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의 그녀.23

니뿡간지 작성일 07.01.05 12: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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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욱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치명상은 아니었다.

예리는 그런 선욱의 곁에서 그의 손을 잡고는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게다가 처음에는 레스토랑에 들이닥친 구급대원들을 죽이려고 하기까지 하였다.
의사들은 하는 수없이 예리를 때어내지 못하고
그녀까지 수술실로 대리고 들어가 상처를 꿰매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병원에서 선욱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각별했다.
응급환자라고 해서 아무나 바로바로 치료를 해주는 세상이 아니다.
돈을 낼 수 있느냐의 기준에 따라서 병원의 행동이 달라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선욱은 지문인식은커녕 조금의 지체도 없이 치료를 받았고,
곧바로 병원의 최상층의 고급1인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마취제에 깊게 잠이 들어버린 그가
병원의 이상하리 만치 특별한 대우를 눈치 채기엔 무리가 있었다.

예리는 그런 선욱을 지그시 쳐다보여.
여전히 그의 손을 꽈악 움켜잡고 있었다.

정말로 선욱을 다치게 할 수 있을 줄을 몰랐다.
그저 그 순간에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고.
그 결과로 선욱을 찔러버린 것이었다.

가희의 마지막말이 계속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를 믿지 못하면서 그에게 기댈 자격이 없어”

그치만...
예리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선욱을 다시 바라보고는 고개를 떨궜다.

그치만...
왜 모른 척 하고...
“Z"와 같이 있었던 건데...

두려웠다.
눈앞에 선욱이 있었지만.
그렇게도 같이 있고 싶던 선욱이 있었지만.
깨어나면 또 모른 척 할까봐.
무심한 눈동자로 쳐다볼까봐.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정작 선욱은 예리의 불안함을 알리가 없었다.
그저 한창 무의식중에서 의식을 찾아 해매고 있었다.

깜깜한 암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

그런 암흑 속에 홀로 서있었다.
헤엄치듯 앞으로.
뒤로 움직여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의 세계.

그런 선욱앞에 갑자기 빛이 보였다.
그리곤 왠 소녀가 슬픈 표정으로 선욱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알몸이었지만.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치 성스러운 여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경건함.

그런 소녀의 눈빛이 너무나 지극했다.
선욱의 마음이 괜스레 괴로워질 정도였다.

그런 소녀가 입을 열어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지만 선욱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선욱은 좀더 가까이 가서 들어보려고 하지만.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여전히 소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암흑. 또다시 아무것도 없는 공간.

하지만 조금 있으려니 익숙한 장면이 보여 왔다.
선욱 자신이 서있다. 비참한 표정으로.
폭탄을 두르고 있다.
아래에서는 절규하는 여자의 목소리만이 생생하게 들여온다.
그런 광경이 보인다.
어째서인지 보인다.

그래 분명히 익숙한 장면.
하지만 아무생각도 들지 않는다.

곧바로 다른 장면이 보인다.
이번에는 왠 여자가 힘없이 거리를 걷고 있다가.
아무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이고 피를 뒤집어쓰고 서있다.
잔인한 장면이지만.
그 여자의 표정이 아까의 소녀처럼 너무나 슬프다.
게다가 아까의 알몸의 소녀와 너무나 닮아 보인다.

왜지?
대체 이 여자는 누구지?

머리가 아파온다. 곧 등 쪽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아아아악!!”

“학...학......학...”

선욱은 눈을 떴다.
소리를 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에 낯선 풍경이 들어왔다.
왠지 호텔 같은 분위기의 병실.
고개를 돌려보다가.
선욱의 오른손을 움켜쥐고.
침대에 고개만 파묻은 체 잠들어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보니...선욱은 손에 땀이 흥건한 걸 느꼈다.
그녀가 잡고 있는 오른손이 특히.

“저기...”

선욱은 조심스럽게 엎어져 있는 여자를 깨워 보았다.

“저기...??”

“으....응?”

그리 깊게 잠들지 않았던지.
약간은 부스스한 표정으로 예리가 고개를 들었다.

“예...예리야?”

선욱은 꿈속에서..
아니 무의식중에서 그렇게 생각나지 않던 여자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는 걸 느꼈다.
약간 머리가 띵한 느낌도 들었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것 같았다.

예리가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선욱은 예리가 움켜쥐고 있던 손이 오른손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억을 잃었던 상황도.
그리고 그이전의 상황도 모든 게 하나로 합쳐졌다.
무의식중에 그녀의 모습이 보인 건.
예리의 간절한 마음이 사이코 매트리라는 오른손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인가?
선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까 전의 상황.
예리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런 자신에게 예리가 화를 내던 상황을 생각하니 말이다.

예리는 그의 입에서.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다정한 한마디.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만 잠결에 꿈이라도 꾸는 건 아닌지.
생각하며.
세차게 눈을 부비부비 부벼댔다.

“뭐하는 거야 예리야?”

선욱의 질문에.
곧 현실이라는 걸 깨닫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모른 척...안하는 거야?”

“...그래...이리와 바보야..”

선욱은 그렇게 말하며 예리를 침대위로 끌어올렸다.
다리위에 앉히고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기억이 없었나봐....
널 기억하지 못했었어. 이제는 기억나니까.
우리 예리가 기억나니까. ”

“정말..? 모른 척 안하는 거야? 돌아온 거야? 완전히?
내가..얼마나...내가 얼마나...“

결국 예리는 말을 잊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전과 같은 서운함이 아닌.
그가 진짜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는것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바보같지만.
저절로 흘러 나오는걸, 그녀 자신이
제어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설명해봐”

“뭐??”

예리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선욱을 다그쳤다.

“어째서 그 ”Z"랑 같이 있었던 거야?“

“아...그게 좀 사정이 있어서...
어찌됐든 “Z"는 나하고 너. 우리의 적이니까. 이상한 오해하..”

“시끄러!!”

“왜....그래??”

“그 재수 없는 년하고...친해보였단 말이야.....”

예리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거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너무나 조심스런 그 모습은 선욱이 생각하기엔 전혀 그녀답지 않았다.

“친한 건 아냐. 사정이 있었을 뿐이야..”

그래 사정이..
그래 기억을 잃고서는 분명히 가희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증오하던 그 여자를.
분명히 그녀도 말했었다.
도와준 걸 후회 할 것이라고.

선욱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역시 가희에게 대답했던 데로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다시 적이겠지만....
그렇지만...

“후....”

“뭐야?..?!”

“응?”
선욱이 생각에 빠져버렸다가 숨을 길게 내쉬자.
예리가 자못 날카로운 눈매로.
마치 바람난 남편에게 추궁이라도 하는 눈빛으로 선욱을 째려본다.

“왜 한숨이야..! 그여자 생각했지...? 그렇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예리는 화를 내며 선욱의 몸을 밀어버렸고.
선욱의 상체는 그대로 침대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악!!”

예리에게 찔린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관계로 상당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 고통은 얼굴에 그대로 들어나 보였다.
얼굴근육이 있는 대로 경직되었다.

예리는 밀 때는 언제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곤 그에게 황급히 다가갔다.
곧 아래에는 선욱이 누워있고.
그 위에 예리가 올라타.
선욱의 얼굴과 예리의 얼굴이 아주 가까운.
마치 예리가 선욱을 덮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묘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선욱은 예리의 숨결이 느껴지자 조금 당황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괘..괜찮아? 얼굴이 빨개졌어”

언제나 포커페이스인 예리의 표정은 변함없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진심으로 선욱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진심이라는 건 무딘 선욱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바..바보야. 갑자기 밀면 어떻게. 다친 데가...아직다 안났다구.!”

“그...그게”

예리는 그 다친 데가 자기가 낸 상처라는 걸 새삼 깨닫고는 조금은 미안해 졌는지.
잡자기 선욱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상처. 보여줘”

“뭐?? 상처는 뭐 하러?”

“얼른!!”

선욱은 그만 예리의 분위기에 쫄아서.
아니 압도당해서.
아니 그게 그거지만.
아무튼 반항을 하였으나.
그것도 소용없이.

곧 붕대로 칭칭 감겨있는 맨몸(?)이 나타났다.
예리는 아무 말 없이 붕대로 감싸있는 상처를 차디찬 손으로 어루만졌다.

“미안해.....“

“괜찮아. 이미 치료받고. 며칠 있으면 아물어 버릴 상처가지고...”

슬픔.
예리에겐 너무나 낯선 단어.
하지만 요 근래에는 너무나 친숙한 단어.

선욱은 그녀의 슬픈 눈매을 눈치 채곤
안심을 시키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 말을 듣던 예리는 갑자기 상처부위를 손가락으로 눌러버렸다.

“악!/ 뭐...뭐야”

예리는 대답 없이. 상처를 다시 한 번 눌렀다.

“야야!! 아파!!”

“또...그 여자하고 친하게 지내면. 그땐 진짜 죽여 버릴 거야.”

“하아?. 아까는 미안하다며??”

“싫어! 그리고 또 나를 혼자 남겨두면. 천만번 죽여 버릴 테니까!!”

“헤에...바보. 너 지금 질투하는 거야?”

“질투? 그게 뭔데?”

“그러니까. 내가 ”Z"하고 친해 보이니까 화난 거잖아. 나를 혼자 차지하고 싶어서. 하하
귀여운 것. 진짜로 여전히 아기라니까“

“뭐!! 우...웃기지마!! 나는 단지 네가 옆에 있어주겠다고...한 약속..아니 그러니까...그럴 리가 없잖아!! 너 따위 죽든 말든 그 여자하고 같이 살던 말든 상관없어...!! 그냥 죽...죽여 버리면”

예리는 말을 더듬거리며 횡성수설 화를 내지만.
선욱의 눈에는 귀엽기만 했다.

“죽여버릴 꺼라면서 내가 없다고 그렇게 슬퍼했어요?”

“우씨...진짜!!”

“하하하”

“얼굴 빨개졌다.”

“안 빨개졌어. 거...거짓말 하지 마!!
그..그대로 죽어버리는 게 나았어!!“

정말로 약간 붉어진 얼굴로 날뛰기 시작하는 예리.
정말로 몇 살인지 햇갈린다.
선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불렀다.

“알았어..알았어...이리와봐”

괜히 흥분하는 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예리는 기분이 좋은지 아무 말 없이 그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다시 전처럼 돌아온 거지?........”

두 남녀가 병실에서 끌어안고(?) 있는 작태는 둘째 치고.
어느 사이 아침이 밝아왔다.
햇살이 병실 안을 내리쬐었고.
선욱과 예리는 정말로 오랜만에 맘 편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ECP 한국지부.

“대장님! 언니가 돌아왔어요”

“그래? 어서 들어오라고 해!”

“네”

다니르의 얼굴에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그 사건 이후로
가희의 능력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곧 있으니 선미의 뒤를 따라 가희가 들어왔다.
아직은 몸이 불편했는지 어색한 걸음걸이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자네가 죽었다고 보고 받았을 때는 얼마나 앞이 깜깜했는지...“

깜깜했겠지...
그 머리로 00367를 상대하는 건 절대 무리니까.
가희는 다니르의 훤히 까진 대머리를 응시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곧 짧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래...우리 ECP가 지금 상당한 위기에...”

가희는 ECP가 아니고 대장님 자신이 위기인 게 아니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애써 참았다.
그렇다고 다니르의 말을 계속 듣고 있기는 싫었으므로 말을 끊어 버렸다.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
선미에게서 이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아 그런가? 그럼......?”

다니르는 마치 어린아이가 생일날 받은 선물의 내용물을 궁금해 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가희에게 물었다.
한마디로 무슨 좋은 생각이 있냐는 거였다.

“EXP가 온다고요.?. 그들이 올 때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알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아. 정말인가?”

다니르는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며
가희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는 세차게 흔들었다.

“대장님?”

가희는 약간 불쾌한 표정이 나와 버렸지만,
곧바로 안색을 바꾸고 다니르의 손을 때어 내었다.

“잠시 쉬고 싶어요. 00367은 그 후에 바로 사냥하기로 해요”

“그...그래....”

다니르로써는 지금 당장 총력을 동원해서 00367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가희 없이는 죽도 밥도 되지 않았으므로 입맛을 다시며 말꼬리를 흐려버렸다.
대장의 권위로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다니르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아쉬운 건 자신이고,
솔직히 가희로서는 EXP가 온다고 해서 크게 곤란한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당연한 거였다.
지도부가 교체된다고 해도.
곤란한건 언제나 능력과 빽이 없는 사람이니까.
프랑스계인 다니르서는. 능력도. 그리고 빽도 없다.
그저 가희덕분에 대장님이 된 운 좋은 남자였을 뿐.

“그럼 물러갈게요”

가희는 살짝 억지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다니르를 등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 살짝 시계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피곤하긴 했지만. 꼭 쉬어야 될 정도는 아니었다.
옛날의 그녀 같았으면.
물론 다니르는 싫었지만.
ECP의 일자체가 좋았으므로 바로 00367을 사냥하러 가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그녀의 뒤를 쪼르르 선미가 따라붙었다.

“언니, 그런대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에요?”

“글쌔..? 피곤하니까, 다음에 이야기 할래?”

가희는 선미의 질문을 무시하곤,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개인실 로 들어가 버렸다.

문을 닫고.
그문에 기대어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짓이었는지.
가희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00367을 흥분시켜 그를 찌르게 만든 장본인인 주제에.
병원으로 달려가서.
그것도 “Z”의 권력을 이용하여 선욱을 치료를 돕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쓰레기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라면 선욱과 00367를 모조리 제거할 수 있다.

가희는 시계를 보았다.
아마 아직 수술중 이겠지....
그래 지금이라면...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선욱이 수술을 다 받을 때까지는 기다릴 심산이었다.
00367은 당연히 죽여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까지 죽일 생각이 조금씩 사그러 들고 있는 자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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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연초라서 좀 바빠서ㅠ_ㅠ::
텀(?)이 좀 길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ㅠ_ㅠ
새해복 많이 받으셨나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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