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의 그녀.17

니뿡간지 작성일 06.12.15 12: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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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file.paran.com/MEDIA_9368435/BLOG/200607/1151843523_itakano.wav
이걸 주소창에 붙여 넣어서 들으면서 보세요...
글 내용에 딱 맞는 배경음악입니다... 괜찮으니 들으시면서 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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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지”

정장A는 사격을 중지 시켰다.
선욱은 도망쳐 이곳에 도착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도착한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

선욱은 도저히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괴물 같은 능력을 보여 왔던 예리가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은
믿을 수도 없고 또한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몽롱한 꿈 따위가 아닌 현실.
선욱은 목이 메여오는 것을 느꼈다. 가슴 안이 울컥울컥 요동질을 쳤다.

선욱은 예리에게 다가갔다.
예리는 상당히 넓고 깊은 면적의 구덩이의 중앙에 고꾸라져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위에서 정장A를 비롯한 “Z" 가 예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Z" 는.
특히 선욱을 알고 있는 정장A는 갑작스러운 선욱의 등장에 조금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예리야! 예리야!!!”

선욱은 주저앉아 예리의 머리를 안아들었다. 그리곤 열심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선욱이 그녀를 부르기 전까지만 해도 예리는 의식을 끈을 분명하게 놓고 있었다.
그저 무의식 상태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녀를 부르는 선욱의 애타는 목소리에 다시는 떠질 것 같지 않던 무거운 눈꺼풀이 조금씩 열리며 붉은 눈동자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리야...!! 나야. 알아볼 수 있겠어?? ”

예리는 흐릿한 시야사이로 선욱을 힘겹게 올려보았다.
분명히 그였다.
점점 시야가 밝아오면서 더욱더 확실하게 선욱의 모습이 보였다.

“너...야?.....정말?”

“그래.. 나야. 바보야...어쩌다...어쩌다 이렇게 까지 된 거야!!”

선욱은 안타까운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져버렸다.
하지만 예리는 그저 반가웠다. 그저.

예리는 아무 말 없이 살가죽이 거의 다 벗겨진 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선욱의 오른손을 느끼고는 꽈왁 움켜쥔다.
선욱은 너무나도 뜨거운 그녀의 손바닥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손은 언제나 얼음장 같이 차가웠었다.

“예리야... 괜찮아....”

선욱은 몸 상태가 괜찮냐고 묻는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이 괜찮다며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인지 구별이 안가는 목소리 톤으로 조용하게 속삭였다. 그리곤 왼손으로 그녀의 잔뜩 그을린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야....”

예리 또한 알 수 없는 소리를 나직이 읊조렸다.
그래 다행이었다.
예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리 자신도 선욱이 그들에게 죽지 않아서 다행인지. 아니면 이렇게 만난 것이 다행인지는 몰랐지만. 아니 어쩌면 그것들 모두 다행일지도 모르지.

예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세차게 몸 안을 흔들었다. 죽어가던 심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곁에 있으니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너무나도 편안했다. “Z"에 대한 분노도 인간에 대한 증오도 다 상관없었다. 전에도 그랬다. 그의 곁에 있으면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었다. 편안함.
그래 그저 좋았다....

“예리야....”

반대로 선욱은 예리의 상태를 보면 볼수록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오른손을 잡아 쥔 예리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만큼 몸에 힘 하나 없다는 소리리라.
대체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설령 잘못을 했더라도 이렇게 까지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 놓을 권리가 어디에 있는가.
이건 아니다.

선욱은 어떻게든 예리를 살리고 싶었다.
구덩이 위에서 예리와 선욱을 비웃고 있는 정장A에게서 보란 듯이 살려내고 싶었다.
이쯤 되면 목숨 따위도 상관없었다.

설령 그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예리는 살아야 하니까.
이런데서 이렇게 처참하게 죽는게 아니라. 살아서. 어떻게든 살아서.
조금이라도 행복해져야 하니까. 차가웠던 과거를 조금이라도 보상받아야 하니까.
이 빌어먹게도 불공평한 세상에게 조금이라도 보상받아야 하니까.
선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내 몫까지 살아 줄 수 있을까?

조금 불안했지만. 좀 더 그녀를 즐겁게 해주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녀를 위해 죽는다면 나름대로 괜찮다.
아마도 한사람은 나를 영원히 기억해 줄 테니까.
선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재밌는 인생이구나...........

선욱은 각오를 다졌다. 결의가 바뀌기 전에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녀를 살려야 한다.
선욱은 이런 생각에 가득차서 나지막히 예리를 불렀다.

“예리야?”

“응..?”

“내가......... 없더라도 잘 살아야 돼. 그래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더 좋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꼭 그런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돼”

“무슨 소리....야??”
예리는 선욱이 하는 말의 뜻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자기가 없더라도 잘 살으라니?
예리는 멍한 눈으로 그런 선욱의 얼굴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언가 달랐다. 평소의 그하고는 어딘가 다른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예리는 다 죽어가던 몸을 일으켜 안간힘을 다해 그의 가슴팍에 와락 안겨들었다.
여자의 감일까. 그를 놓치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의 몸을 움직인 것이었다.

“예리야....”

선욱은 다시 한 번 예리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았다.
이제 불러주지 못 할 테니까...

예리는 방금 전만 해도 분명히 그를 한번 보고 죽는다면 만족하고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달랐다.
그를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냥 미련 없는 이 세상.
그냥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욱이 곁에 있어주자. 죽는 것이 싫었다.
그와 계속 있고 싶었다. 그것이 예리의 마음이었다.
설령 그 감정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어쩔 수 없었다.

“가지마...! 아무데도...가지마...싫어.. 이제는 없어 지지마..!!”

선욱은 당연히 괴로웠다.
하지만 “Z" 가 있는 이상 이 상황에서 둘 다 무사하게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예리의 몸이 정상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그녀는 현재 걷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녀만 살리려면. 단 한가지의 방법이 있다. 한가지의.

“예리야....미안”

선욱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를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예리를 때어냈다.
이미 거의 넝마조각이 된 그녀는.
선욱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힘조차 못쓰고 그에게서 떨어져 버렸다.

“미안해. 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었어.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살리기........ 위해?”

선욱은 예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는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삶의 욕구가 치솟기에.
이젠 돌아보지 않으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살리기 위해서라니? 대체...무슨 뜻인거야!!
그게 뭐야....싫어. 가지마.. 내 곁에 있어준다고 했잖아?
내가 너를 해치지 않는 한 언제나 외롭지 않게 해준다고 했잖아,
그런 주제에 어디 가는 거야....가지마!!“

예리가 거의 발악을 하다시피 외쳤지만 선욱은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예리야...꼭 행복하게 살아야돼...”

이 말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예리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마구 내리쳤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는 모르지만.
말려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지만.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선욱은 구덩이위로 한발 한발 올라갔다.
그 모습에 정장A가 선욱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야? 이제 극적인 해후가 끝난 거냐? 대관절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어. 저기 저년부터 죽이고. 너는 다시 잡아가면 그만이지. 내가 너희들이 지랄을 떠는 걸 왜 가만히 둔건지 알아? 너 가 00367이 죽어버리는 모습을 더욱 생생이...”

“닥쳐”

“뭐...?”

“내가 닥치라고 했지”

“하하하!! 지금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이야?”

정장A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죽거렸지만 선욱은 다시 똑같은 말을 소리쳤다.

“닥치라고!!!!!”

정장A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작 정도 뒷걸음질 쳤다. 굉장한 박력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조금 쫄기까지 했지만 곧 제정신을 차렸다.

“네가 뭘 어쩔껀데? 별 거지같은 것이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모두. 00367에게 마지막 총알을 박아버려!!“

“!!!!!!!”

정장A가 막 발사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선욱을 볼 수 있는 위치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선욱이 자기의 윗옷을 찢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윗옷을 찢었다고 그렇게 놀랄 리는 없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선욱의 몸에 감겨져 있는 DF폭탄 이었다. 엄청난 파괴력이 자랑인 폭탄이지만 원격조정이 불가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요즘 보통의 폭탄이 사용하는 원격조정이 아니라 일종의 시간을 지정해 주면 폭팔하는 시한폭탄인데. “Z" 가 요번 작전에 가지고는 왔지만 필요치 않아서 대충 내버려 두었던 물건이었다.

“그래 알아보겠어? 니들 꺼야. 게다가 오면서 보니까 시한장치가 망가져서 말이지.
직접 눌러서 폭팔시킬 수밖에 없더라고“

예리는 그의 목소리를 뚜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래 폭탄. 이제야 선욱이 하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안돼.........“

예리가 소리쳐 보았지만. 당연히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왜 까불고 다녔어! 이 개년아. 이 빌어먹을 “Z"야!! 모두 안녕이다.”

“자...잠깐....!!”

정장A가 당황해서 그를 막으려고 하였지만.
그 몇 초의 시간. 선욱은 가차 없이 버튼을 눌렀고. 당황해서 미쳐 텔레포트 할 시간도 없었던 정장A와 그 외 “Z" 들은 폭발에 휘말려 버렸다.
선욱은 버튼을 누르면서 멀찍이 구덩이 아래에서 안 된다고 외치는 예리를 돌려다 보았다.
예리야.... 잘 있어...

“코ㅏ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엄청난 먼지와 폭팔의 잔해들이 마구 용솟음 쳤다.

“안돼......!!!!!!!!!!!!!!!!!!!!!!”

이미 폭격으로 인해 상당히 깊은 구덩이에 엎어져 있던 예리는.
다행히 폭발의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준 방공호에서
목숨을 부지한 셈이다.


그러나 예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먼지가 가라앉고 폭발의 현장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예리는 걸어 올라왔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그가 있던 곳으로 걸었다.
그가 이런 짓을 하기 전에는 그렇게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다리가 왜 이제야 움직이는 지도 몰랐다. 터벅터벅 구덩이를 올라갔다. 어디선가 다시 총알이 날아왔다. 처음부터 그녀를 공격하던 저격수들의 은제탄환 이었다.
하지만 이미 붉다 못해 새까매진 그녀의 눈을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저격수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 왔다.

“콰아아아앙”

4군데의 빌딩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예리는 그들을 처리한 뒤. 다시 구덩이를 걸어 올라왔다. 예리의 앞에는. 예리가 쓰러져 있던 구덩이만한 크기의 폭팔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당연한 거지만. 그는 없다.

예리는 그가 서있던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눈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떨어져 내려왔다.
태어날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예리로서는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구타당할 때도. 그렇게도 몸 구석구석이 실험당할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녀의 시야기 대번에 부옇게 변했다.

“시.....시...싫어.....”

손바닥을 땅에 움켜쥐고 마구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왜 죽어 버린 거야......왜.....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총알이 관통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아픔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는 인간이 아냐.
그래 역시 인간이 아니었어.
인간이라면. 대체 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한거야.
인간이라면 자기만 생각하면 그만이잖아?
나 따윈 버리고 도망가면 그만이잖아?

죽기 싫었던 건 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없으면. 아무의미가 없어.

“왜?... 대체 왜?!!
왜에에에에!!!!!!!!!!!“

-좋아하는 사람이 죽으면 무척이나 슬픈거야-

그가 말한 좋아한다는 건 이런 건가?
예리는 그가 언젠간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한말의 의미가 이런 건가?
슬퍼. 너무나 슬퍼.
이게 슬프다는 감정이면 곧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이야?

“대답해봐? 대답해보라고...왜 아무 말이 없어? 이게 좋아하는 거냐고? 좋아하는 건 행복한 거라며. 즐거운 거라며? 근데..왜 이렇게 아픈 거야. 왜 이렇게 아픈 거냐고..!!”

“이제...인간도...인간도...죽이지 않을께....너 가 싫어 하는건 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너 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제발 대답해봐.....“

예리는 그저 눈물을 하염없이 흩뿌리며 울부짖지만. 대답은 없다. 그저 그녀의 목소리만 아무도 없는 허공으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우리 예리...잘도 잔다...자장자장.....”

그녀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슬픈 자장가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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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코멘 감사합니다.
힘이 납니다. 요번글에도 코멘 주실꺼죠?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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