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의 그녀.29

니뿡간지 작성일 07.04.03 17: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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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온몸이 아파.

끊어질 것 같은 의식.


의식?


나에게 의식이 있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정지한 사고가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시야가 밝아졌다.

아마도 눈을 뜬것이리라.


“여긴.. 어디지?”


나는 무심코 혼자 중얼 거렸다.

생각을 하려고 하니 머리가 아프다.


상체를 일으켜 내 몸을 살핀다.

붕대로 칭칭 감겨있는 몸.

링거액이 조금씩 혈관을 타고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쇄된 방이다.


하지만 침대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것도 병원 입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용 침대들이.

그렇지만 이곳이 병원이라는 생각은 어째서인지 전혀 들지 않았다.


단지 침대들이 나란히 놓여 있을 뿐.

방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벽의 색깔은 미묘하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기분 나쁜 병원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럼 여긴 어디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머리는 아파왔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피. 피. 피.

뭔가 기억하려 하면 이상하게 붉디붉은 피가 먼저 떠올랐다.


칼침. 옆구리를 쑤시는 차가운 칼의 감촉.

그리고 입원. 그리고 폭파. 파괴.


“깨어 난거야?”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가희였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녀의 머리로 떨어지는 콘크리트에 깔렸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러나 그녀는 그 당시 나와 예리를

죽이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진데....

대체 왜?


나의 어리벙벙한 표정을 눈치 챘는지,

가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돼. 일단은 네가 날 도와준 데에 대한 빚을 갚은 것

뿐이야, 잡아먹지 않으니까 그런 표정 풀지 그래? 도와주는 건 이번 한번 뿐이니까“


“헤에?”


나는 솔직히 놀라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그럼 부상을 치료해준 것도 그녀인가?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지나갔다.


“서..설마, 예리는? 그녀는 어떻게 한 거죠!?”


“00367? 죽여 버렸어”


“네??”


가희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그...”


“됐어, 거짓말이야. 죽여 버렸으면 속 시원 하겠지만,

 00367은 밖에 멀쩡하게 살아있어“


“하아?”


그녀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표정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나는 놀림감이 된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나와 예리, 두 명을 모두 돕다니.

솔직히 놀라웠다.

지금까지의 그녀의 행동을 본다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갑자기 기억을 잃었을 당시,

일하던 레스토랑, 옥상, 난간에서, 그녀에게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지껄였던, 대사가 떠올랐다.


“후회... 하지 않는 다고 했잖아요”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에서 튀어 나와 버렸다.

당황에서 손을 내저었지만, 그녀는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설마, 네 녀석.”


“네..?


“됐어, 정말 대책이 없는 놈이야, 너도”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내 손목을 낚아챘다.


“에? 무슨.....?”


“뭐가 무슨 이야? 링거 바꾸려고.”


그녀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조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을,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아...”


쪽팔려서, 얼굴이 빨개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데, 오른손을 타고 엄청나게 나쁜 무엇인가가,

흘러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오른손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왼손으로 내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링거바늘을 빼고 있는

중이었다.


사이코 매트리.


평소에는 필요도 없는 능력이.

이럴 때는 더욱더 필요 없는 능력이.

발휘되어 버렸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 마음속 어둠이 흘러 들어오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은,

예리와는 또 다른 종류의 암흑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좋지 않다.


나는 성급히 오른손을 그녀에게서 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마침, 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희도 그걸 느꼈는지, 나와 거의 동시에 시선을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예리가 그 표정 없는 얼굴과 함께,

나를 힘껏 노려보고 있는 중이였다.


“예...예..예리야?”


“지금 뭐하는 거야?”


예리가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조용하게 물어왔다.

이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열받았을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뭐하냐니, 링거를 바꿔 준다길래”


“왜! 이딴 년하고,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건데!!”


그녀는 예상 밖으로 큰소리를 내더니,

획 돌아서서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버렸다.


“하아?...”


나의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링거를 갈아 끼던 그녀는 왠지 모르지만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링거를 바꾸려면 당연히 가까이 있어야지.

뭐 어쩌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예리였기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킥킥 대고 있는 가희에게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녀의 마음이 내속으로 흘러 들어왔기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런 식의 어둠을 본 이상.


“저기...”


내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자 웃음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식으로....”


“뭐야?”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너무 직설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꺼낸 말이다.

나는 맘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그런 식으로, 자기혐오에 빠져서 살면 좋은가요?”


“뭐가 어째? 자기혐오?”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황당한 듯 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요, 어릴 때부터 나는 살아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에 빠져서,

어느새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자신을 혐오하면서,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며 그런 사람들이

혐오하는 자신보다 쓰레기 하는 사실에 안도하는 거 아닌가요?“


“............”


“왜 자기를 혐오해요? 왜 당신의 운명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내 운명은 그러니까, 타인을 고통에 빠뜨리면서 살아가야할 운명이니까

그게 즐거우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건가요?“


“당신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시끄러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미친놈아!!”


그녀는 그렇게 신경질을 내며 링거를 내동댕이치더니.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예리와 비슷한 행동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섰다.

밖으로 나가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예리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 했다.

화가 난다고 또 사람을 죽이고 다니면 곤란하다.

 

그나저나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이야.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 마다 약간의 통증이 옆구리에서 느껴졌다.



.

.

.

.


예리는 짜증이 났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은, 짜증나, 이 단어 하나가 전부였다.


그가 바보같이, "Z"의 망할년 대신 깔려 버렸을 때도, 이렇게 짜증이 났었다.

대체 그년하고 왜 그렇게 친해 보이는 건지.

정말로 신경질이 났다.

결국 분에 못 이겨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웃기지마!!!”


깨어나자마자, 그딴 년하고 붙어 있는 꼴이 뭐란 말이야.

확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둘 다 없애버리면 조금 화가 풀릴까?


예리는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 생각은 곧 자기혐오로 바뀌어 버렸다.


그 망할년은 몰라도.

그를 죽인다니.


그때는, 그가 배신한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슬퍼서, 들고 있던 칼로, 그대로 찔러버렸을 뿐이다.


그 좋아하던 피가.

인간에게 흐르는 그 피가.

그렇게도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그때 생각을 하니 다시 손이 부르르 떨렸다.


“짜증나...”


예리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가희가 서있었다.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예리에게는 상관도 없는 일이었지만,

선욱과 가희가 손을 잡고 있던 아까의 기억이 떠오르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수가 없었다.

 


“그도 깨어났으니까 빨리 꺼져, 안 그러면 그자식이 뭐라고 하든

산산조각 내버릴 테니까.“


“뭐야?”


가희는 선욱이 갑자기 지껄인 소리에, 갑자기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나빠진 상태였다. 기분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예리가 꺼지란다고 꺼질 그녀도

아니지만 지금은 더욱이 저기압상태였다.

 

“네년은 링거하나 놓지 못하는 주제에,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아니었으면 그가 죽었을 거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무....뭐...뭐야!!”


예리는 정곡을 찔려서는, 발끈해 버렸지만.

도무지 대답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열불이 터졌다.


“너 따위랑 대화할 기분 아니야,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선욱 에게도 그렇게 말해”


가희는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산길로 내려가 버렸다.

예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대로 죽어버려!!”

 

"씨이....!!"

 

“예리야?”


“어?”


예리는 꽥 소리를 지르다가 어정쩡하게 걸어 나오고 있는

선욱을 처다 보았다.


“왜 그래 대체? 방금 깨어난 사람한테 소리는 지르고 나가질 않나...

지금도 누구한테 그렇게 죽으라고 악담을 하는 거야?“


“.........”


예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나던 짜증이 조금 가라앉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왠지 감정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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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만입니다.

별로 여기다 올리고 싶은 기분은 아니지만...

보내주시는 쪽지들 때문에...ㅠ_ㅠ

2개월만에 씁니다...

오랜만에 써서 좀 엉망인데, 차츰 나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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