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수]
"하아.. 벌써 2007년인가.. 시간도 참..."
1월 1일이다.
TV라도 있었으면 새해 종소리라도 들으면서 한해를 시작했겠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이 너무
나 협소해 컴퓨터 한대로 겨우 들어갈 정도다.
여자친구라도 있었으면 같이 일출을 보던지 종각으로 가서 종소리를 듣던지 마음대로 하겠지
만.. 당장은 돈도 없고 능력도 안되니 포기해버렸다.
지갑을 뒤적여본다. 남은돈 전재산 3만2천오백원, 그나마 담배 한갑 사고 나면 3만원으로 1주
일을 버텨야 한다.
내나이 불과 2분전까지만 해도 23이었다. 이제는 20대 중반을 향해서 고개를 쳐들고 달려
나가는 24살.
군대.. 10월중순에 전역했으니 약 2개월반정도 지난 예비역 초년차.
여자.. 누가 그랬는가. 23년이면 소장이라고. 그래, 나 별하나 달았다. 큼지막한걸로.
다행히도 경험은 빌어먹을 군대에서 가지게 되었다.
고참하고 관계를 가진건 아니고,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여성분과
원나잇스탠드를 가졌었다.
전역하고 나서는 전전긍긍하며 아르바이트 식으로 전자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내가 가진 꿈이
너무나 컸기에 그만둬버렸다.
그래서 결국, 2개월 반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이렇게 지내왔다.
"자. 삼만이천오백원을 가지고 일주일을 버틸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방에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가지 돈 안쓰는 방법이라..
"담배 덜피고.. 피씨방 덜가고.. 군것질 안하고.. 그러니깐.. 아예 밖에 안나가는게 돈안쓰는 방
법이구나. 제길"
내방에 왠만한 게임이 돌아갈 정도의 사양이 되는 컴퓨터도 있고, 아침 점심 저녁 배곯지 않고
해결할 밥과 반찬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집안에서만 지내는건 나한테는 거의 고문을 시키는것
과 다름이 없기에 백수신세에 과분하게도 돈을 쓰고 다니긴 한다.
2007년 1월 1일 오후 2시.
새벽까지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게임에 지쳐 잠이 들어버렸다.
"별로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빨리 나가야겠네."
매일마다 어김없이 4시 10분에는 할머니가 오시고, 5시 15분에는 할아버지가 오신다.
그렇기때문에 적어도 나는 3시 30분전 까지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놀고있는것 처럼 보이니깐.
할아버지 할머니가 올해에 일흔셋이신데 아직까지도 일을 하시는것을 보면 내자신이 부끄러워
서 집에 있질 못하겠다. 그렇지만 단지, 그이유때문은 아니고 하는것 없이 노는 백수라도 이상
하게 밖에 나가서 공기를 쐬는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활력소가 된다.
우선 주머니를 확인해본다.
담배, 라이타, 열쇠, 핸드폰, 지갑, 음.. 다 챙겼구나.
이상없음을 확인하고 간석역부근에 있는 700원짜리 피씨방으로 간다.
집에 컴퓨터도 있는데.. 굳이 피씨방 까지 가서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비유를 해보겠다.
대체로 평범한 가정에 사는 학생들은 배 곯지않고 세끼 다 챙겨먹지만 매일 같이 밥만먹다 보
면 반찬 투정을 하기도 하고 라면을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 돈이 생기면 밖에서 외식을 한
다. 술을 먹는 경우에는 담배도 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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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피씨방을 가는 이유는 그런것이다. 돈은 없어도 외식은 하고싶다.
이렇게 살다가는 장기라도 팔아야 되지 않을까?
빈곤한 인생..
[PC방]
대체로 나는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하지만 주위에 보이는 형태를 가진 모든것들이 가끔씩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에 가끔씩 내가 가
진 이성이 무너지기도 한다.
여성스러움..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중 두번째로 자리잡고 있는것이다.
남자들한테 내가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보여봤자 보이는것은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늑대의꼬리
뿐.. 내 친구년들은 남자들 등쳐먹는 재미로 사는년들인데 이상하게 나는 그런게 싫더라..
나의 겉모습은 언제나 냉정함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내 주위에 있는 년들과는 다른 방식을 살고싶을뿐..
1월2일. 오전 9시 50분.
"저기요, 누나. 여기 현금잔액 인계표하구요 손님들 현황표 드릴게요. 청소는 다 해놨구요 사장
님 오시면 말씀좀 잘해주세요. 사장님 오시기 전에 가봐야 하거든요."
"무슨일때문인데 그러니."
"아. 오늘 제 친가친척한분이 결혼하셔서 결혼식장 가봐야 하는데.. 지금 안가면 시간이 안나네
요.사장님한테 전화드렸는데 안받으시길래요. 부탁드려요."
"알았어. 가 봐."
"예. 잘 부탁드려요. 그럼 가볼게요."
나는 그 애가 넘겨준 표를 보고 현금 잔액을 확인해본다.
그리고 인원이 맞는지 주위를 둘러본후 실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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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늘도 이상은 없다.
나는 데스크로 돌아가 의자에 앉는다.
내가 들고 온 가방안의 책들을 꺼내놓는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장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음.. 그래요..별일 없죠?"
"예.. 동식군이 준 현금잔액표하고 손님현황표, 실셈으로 확인해보았는데 이상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저께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것 알죠?"
"네. 사장님.."
" 아. 그나저나 동식씨는 어디갔나요? 화장실 갔나요?"
"아. 동식군이 오늘 친가친척분이 결혼하신다면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사장님 못 뵙고 먼저가
게 되었다가 잘좀 말씀드려달라고 했습니다."
"아.. 그래요.. 어쩔수 없죠... 뭐.."
"저는 잠시 둘러보고 2호점으로 가봐야겠네요."
"네.. 사장님 저는 그럼 일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곳의 사장과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틀리다. 처음부터 존댓말로 아르바이트 생들을 대하는
것도 생소하고 여자든 남자든 간에 차별없이 대우해 준다는게 어찌보면 고마운 일 일수도 있고
달갑지 않은 일 일수도 있다. 저런 모습이 프로라는 건가..
내가 아무리 여자라지만 아르바이트를 함에 있어서 다행인점은 내 아버지가 육군 장교 출신이
었기때문에 그런지, 여자를 남자처럼 키운다는 목적하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 다하는 악
세서리라든지 화장이라든지, 머리모양은 무조건 없애던지 아니면 통일시켰었고, 말투는 여군처
럼 하라고 하면서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는 몰라도 여자 부사관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다큐
멘터리를 잔뜩 가지고와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올때도 나는, 여군인들이 엎드려있는 모
습을 봐야만 했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행동양식을 규제 하는 범위는 아예 없어졌지만.. 다른 년들처럼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손톱을 길러서 네일아트를 하고 목걸이나 귀걸이, 팔찌 아름다움을 강
조하는 악세서리를 마음껏 차고 다녀도 내 마음 한구석은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무서웠어도 도움은 많이 되고 있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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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도 하시네요."
"어멋!! 아.. 아니에요.. 사장님.."
어느순간엔가 사장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허허.. L양한테도 이런 귀여운 구석이있을줄을 몰랐네요. 그모습 잘보고 갑니다.
PC방 이상없는듯 싶으니깐 관리좀 잘해주시구요. 도망가는 손님이나 난동부리는 손님있으면
바로 112에 신고하세요. 그럼 수고하시구요"
내가 뭐라고 말을꺼내기도 전에 사장이 출입구로 나가버린다.
"... 휴우... 이런게 아닌데.. 이런 모습 보이기 싫은데.. 젠장.."
하지만 나는 금새 냉정함을 되찾는다. 아니 되찾으려 노력한다.
내가 꺼낸 책들을 보기에는 우선 해야할일이 있기때문에 나중에 보기로 마음먹는다.
"음..우선 해야 할일이. 냉장고 정리구나."
지금 내가 해야할일을 체크해본다
"끼이익"
체크를 하고 있는 동안 출입구문을 열고 20대 후반처럼 보이는 아저씨 한명
이 들어온다. 나는 그 아저씨를 한번 쳐다보고 무심결에 시간을 확인 한다.
오전 10시 41분
인과연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