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의 그녀.19

니뿡간지 작성일 06.12.18 15: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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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기억.




깜깜한 방.
그러나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의 어둠.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쁜 어두침침한 방안.

“그래서. 이번에도 그녀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건가?”

“네.....네.....각하...”

“...............”

“자네 옷 벗고 싶나?”

“아....아닙니다...각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시끄럽네!!”

말끔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
나이나 외모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벽을 바라보며 뒷짐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뒷모습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의 뒤에는 제복차림의 중년의 남자가 꿇어 앉아있는데
매우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제복의 가슴에는 “Z" 의 휘장이 새겨져 있다.

“ECP의 총책임자면. 말 그대로 모든 책임을 지어야겠지”

“그...그게 각하...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닥치시오. 그 정도의 인원을 준비하고서도 처리를 하지 못하다니....”

“그..그것이 정말로 예외의 일이 ...생겨서..가..각하”

“어제 임시회의에서 EXP를 투입하기로 했소. 그러니 다른 말 마시오
그녀를 처리하는데 역시 ECP정도론 어려웠나 보오.“

“가..각하? 하지만....EXP는 현재 동남아시아 연합과.....”

“동남아시아 따위가 문젠가! 이미 세계의 반을 장악하고 있어...
하지만 00367. 그녀가 있는 이상 맘 편히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없단 말이오.
더 이상 지체하다가. 그녀가 각성이라도 하면. 정녕 예언대로 모든 것을 말아먹을 텐가!!“

“가...각하...”

“자네는 돌아가서 처분을 기다리게
EXP가 한국으로 들어가면. 00367을 맡고 있던 ECP중에 길 안내역이나 붙여주게나
미국과 교황청 놈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판에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어.
하루빨리 그녀를 없애고... 그분이 못다 이룬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말이 길어졌군. 내 뜻은 충분히 알았으리라고 보네. 이만 물러가게“

“아..알겠습니다..각하..”

제복차림의 남자는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는
참담한 얼굴로 경례를 한 뒤 방을 빠져나갔다.

“그녀를. 그녀를 없애야해.
그녀만 없애면 모든 것은 순조로워 지는 거야. 온 세상을 “Z"가 지배하는 날이. 그분의 뜻에 따라서.”

“하지만...”

각하라고 불린 남자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머리가 아파오는 듯 이마에 손을 얹었다.

“예언이라...”

“그까짓 것...”

말꼬리를 흐리며 그도 깜깜한 방안을 빠져나갔다.

제복차림의 남자는 방안을 빠져나와 황급히 움직였다.
이대로는 EXP에게 ECP의 일까지도 빼앗기게 생겼다. 그건 곤란했다.
각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EXP가 오기 전에 00367을 보란 듯이 제거해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각하를 위시한 모든 각료들이
조금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 뿐인 00367 때문에 코앞으로 다가온
대미전쟁을 수행시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Z"의 존망을 쥐고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가 아는 모든 것 이었다.
대체 무엇이 ”Z“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그의 입장에선 일단 발등의 불을 꺼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의 지지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는 급히 전용기에 올라 한국의 ECP지부로 날아갔다.
.
.
.
말끔한 검정색 신부복을 입은 외국인이 한국에 발을 디뎠다.
직행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서울로 온 미하네스였다.
일단 도착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어디서부터 예리라는 소녀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좁은 나라라고 하지만.
그래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건 당연했다.
좁다고 해도. 그건 지도상의 이야기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는 일단 서울에 있는 친구를 만나본 뒤에.
그녀가 잡혀있었다는 “Z"의 연구소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조사에 의하면 이미 그 연구소는..

“쿠아아앙”

생각에 잠겨있던 미하네스의 귀에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미하네스는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난곳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뿌렸다.

미하네스의 머릿속에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 조용했던 나라가
그것도 대낮에 버젓이 폭발이 일어날 정도로 무법천지로 변했단 말인가?

“콰아아앙”

폭발음은 끊이지 않고 연달아 들려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인 듯.
미하네스의 코에 희미한 화약 냄새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테러 발생. 근처구역에서 테러가 발생하였으니. 신속하게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군경차량들이 돌아다니며 스피커로 방송을 했고.
경찰들은 폭발이 발생한 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통제하고 있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미하네스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테러에 의한 폭발이 발생했다는 것 치고는
군경의 대처가 너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미하네스는
폭발의 현장으로 가보기로 마음먹고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곧 경찰들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외국인??. 아무튼 테러가 발생했으니 이 쪽 길로는 못갑니다.
한국어 몰라요??“

“아...예에..”

미하네스는 알아듣는 다는 걸 증명하듯 한국어로 대답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다른 길도 철저하게 막고 있었으므로 틈새가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미하네스는 품안에서 캡슐하나를 꺼내 들었다.
왠지 그가 찾고 있는 소녀와 관련되어 있을 수 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에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가 꺼낸 캡슐에는 "Z"라고 적혀있었고.
텔레포트용이라는 문구가 영어로 휘갈겨져 있었다.

미하네스 자신이 “Z"의 자금원을 뒤 쫒다가 입수한 캡슐들이었다.
일회적으로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캡슐하나의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아마도 ”Z"의 중요한
자금책일 것 이라고 예상되어 교황청에 증거자료로 넘기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써버려도 되는 것인지. 미하네스는 순간 갈등이 일어났다.

이미 하나를 시험해 보았으므로 입수한 것 중 남은 캡슐은 2개.
성분조사와 증거로써 보관시키려면 최소 2개는 남겨두어야 맞겠지만.
결국 미하네스는 남은 1개로 조사도 하고 성분조사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캡슐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의 입에 하얀 액체를 들이부었다.

“그럼 가볼까”

미하네스는 폭발이 발생한 곳의 좌표를 대강 짐작하곤
액체를 삼켜 텔레포트를 시도하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했다....!”

미하네스는 현장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Z"의 정장을 입은 여자들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봐서는
“Z"의 ECP가 분명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그들 앞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폭탄을 몸에 두르고는 ”Z"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게다가 청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살기로 봐서는
자폭이라는 단어 그 이상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뒤쪽의 큰 두덩이 아래에선 절규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하네스는 순식간에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그 자신의 과거의 경험과 너무나 비슷한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분명히 낯익은 장면이다.
이 지독한 장면은.
미하네스는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으로 남은 캡슐을 꺼내들었다.

교인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왠지 꼭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느 사이에 과거에 있었던
슬픈 실루엣을 지금상황과 겹쳐놓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눈치 채고 있지 못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미하네스는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폭탄을 그의 몸에서 떨어뜨릴 대도(大刀)를 짐 속에서 꺼내들었다.

순간 선욱의 눈에 미하네스가 들어왔다.
선욱이 잠시 멈칫한 순간.
미하네스는 거칠게 폭탄을 뜯어내고 순식간에 액체를 삼켰다.

“콰아아앙”

하지만 이미 버튼이 눌러져 있던 폭탄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
.
.
.
.
조그마한 산 아래의 텅 빈. 낡은 건물 안.
더 이상 쓰지 않는 폐 공장 같아 보이는 곳.
그저 먼지와 곳곳에 부셔져 내린 벽돌만이 보였다.

사람이라곤 없을 법한 그곳에.
남자가 두 명.
호텔 값 아까운 남녀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 남자둘이서.
게다가 한명의 남자는 눕혀져 있는 모습은
왠지 꺼림칙하며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본 것 같은 기분에 속이 울렁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평범한 주기도문*(주님의기도)이지만. 미하네스의 입에서 울려 펴지자 환한 빛이 미하네스의 손아래에서 뻗어 나갔다. 미하네스의 성력(聖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인지라 곧 쓰러져 있는 남자의 상처가 점점 아물어 가기 시작했다.

쓰러져 있는 남자는 당연히 선욱 이었다.
폭탄을 감싸고 스스로 자폭을 했으나.
가까스로 미하네스에게서 구출된 그였다.
.
.
얼마가 지났을까.
미하네스는 선욱의 가슴위에 얹고 있었던 손을 때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힘을 많이 소비하였는지 온통 땀투성이에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그는 바람이라도 쐬려는 듯 땀을 털어내며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선욱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
.
.
“으...응?”

“오... 깨어난건가?”

선욱이 눈을 뜨자 미하네스가 반가워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선욱은 자기의 눈에 들어온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을 쳐다보고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여기는...? 다..당신은?”

"여기는 빈 건물 안이고. 나는 보이는 데로 그냥 신부 일세“

“신부...?”

선욱은 미하네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분명히 입고 있는 옷은 검은색 신부복 이었지만.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어딘지 모르게 풍겨오는 강인한 인상은
군인 중 에서도 스페셜리스트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신부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선욱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 보다는 더욱 궁금한 것이 있었다.

“제가 어떻게 된 거죠? ...왜 이런 곳에...”

“폭탄을 폭파시키려고 하는 자네를 가까스로 구해냈어. ”Z"를 상대로 자폭이라니..
대단한 사람이로구만. 자네도..“

“............??”

미하네스의 자세한 설명에도 선욱은 얼이 빠진 얼굴 이었다.
마치 미하네스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

“네...?? 폭발이라뇨?? ”Z"는 또 뭐죠??“

선욱이 되묻자 이번에는 미하네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네 설마...기억이 안나나?”

“예...??”

선욱이 더욱더 어리둥절해 하자 미하네스는 그에 비례하여 더욱더 황당함을 느꼈다.
겨우겨우 구해놓았더니.
이 청년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황당한 것 보다는 곤란했다.

미하네스는 손가락으로 코를 긁적이더니
선욱의 양어깨를 잡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혹시....자네...이름은 생각나나? 이름 말고 그밖에 자네 자신에 관한 거...생각나나?”

“이름이요?”

선욱은 이 외국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폭발 이라던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이름을 생각해 보라니...

그는 불쾌한 감정이 생기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고는
양어깨의 잡고있는 미하네스의 손을 치우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제 이름을 모를 리가 없잖아요.
제 이름은.......................“

“제....이름은............”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던 선욱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뭐지?
그러고 보니. 이름뿐만 아니라 미하네스의 말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내 이름은...??
나...는 누구??“

선욱은 급기야 혼란에 빠져버렸다.
머리를 감싸 쥐고 마구 흔들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나아지는 건 없다.
미하네스는 선욱의 행동을 지켜보고는
안 좋은 예감이 적중한 사실에 기운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다.

기껏 구해놓으니까. 기억상실 이라니?
이것만큼 난처한 일도 없으리라.

“시...신부님? 저..저는 누굽니까?”

“하아...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나?”

미하네스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괴로워하고 있는 그에게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기절한 그를 이곳까지 데려오는 과정에서,
선욱의 품에서 떨어져 버린것을 보관해두었던, 지갑이었다.

“자네 이름은 강선욱. 나이는 21살.
사는 곳은. 전라도?;; 자네 고향집 인가보군..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네. 지갑에도 그 이상은 나와 있지 않으니까.“

선욱은 미하네스의 말을 듣고는 허겁지겁 건네받은 지갑을 펼쳐보았다.
확실의 지갑에 꽂혀 있는 주민증에는 이름과 사진.
생년월일 주소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강..선..욱..?”

선욱은 확실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낯익은 이름이라고는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갑을 손으로 더듬었을때..
뭔가 기분나쁜 무언가가 머릿속으로 빨려들어 오는 이상한 현상에.
선욱은 급하게 지갑에서 손을 때버렸다.

"????"

미하네스는 그런 선욱을 의아하게 쳐다보았으나.
곧 선욱이 다른 질문을 했으므로. 더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제...제가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되기는...기억을 잃은 것 같아.”

“예에??”

당황하는 선욱에게 미하네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밖에서 드럼통과 나무쪼가리들 구해 와서 불을 피웠다.
순식간에 불이 타올라 주위를 뜨겁게 달궜다.

“이리와 앉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네...에..”

선욱은 얼떨떨하게. 그의 말에 따라 드럼통 앞으로가서 주저앉았다.
선욱이 앉자 미하네스도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주저앉아
불을 쬐며 먼저 말을 꺼냈다.

“전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가?”

“네.....”

“내가 자네를 발견한 것은 자네가 ”Z"의 ECP부대와 싸우고 있을때야...“

“ECP??"

"일단 듣고 나서 질문하게.“

“예...”

“아무튼 "Z"와 싸웠다는 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데 역시 기억이 안나나?”

“ECP.....ECP...”Z"....."

선욱은 "Z"라는 단어를 되풀이하자 머릿속이 조금 울려왔다.
하지만 머리만 울려올 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여튼 자네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폭탄으로 그들과 자폭을 하려했네.
내가 간발의 차이로 구해내지 않았으면 자네는 이미 죽었을 테지.
아무튼 간신히 구해냈는데 폭발의 충격으로 나도 자네도 꽤 상처를 입었어.
상처야 치료를 해놓았지만. 자네는 그 충격 때문에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군.”

“폭팔....자폭이요...?
대체 저는 어떤...사람 이었길래..:”

“그건 나도 모르지....”

선욱은 답답한 심정이었다.

“신부님...그렇다면 저는 나쁜 사람이었나요? 폭탄을 이용해서...”

“그건 아닐꺼야. ”Z"라는 집단은 악의 근원이니까.
그들과 싸웠다는 게 나쁜 놈은 아니라는 증거지...하하.
아무튼 기운 내게....차차 생각이 날 꺼야..“

“하하하하..”

미하네스는 한차례 크게 웃으면서 기운하나 없는 선욱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럴까요...그렇지만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건 확실한건 같군요.
감사드립니다. 상처까지 치료해 주셨다고 했는데...의사신가요?”

“의사는 무슨.
말했잖은가 신부라고.“

“그렇지만...신부님이 어떻게 상처를...”

“보통의 신부는 그렇지.”

“예??”

“그냥 성력 이라고만 알아두게”

“그런..가요??“

선욱은 힘없이 대답했다.
미하네스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중요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 머릿속이 원망스럽게 까지 느껴졌다.

미하네스는 그런 선욱의 표정을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그를 구해낼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선욱은 누군가를 지키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래. 분명 여자였다.
하도 상황이 급박해서 얼굴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지만....
그 여자를 구하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확실히.

타인을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다는 건
수양이 깊은 성직자로서도 힘든 일 이다.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굳은 심지가 있어야 가능한일일 것이다.

하지만 미하네스는 선욱이 누군가를 지키려고 했다는 사실
까지는 차마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괴로울 텐데
더 큰 괴로움을 주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부님...?”

한참을 괴로워하던 선욱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미하네스를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아...미안하네...”

“그런데. 신부님은 외국인 인 것 같은데...대체 누구시죠?
아! 이상한 분이 아닌 건 알겠어요. 하지만 자칫하면 신부님도 크게 다칠 수 있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저를 구해내신걸 보면.....“

“그런가?”

미하네스는 선욱의 말을 도중에서 끊어버렸다.
선욱이 말을 빙빙 돌리고 있지만.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하네스 라고 하네.
내가 한국어에 유창한 이유는 10여년전에 한국에서 군복무를 했었기 때문이야. 주한미군에서. 그때 우연치 않은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지. 지금이야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해 버린 지 오래지만. 한국은 이미 “Z"의 손아귀에 넘어갔으니까...주한미군이 있을 자리는 없어 진거지....아무튼 나는 계속 말하다시피 그냥 신부이고. 교황청의 부탁으로 한국에 찾을 사람이 있어서 들어왔네“

“아...
그..그런데 “Z”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니
게다가 제가 “Z"와 싸우고 있었다는데....그 ”Z"라는 건 대체 무엇 이길래..??
도무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를....“

“자네는 아마 그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게야.
하지만 기억을 잃기 전에도 그들에 대해서 모르는 사실이 더 많았을 걸세.
내가 대충 그들에 대해 설명해 줄 테니
기억을 찾더라도 그들을 상대하는 건 피하게...
무모하게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어.”

“예...예...??”

“일반인들은 알아서 안 되는 이야기 이지만...
“Z" 라는 건 저 구시대의 2차 세계대전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와 연관이 크지.
그렇다고 히틀러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는 아니지.
“Z"는 히틀러가 만든 거니까.”

“히틀러는 비밀리에 초능력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연구 집단이 어째서인지 패전 후에까지 살아남아서.
몇 십 년을 잠자코 있다가 갑작스럽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어.
몇 십 년을 숨죽이며 계획을 꾸미던 그들은.
그동안 연구했던 초능력자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군대에 배치시켰네.
ECP와 EXP의 탄생이지.
그 초능력은 직접적인 살상능력은 없지만 핵무기조차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정신능력이 있기 때문에
점점 크고 작은 나라를 장악하기 시작했어.
한국도 그런 과정에서 “Z"에게 먹혀버렸네.
”Z"는 지금도 끊임없이 초능력을 연구하고 있고.
연구의 결과를 계속적으로 실전에 투입하고 있어.
지금세계는 미국과 “Z"의 양강 구도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균형이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
아마 곧 전쟁이 일어 날것이야. 아마도 제3차 세계 대전이 되겠지....

지금의 사람들은 “Z"의 철저한 통제아래 그러한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어.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모든 걸 알게 된 인류는 아마도 대혼란이 일어 날 거야.”

“그.....그런...”

선욱은 미하네스가 설명해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입도 다물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로 그런 초국가적인 단체와 맞섰다는 걸까? 대체 무슨 이유로? 왜?
선욱의 머리가 다시 지끈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하네스의 말을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하네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다.

“중요한건. 당장전쟁을 일으킬 기세였던
”Z"가 최근 들어 뭔가 다른 일을 꾸미는지 조용해졌다는 거야...
교황청의 조사에 따르면.
뭔가 자신들에게 큰 해를 입힐 수 있는 걸림돌이 생긴 것 같아.
더 자세한건 캐내지 못했지만...
아무튼...
이세상이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멸망할 수도 있다면.
자네는 믿을 수 있겠나?
우리 교황청은 멸망이라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Z"조차 코앞이던 세계정복 까지 제쳐두고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뭔가가 있기는 분명히 있다네..
그리고 그 뭔가가 내가 한국에서 찾는 사람과 깊게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아마도...........“

“저...저는 대체 무슨...멸망이라니..전쟁이라니...도무지....”

당연했다.
기억이 완전한 상태라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이야기였다.

더구나 아무 기억도 없는 상태라면....

“그래...지금은 그냥 듣기만 해.
자네라면 기억을 찾은 후에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럴까요...”

미하네스에게 들어버린 엄청난 이야기는
도무지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기억을 생각해보려고 하면 그저 머리만 아파올 뿐.
그 어느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자네가 큰일이야?
몸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급히 사람을 찾아봐야 하거든. 지체할 수가 없는데....
기억까지 잃어버린 자네를 어찌해야 할지....“

“아...”

“그래! 기억이 돌아올 때 까지.
일이라도 하고 있지 않겠나?
서울에서 복무할 때 사귄 친구가 있는데
지금 가게를 경영하면서 살고 있으니.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 하겠네“

미하네스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을 해냈다는 듯이 손바닥까지 치면서
환한 얼굴로 말했지만 선욱은 그렇게 까지 신세를 지기에는
너무 미안했기 때문에 거절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미하네스는 선욱의
그런 마음까지 안다는 듯이 먼저 선수를 쳤다.

“자네라면 왠지 거절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게.
어차피 자네나. 나 둘 다 ”Z"가 적이라면 동지 아닌가?
하하. 그러니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그렇게 해
그래서 기억이 돌아오면.
자네가 기억이 돌아오고 날 때까지 내가 그 사람을 못 찾았다면 .
찾는 걸 좀 도와주게. 그럼 나에게 진 신세도 갚을 수 있잖은가?“

미하네스가 논리정연하게 빼도 박도 못하게 말하는 데야
선욱은 거절의 말을 꺼낼 도리조차 없었다.
결국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라면.
세계2차대전 같은 상식은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은
단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게다가 그런 것은 둘째 치고라도
선욱은 아까부터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뭔가 소중한 것이 있었던 거 같은데.
전혀 떠오르지 않는 답답함.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시간이 치료해 줄 거야”

“그럴까요?....”

선욱이 괴로워하자 미하네스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독여 주었고.
선욱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두 남자는 폐 공장 에서 빠져나왔다.
미하네스가 쇠뿔도 단김에 뺀답시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선욱을 부추겼기 때문이었다.

가는 도중. 서로는 아무 말도 없이 걷고 있었다. 너무나 어색했다.
날도 어두운데. 완전 적막강산이었다.
선욱은 이런 침묵이 왠지 싫었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히틀러라니....충격적이네요”

“아..그거 말인가? 그렇긴 할 거야..”

“그렇군요...”

“..................”

또다시 침묵.
선욱은 머리를 굴려 화제를 돌렸다.

“아..저기 찾는다는 사람은 대체 어떤??
신부님의 말씀대로라면 무지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데“

“그래. 중요하지. 교황청의 예상대로 라면 아마도 이 세상의 존망이 걸려 있을 거야”

“하아...그런가요?”

“그래. 혹시 자네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자네 또래인데다가. 자네도 “Z"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

미하네스는 들고 있는 가방 속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차트 비슷한 것을 꺼내서 선욱에게 넘겨주었다.
선욱은 무심코 챠트를 살펴보았다.


서예리.
1999년 생.
어쩌고저쩌고 등등.

사진과 함께 간략한 정보가 들어있는 차트.

“아는 사람 아닌가?”

“,,,,,,,,,,,,,,,,,,”

선욱은 왠지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챠트를 돌려주고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모르겠어요..........”

“하긴. 기억도 없는데다가. 별로 자네하고는 관련이 없을 것 같기도 해”

미하네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챠트를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선욱은 더 이상 꺼낼 화제가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미하네스가 말을 꺼냈다.

“자네 파티마의 예언이라고 아나?”

“파티마의 예언이요??”

“아마 모르는 것 같군. 그러니까 거의 백 년 전인 1917년 5월 31일.
포르트칼의 빈촌인 파티마에 성모마리아가 출현하여
그 마을에 사는 세 어린이 루치아 야신타 프란시스코 에게
인류의 운명과 직결되는 세 가지의 대 예언을 전해주었다는 건데.
모르나?“

“아...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그중에 파티마제1예언과 파티마의 제2예언이 무엇을 나타냈는지도 아나?”

“1예언은. 1차 세계대전의 종결. 2예언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나타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럼 파티마 제3예언은?”

“그건. 1942에 발표된 1.2예언과는 다르게. 60대까지 성모의 고지로 거의 봉인해 두었다가
교황들이 열어보고는 의자에서 넘어가기도 하고. 뭐 그랬기 때문에.
인류의 멸망이니. 3차대전이 예언이니 말로 시끄러워 지니까. 2000년 6월에 교황청에서 그런 내용이 아니고. 3예언은 단순한 교황암살기도를 나타냈다고 해명하지 않았습니까?“

“뭐 대략적인 내용은 그렇지만.
단지 2000년에는 해명을 한거고. 3예언을 정확하게 공표하고. 해석한건 아니었어.
3예언은. 아마도. 지금에서야 나타나는 인류의 멸망과 전쟁에 대해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파티마 제3의 비밀이라는 것이?.“

“네???”

“하하하하.”

미하네스는 선욱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는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제3예언에 대해 말할 때의 미하네스의 표정은
전혀 장난 끼가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는 걸
이때의 선욱으로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미하네스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길세”

선욱은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았다.
카운트 1999 라는 큰 간판아래에 레스토랑 이라는 영어가 휘갈겨져 있는 고급 음식점 이었다.

“아...”

“그렇게 멍하게 바라만 보지 말고 따라 들어와”

미하네스는 선욱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그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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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내는 부분이 좀 억지스러운 감(?) 도 있지만...
뭐 제가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ㅋㅋ
취미로 쓰는거니 그냥 넘어가 주시구요...
예리를 등장시키려 하였으나.... 쓸데없이 길어져서 못썻네요ㅠ_ㅠ;
다음편에서 보아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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