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43년 후...

혼돈자 작성일 08.03.25 02: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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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내 주머니엔 오천원짜리 지폐가 있다...

 

자리에 못 일어나 끙끙대던 내가 오늘은 웬일인지

 

몸이 움직여졌다... 게다가 낡은 점버에서

 

꾸깃꾸깃한 오천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겨우 몸을 일으켜 바람도 쐘겸해서 이렇게

 

나왔다...


 

이런 우라질 놈의 날씨 더럽게 춥구만... 그래도

 

사람들은 많이도 돌아다니는 군... 젊음이 좋다는 거지..

 

그러고 보니 6살짜리 손자 녀석... 장갑도 없는데 나가서

 

잘 놀고 있을까... 감기 걸릴지도 모르는데...

 

마침... 저기에서 길에다 장갑을 파는게 눈에 보인다...

 

아이들용 벙어리 장갑... 분홍색에 힌줄이 그어진 작고

 

이쁜 벙어리 장갑이 눈에 보였다... 장사꾼에게 값을

 

물어보았는데... 오천원이란다...

 

으흠... 이 돈을 다 쓰긴 좀 그런데... 난 공손하게

 

장갑을 삼천원에 팔 수 없겠냐고 물었다... 좀 난감해 하는군...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좀 알아볼까... 안되면 그냥 오천원에 사고...

 

하는 생각쯤에 장사꾼이 그 장갑을 들어주면서...

 

-이거 떨이니까... 그냥 가져가세여...-

 

하며 내 손에 쥐어 준다... 난 너무 고마워서 머리를 계속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공중전화로 양로원에 있는 친구랑 한바탕 싸움을 했다

 

망할 놈... 친구가 하나만 부탁하자는데... 그 자식은 '알았어!!' 하면서

 

전화를 딱 끊었다... 오늘 내일 할 것 같은 몸에 소리질렀더니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럽다...

 

전화를 썼는데... 1000원 이상이 나가버렀다... 괜히 전화했나도 싶고...


 

남은 돈으로 손자가 좋아하는 과자... 빵... 음료수를 있는돈으로

 

다 썼다... 손자가 좋아하려는지 모르겠다... 맛있는 거 먹이는게

 

이렇게 쉬운일이 아니라는게... 항상 미안할 뿐이다...


 

방에 돌아와 손자는 과자와 빵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장갑만 바라보고

 

만지고... 끼우고... 좋아했다... 그 모습이 너무 이뻐보이고... 귀엽워서...

 

눈물이 좀 나오려는 걸 참고 좀 천천히 먹으라면서 나무랐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손자는 자리에 누워 벙어리 장갑을 만지며

 

통 잘 생각을 안한다... 보통 안고 자달라던 녀석이 오늘은 장갑때문에

 

정신이 없다... 하긴... 모처럼 이 몸으로 멀리 나갔다 와서

 

손주 안고 잘 힘도 이제 없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난 손자를 등지고 돌아누워...

 

-장갑 이쁘니...-

 

-응... 할아버지... -

 

하며 설레임 찬 손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또 물어볼까 하는데...

 

손자는 이미 푹 잠에 빠졌다... 나도 이제 자야지... 안고 자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침에 적어도 죽은 사람 품에 일어나

 

놀라는 손자가 떠올라 걱정이 많았는데... 겨우 겨우 힘들게 싸우며

 

설득한 친구가 낼 아침 되도록 일찍 왔으면 싶다... 그 친구에게

 

항상 부탁만 하고... 빚만 또 지고 가는구나... 미안하다 이 망할놈아...

 

손자는... 혼자 남게 될 생각에 이 순간까지 눈물이 흐르는구나...

 

숨은 거칠어져 가는데... 이 소리에 손자가 도중에 깨지 말길 바란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이 할아버지 부탁이니까 좋은 꿈을 꾸며

 

깊게 자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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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자야지...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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