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 사랑하는 법..[7]

그어떤날 작성일 06.12.16 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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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날 이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아빠는 재판 준비로 바쁘신지 집에 계시기 보다도 외출 하시는 일이 잦아서

얼굴 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내일이 재판일인데, 초조한 마음도 더해만 갔다.


'후~'

무슨 일이라도 해서 몸으로 활동하는 시간 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싶어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기본 화장이라도 하고 나갈까 하다가, 누구하나 잘보일 사람도 없고 또 딱히 치장하고

나가고 싶지도 않아서 머리만 정리하고 그만 두었다.

거울을 보니..모습이 참 가관이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일찍 들어와, 저녁은 같이 먹어야지.."

"네.."


문을 열고 나오니 숨만 쉬었는데도 하얀 김이 나온다.

낙옆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보니 마음이 더 횡한것 같다.


'후~'


또 한숨...

한숨쉬면 수명이 줄어든대, 그리고 그 정도로 땅이 꺼지겠냐?, 라고 연주가 말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성민오빠와 있었던 일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리운 추억에 빨려들어가듯

내 머릿속엔 집에 대한 걱정과 성민오빠와의 일이 공존하고 있었다.

처음엔 떨리고 설레였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 그날일을 곱씹어 볼수록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마음이고 뭐고를 다 떠나서 성민오빠의 행동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난 성민오빠의 이런 면을 사랑한게 아니었다. 반듯한 모습에, 거짓이란 모르는 듯한

그 심성에 반한 것이었는데..

적어도 오빠가 연주와 먼저 헤어진 상태로 내 마음에 대답을 해주었다면 이정도로

부담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었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성민오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우린 아니라고..말하기 위해서..


"여보세요."

"저 수영이에요.."

"어..그래..왠일이야?"


왠일이냐고?



"저기 요전에..그 일 때문에.."

"아..내가 지금 좀..바쁘거든? 다음에..이야기 하자.."



뚜~ 뚜~

바쁜 일..이라..


깨끗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일단 바쁜일이라니 또 전화를 할 순 없었다.

난 집 근처에 깨끗해 보이는 까페로 들어가서 따뜻한 까페모카를 주문했다.

까페 안은 따뜻했다. 창문을 한개 두고 밖은 너무 춥다.

벽하나로 공기와 기온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왠지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가 벽을 쌓으면 성민오빠와 난 알고 지내는 오빠동생 이상일 순 없는 것이었다.

또 상념에 젖어 들었다.

예전에 나는 나보다 2살 연상인 사람과 교제했던 적이 있었다.

그사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귀자고 했을 때 이렇다 하게 거절할 말이 없어서

어영부영 승낙한 꼴이 되었다.

교제 하는 내내 나는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전화가 오면 나 지금 좀 바빠요, 하고 으레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바쁘다는 말..

진짜 바쁜 것이 아니라면 전화통화를 하기 유쾌하지 않다는 뜻이다.

성민오빠는 나에게 했던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ling~ ling~]


전화가 걸려왔다..연주다.

선뜻 전화를 받기가 꺼려졌다. 한참 액정을 보고 있으니 옆 테이블의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일단 폴더를 열었다.

통화받기 버튼을 누를지, 아님 종료 버튼을 누를지 마음 속으로 수백번 갈등을 했다.

심호흡을 한번 한 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수영아 나야~ 뭐해?"

"그냥 집 근처 까페야.."

"혼자야? 크리스마스 때 뭐할꺼야??"

"어? 글쎄..."

"너 집 근처라구? 내가 그리 갈께!! 기다려!!"


연주랑 나는 집이 가깝다. 지도에 표시되는 지역은 다르지만 연주가 사는 아파트에서

건널목을 건너 10분정도 걸으면 우리 집이었다.

아니야, 금방 들어가 봐야돼, 라고 말하려 했는데 이미 전화는 끊긴 뒤였다.

몸이 앉아있는 의자 안으로 빨려들어 갈 것 만 같이 맘이 무겁다.

그렇게 혼자만이 비정상적인 중력감에 허우적 대고 있을 때 연주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뭐야? 카페모카? 향기좋다~ 나도 이거 마셔야지~"

"어쩐 일이야, 추운데.."


연주는 잠깐만, 주문 좀 먼저 하고, 라고 말한 뒤 달콤한 카페모카를 시켰다.


"방학인데 가까운 데 살면서도 니 얼굴 자주 못봤잖아, 얼굴도 보고 할말도 있고~"

"할...말..?"

"이번 크리스마스!! 성민오빠랑 나랑 300일 되는 날이야~ 그때 다같이 모여서 파티하자구

오빠가 그러길래~"


오빠가 언제 그런말을 했어?, 라고 물어보려는데 잠깐만, 하고 걸려온 전화를 받는 연주였다.


"어 오빠! 아니 지금 밖이야, 좀있다 들어가려고~"


성민오빠 인듯 했다. 웃으며 밝은 얼굴로 전화를 받는 연주 얼굴을 보니 속이 이상하다..

삐걱거린다며?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자며?

이게 어떻게 된거야..

실망감인지 배신감인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미웠다.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내 자신도 미웠고, 날 흔들어 놓은 성민오빠도 미웠다.


"너무 빠져들지마, 성민오빠 나쁜 사람이야.."

"뭐?"


그 때 , 연주가 주문한 까페모카가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새로 올려진 카페모카 잔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연주에게

실성한 사람처럼 두서 없는 채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성민오빠가 나한테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쟀어, 너랑 안좋다면서.. 나한테 키스했어.

그런 사람이랑 헤어져버려. 나쁜 사람이야.."


"뭐라구? 너한테...뭐?"

"헤어져, 그런 사람 더이상 믿지마.."


연주는 의외로 놀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직 따뜻한 카페모카만 홀짝홀짝 마시고 말이 없었다.

답답한 이 공기가 싫었다. 밖으로 나가야겠다. 차가운 공기가 머리를 식혀 주겠지..


"그만 가볼게, 집에 일찍 들어가야해서.."

"그래 잘가.."


연주를 그대로 남겨두고 돌아서서 두잔의 카페모카 값을 계산했다.

두 잔의 카페모카..

두 잔..

왠지 그 계산서가 잊혀지질 않았다..앞으로 영원히 돌아올 일없는 두잔의 카페모카...

가게를 나와서 집 주변을 세바퀴정도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몸속으로 받아들여지기엔 더 이상 내 폐는 버거운 것 같았다.

바람도 얼굴에 상처를 낼 것 같이 날카롭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주를 남겨두고 나온 까페 쪽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머리가 복잡하지도 않다.

추운 날씨가 내 사고회로와 마음을 정지시켜 버렸나보다.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몸은 이미 이곳에 있는데 정신은 내가 까페에서 나온 후에 계속 카페모카를 마시고 있는

연주에게 머물러 있다.

갑자기 눈쪽으로 피가 몰리는 기분이다.

내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게 뜨거운 물인지, 내 눈물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제 정말 더이상 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일찍 자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빠가 살짝 웃으시며 배고프다, 밥먹자, 하신다.

살짝 아빠의 맘속에서 울음소리가 나는 걸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또 무거워진다.

엄마, 아빠,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형식적으로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대고 있었다.


"내일...잘 될꺼에요.."

"고맙다. 하지만 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날 아빠와 나의 대화는 더 이상 없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도란 걸 했다.

'하느님, 부처님, 성모마리아님, 아니..누구라도 상관없어요. 제발, 아빠를 도와주세요."

울 다 지쳐서 살짝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4개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전부..연주였다.

친한 친구의 전화가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다니, 인생을 왠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핸드폰 메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자음모음을 끼워맞추기 위해 버튼을 꾹 꾹 눌렀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한국어인데,

오늘따라, 아니 지금 순간엔 하나하나 조합해서 적당한 단어를 맞추기가 힘들다.

이럴 땐 형식적인 말이 최고인 것 같다.


'전화했었니?'


메세지를 보내고 나서 다시 전화가 오기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깊은 밤이 되도록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나 아직 살아있어요, 라고 말해주듯이 핸드폰에서는 램프가 일정한 시간당 한번씩

깜빡거리고 있었다.

뭔가 홀리기라도 한 듯이 난 그 램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 살아있어, 그래..난 아직..근데 곧 죽을 것만 같아..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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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어떤날 입니다.

저번 편에서 보보스영님께서 길게 좀 써달라구 하셨는데,

보시는 다른 분들께서도 짧다고 느끼신다면

말씀해 주세요. 조금 더 길게 써서 올려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리고 코멘트랑 추천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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