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 사랑하는 법..[8]

그어떤날 작성일 06.12.20 0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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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어젯 밤 전화를 기다리다가 그냥 잠들어나 보다.

거실로 나가니 엄마, 아빠 두 분다 안계시다. 재판때문에 일찍 나가신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티비를 켰을 텐데, 아빠의 일이 뉴스에까지 몇차례

나오고 나선 티비 조차 보기 싫어졌다.

째깍, 째깍..

벽에 걸려져있는 시계의 초침소리에 따라서 손가락을 까딱까딱 해보았다.

내 심장소리 같기도 했다. 지금 난 평안하다.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고, 동요되고도 있지 않다.

꿈 같던 월요일과, 부담스러웠던 화요일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수요일, 날씨는 너 많이 아프니? 하고 날 걱정이나 해 주듯이 구름이

잔뜩끼었다.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초점은 몇 겹인지도 모를만큼 자욱하게 낀 구름의

안쪽으로 옮겨졌다. 손으로 휘저어도 사라질 것 같지 않은 검은 구름..

투명하고 순수한 결정수에 검은 잉크를 풀어 놓은 것 같이, 이미 내 마음도, 이 하늘도

오염되버린 기분이다.

오후쯤에는 비가 내릴 것 같다.

방으로 돌아와서 책상앞에 앉았다.

지갑을 열고 두 잔의 카페모카 값을 계산했던 영수증을 꺼내들었다.

이제 연주는 어떻게 할까..

어제는 욱하는 마음에 연주에게 다 말해버리고 말았지만, 사실 어떤 면에에서는 그런 사람이랑

사귀고 있는 연주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말한 이유도 있었다.

이제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연주한테 달렸다.

무책임하게도 내 일을 연주한테 떠넘겨 버린 꼴이 되고 말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휴대폰으로 문자가 하나 왔다. 확인해 보니 연주였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3시에 어제 만났던 거기서 보자.'


영수증을 집어 넣으려는데 지갑에 내가 이전에 넣어두었던 김현준씨의 명함이 보였다.

명함을 빼네 다시 자세히 보았다.

평범한 이름, 어렵지 않은 핸드폰 번호, 메일 주소...

whenismile@xxx.com

..메일 주소도 참 쉽다.

정말 인생 편하게 사는 사람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쩜 편하게 산다기 보다 가볍게 산다고

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몰랐다. 그치만 이건 내가 그 사람을 경시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삶을 사는 것 같은 그 사람이 부러웠다...

내가 웃을 때...(when i smile..)

그래, 그사람은 항상 웃었다. 밝고,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3시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산책이라도 할까 해서 세수를 하고 검정색 트레이닝복에 남색 털잠바를 입고 검정색 털모자를

눌러썼다.

귀에 엠피쓰리를 꼽고 집을 나섰다. 익숙하게 들리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ost에 마음이 아려온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한 눈물을 흘리게 해줄 만한 가슴찡한 러브스토리를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슴아픈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사랑하고 행복

하고 싶을 뿐이다.

아침이라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 속에서 나 혼자만 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복장으로 거리를 방황했다.

왠지 머쓱한 기분이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 등뒤를 향해서 걸어가는데 나만 정면으로 헤쳐 나아가는 기분이다.

강물을 역류해 올라가는 연어처럼,

그 사람들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설기만한 물살일 뿐이다.

그래야 한다는 것 처럼, 그것이 정석이라는 것 처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어느 한순간 없어지는 것 쯤은, 어쩌면 넓디 넓은 우주에 작은 별 하나가 사라져 가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것에 사람이라는 것도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별 거 아닌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겪는걸까?

얼마 살지도 않은 주제에 힘들다 불평하는 것 역시 이 세상 모든 연장자들에겐 우스운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어두워서 그런지 다시 슬슬 졸린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시간이 좀 흘렀는데도 아까 내가 빠져나온 이불속의 온도는 그대로였다.

따뜻하고, 그리고 편안했다.

왜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이 없을까?

내가 빠져나왔다가 다시 생각나 도로 들어가도 변하지 않고 따뜻한 사람..

:
:



눈을 떴을 땐 정오가 지나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것 같다.

날씨는 아직 구름이 끼어있다.

정말 금방 있으면 비가 쏟아질 것 같이 보기만 해도 묵직한 구름 이었다.

3시에 만나자고 했으니 슬슬 준비를 해서 나가야 했다.

까페에 도착하니 아직 10분정도가 남아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연주가 오길 기다렸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엠피쓰리의 플레이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듣고 있으니 조금 후에 내 옆쪽에

누가 서있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연주였다. 오른쪽 귀에 있는 이어폰을 빼면서 왔어?, 하고

말하려는 데 연주 뒤에 또 한사람이 서 있는걸 발견했다.

성민오빠였다.



'짝!!!!!!!!!!!!!!!'




순간, 눈앞이 번뜩이고 뺨이 얼얼해져 왔다.



"나쁜 년...친구 애인을 뺏을 생각을 해?????"


연주를 올려다 봤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리고 곧..

"미안하다.."


하고 성민오빠의 입에서 나온 4글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아니 이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가... 니 애인을.. 뺏으려고.. 했다고?"

"꼬리칠데가 따로있지, 너 진짜 웃긴년이다? 그리고, 니가 뭔데 제 3자가 나서서

헤어져라 마라야? 니가 무슨 상관인데!!!!!!"


머리가 패닉상태라 뭐라고 대꾸도 못할 지경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 조차 나지 않았다.


"생각같아선 니 얼굴에 물이라도 들이 붓고 싶지만 뺨한대로 넘어가는거 고맙게 생각해."



연주는 나를 뚫어질 듯 쏘아보더니 등을 돌려 오빠 가자,하며 오빠 팔을 이끌고 나갔다.

그런 연주를 순순히 따라나가는 성민오빠..

뺨이 부어오르는 게 느껴져서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울면 안되는데..내 다리위에 올려져 있는 손 위로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져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울고싶다. 마음껏 미친듯이 울고싶다.

난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갔다.


"흐흑...흑..."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나와 시야가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서

까페 앞에서 약간 떨어져있는 전봇대에 간신히 몸을 기댔다.



"으아앙...엉엉....."


주저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원망스럽다. 날 배신한 연주와 성민오빠 모두 증오할 듯이

미워졌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너네한테 뭘 어쨌는데...

절대 용서안할꺼야..아니 못해.. 절대로..

:
:
:

한 참 울고 있는 중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더 어둑해져 있었다.

술이..마시고 싶었다.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서 울었더니 다리가 쉽게 펴지질 않았다.

절뚝 거리면서 좀 걷다보니 벌써부터 장사를 하려고 준비하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아줌마, 지금 장사 하는거에요?"

"어?..어.."


아줌마가 내 얼굴을 보시더니 좀 놀래셨나보다.


"아직 안주 되려면 좀 기다려야 되는데..준비가 덜되서.."

"그냥.. 소주나 주세요.."


자리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잔..두잔..

소주 한병이면 소주잔으로 7잔이 나온다더니..정말 이었다.

단숨에 한병을 비워버리고 또 한병을 시켰다.


"아가씨, 그렇게 술 빨리 마시면 안돼~"

"괜찮아요, 한병 더 주세요.."



쿠르릉~~!!

하늘이 소리를 지른다. 아프다고, 너무 아프다고..

곧이어 쏴아~~~~~~~~ 하고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이 울고 싶어서.... 많이 울고 싶어서 그렇게 어두운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나보다..

나도 하늘을 따라 울었다. 계속..계속..


'으흑..흑...'


난 일종의 보험이었다.

연주와 헤어지면 그 상처를 나 라는 보험을 통해 치유하려 했고 연주와 다시 잘된다면

미안하다고, 내가 잠시 미쳐서 실수를 했나보더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비참했다....

비참한 기분이 한번 들때마다 한잔씩 비워나갔다.

고개를 숙여 흐느끼면서 마시다보니 어느새 3병째까지 마시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집에 가기위해서 계산을 하려는데 손의 감각까지 무뎌져서 지갑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뭔가 지갑에서 떨어져 나왔다.

눈이 부을대로 부어서 초점이 잘 맞지 않았지만 김현준씨의 명함이었다.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멋있고 행복하게 웃고 있던 그사람의 웃는 얼굴이...

무의식 중에 핸드폰을 열고 명함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지금 뭐한거야?'


"전화..잘못 건거..같네요.."


술탓인지 혀도 이미 꼬부라져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았다.


"수영..씨?"


이사람이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술을 마셔서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데 내 이름을 불렀다.


"네..저에요.."

"왜그래요? 술마셨어요?"

".....흐흑..."

"거기 어디에요??"


다시 울음이 터져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에 엎드려서 또 서럽게 울어댔다.

술이란 대단하다. 마음의 문을 이렇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활짝 열어버릴 수 있다니..


'살기 싫어..난 이제 더이상은 못견디겠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제 그만 멈추고싶은데..우는 것도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아무리 눈을 깜빡여봐도, 한숨을 쉬어봐도 어떻게 된건지 눈물은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술 값을 테이블 위에 두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나가려고 포장마차의 포장을 열었다.

뒤에서 아줌마가 아이고! 아가씨 비 많이와!!!,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아득해졌다.

하늘이 흘리는 눈물이 내 몸을 적시고 있는데.........

내 눈앞에....

김현준씨가 우산을 들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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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길게 쓴다구 썼는데;; 스크롤의 압박이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 글은 픽션과 논픽션이 반반씩 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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