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 사랑하는 법..[5]

그어떤날 작성일 06.12.09 0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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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게 있어요..>


'이게 뭐야..?'

접어져 있었지만 xx일수, 돈 빌려드립니다. 라고 써있는 것을 보아 내가 아까 그 사람한테

줬던 메모지 였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옆자리에서 홍차 마시던 사람인데요, 본의아니게 폐를 끼친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제가 무리하게 부탁을 했던 것 같네요.

전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정말 맛있었어요 그 캔디..제 이름은 김현준 입니다....-


글씨 잘쓰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찰나에 손님이 또 들어왔다.

나는 종이를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손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이래저래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가게는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뒷정리를 해야만 했다.


"수영씨, 수고했어요. 이 쓰레기만 저 앞에 내다 놔 주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봐요~"

"아직 주방 정리 안했는데요. "

"남편 오면 내가 마저 하고 갈테니까 오늘은 들어가보세요~ 그리고 아까 홍차 끓였다고 해서

악의로 그런 말했던 거 아니니까 정말 오해 말아요.."

"네..그럼 그만 들어가보겠습니다."



가게 문을 나오자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겨울이다,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어깨에 매고 두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는데

아까 내가 읽다말고 잊어버린 쪽지가 있단 것을 알았다.


'아참..이거..'


-........ 그런데 표정이 굉장히 어둡네요. 정말 미안해지게..그래서 이렇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쪽지남겨요.

마음은 정말 미안한데 말로써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전달이 안될까봐요.

웃고 살아요~^-^ 스마일~

제 명함 남기고 갈게요, 혹시 기분이 너무 나빠서 따지고 싶다거나 그럼 연락 주세요.

그럼 이만~ 글 보시기 전에 전 가야겠네요. 잘 마셨습니다.-



'명함??'

종이를 앞뒷면으로 살펴봐도 명함은 없었다.

살랑살랑 흔들었는데도 명함은 안나왔다.

당연했다. 메모지가 봉투도 아니고 명함이 나올리가 없었다.

읽는 동안에 그자리에 계속 서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 가게 앞이었다.

뒤에서 누가 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사장님이었다.


"수영씨~, 다행이다 아직 안갔네요. 가게로 수영씨 찾는 전화가 왔어요. 잠시 받고 가요. "

"전화요? 전화올 데가 없는데.."

"수영씨 바꿔달라는데?"


내가 그곳에서 일한다는 건 날 그쪽에 데리고 갔던 친구 밖에 몰랐다.

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만 알지 가게 위치 라던가 전화번호는 알려준 적이 없었다.

가게 내부로 들어갔다.

전화기는 사장님이 늘 사용하고 계셨기 때문에 차를 끓이는 곳 안쪽에 있었다.

나는 다시 가방을 벗어두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김현준인데요."


난 스스로도 눈동자가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의외의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무리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전화해서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 되는데..

사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아, 미안 내가 눈치가 없었네. 편하게 통화해요. "

사장님이 안쪽 주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셨는데도, 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한참을

머릿속에서 단어를 고르는 중이었다.


"여보세요?

내가 대꾸가 없자 그사람이 내 존재 여부를 살폈다.


"네, 듣고있어요."

"아 다른게 아니고 쑥쓰러운데.. 제가 쪽지에는 명함을 놓고 간다구 하고선 안놓고 그냥

왔더라고요, 혹시 찾으실까봐.."

"아 네, 정말 명함이 없더라구요."

"역시 찾으셨구나.."

"그것 때문에 일부러 전화하셨어요?"

"아..그게..실은..음.."


별거 아닌거 가지고 집에 가려는 나를 붙잡고 전화를 받게 하는 것도 약간 짜증이 났다.

사실 이사람이 웃는얼굴이 멋있다고는 생각 했지만, 두 번밖에 얼굴을 안본사람이랑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전화를 하고 있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저 그만 집에 가봐야 되서요, 명함이라면 신경안쓰셔도 되요, 이만 끊을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 하는데,

"저기 수영씨!"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이미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는 중이었고, 끊어버렸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막차를 이미 놓쳐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아~, 하고 한숨이 나왔지만 가계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야했다. 오늘 번 아르바이트 비용의 절반이 날아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장님, 저 가볼게요~"

"전화 끊었어요? 목소리가 굉장히 낯익던데.."

"아까 왔던 남자 손님이에요."

"남자 손님? 현준씨?"

"네."

"현준씨가 이시간에 전화를..?"

"그러게요..모르겠어요. 가볼게요~"

"잘가요~"


가게를 나와서 거리를 쭉 훑어보았다.

밤인데도 번화가여서 거리는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쓸데 없이 불은 누가 왜 발명한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도까지 걸어 내려갔다.

택시를 잡으려고 서있는데 내 옆에 한잔 거하게 한 남자가 지금 몇시에요?, 하고 물었다.

11시 40분이네요, 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 남자는 초점도 잘 맞춰지지 않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택시비 내줄까요?" 라고 대뜸 말하길래 아뇨, 됐어요, 라고 서둘러 말했지만 심장이

떨리고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아니,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냥 내가 택시비 내주고 싶어요..나랑 같이.."

충분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라는 말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그만 두기로 하고

택시를 서둘러 잡았다.

이런 순간에 잡힌 택시가 모범택시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xx동이요."

택시가 출발하고 내부의 따뜻한 분위기에 언 손을 녹이고 있을 즈음, 이제 노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신 것 같은 택시 아저씨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아~ 경기가 어째 이리 안좋나..큰일이구만..'이라던가

'어이고, 아 그거 운전좀 살살하지 늦은 시간에..젊은 사람이..' 라고 혼잣 말을 중얼거리셨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거 젊은 아가씨가 밤 늦게 그렇게 있으면 위험해요, 아까 술취한 사람이 아가씨 한테 뭐라

하는 거 같아서 내가 퇴근 하려다가 아가씨를 태웠잖수."

"아, 그러셨어요?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좀 무서웠어요."


택시 아저씨가 날 태워준건 매우 고마워 할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난 순간 김현준씨가 떠올랐다.

웃는 얼굴...

그 사람도 술에 취하면 아까 그 사람처럼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 한심해 졌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이 되돌려놓았다.


집에 도착해서 스텐드를 키고 외투를 벗고 침대에 앉아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그새 메세지가 들어와 있었다.


'수영아, 나 연흰데, 니가 나 빌려준 참고도서 성민선배가 빌려갔어. 너한테 물어보고

빌려준다고 했는데 그냥 자기가 봐도 된다면서..'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닫아버리고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샤워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한참 지나있었다.

가게에서 보던 전공서적을 다시 한번 꺼내펼쳤다.

팔랑~ 하고 뭔가 떨어졌는데 집어 들어서 보니 김현준씨의 명함이었다.


'아까 명함 놓고 가는거 깜빡했다고 들었는데..'


명함에는 사무실 전화번호, 그리고 휴대폰 번호, 메일 주소가 적혀있었다.

명함을 들여다보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김현준..김현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명함을 준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나보고 정말 연락을 하라는 건가?

이제 두 번 그것도 손님과 알바사이로 만났는데 무슨 연락이야..

명함을 그냥 지갑에 넣어두고,

서서히 힘든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ling~ ling~]


월요일 아침부터 시끄럽게 전화다.

난 이불 속 깊은 바다에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누구야..아침부터..

눈을 비비고 핸드폰을 보니 성민선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여보세요~"

"어 수영아, 나 성민인데..자고 있었구나 미안.."

"아, 아니에요.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니꺼 참고도서 내가 말도 없이 빌렸는데,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돌려주려고.."


시계를 보니 8시다.

"그러세요?, 어디서 만날 까요?"

"내가 너희 집 앞으로 갈게. 니네 집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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