것은 성공한 박정희의 실행력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반증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