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의 프린스 [page-1]

빛잃은날개 작성일 09.06.22 23: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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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을 찌르는 독한 피 냄새와 이미 핏물로 잠겨버린 바닥.

 나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어렸던 난 울지 않고 푸른 하늘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남긴 지상과는 다르게 유난히 기분 좋게 빛을 내는 하늘 아래서.


‘닿을 수 있을까. 저 하늘에.’


 달아나고 싶었을까?

 날아가고 싶었을까?

 도망치고 싶었을까?

 자유롭고 싶었을까?


 나는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손을 뻗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저 새처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길 바라며.


 무참히 죽어가는 사람들 모습 볼 필요 없이.

 날 끝까지 지켜주려다 끝내 처참히 죽어간 어머니의 모습을 보지 않게.

 모든 고통을 떨쳐 버릴 수 있게.

‘저 하늘에 내 손이 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나는 바란다.

 자유로운 새처럼 살아가는 것을.

 온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즐겁게 날아가는 저 새처럼.

 어머니의 죽음조차 볼 수 없는 저 하늘로.

.

.

.

.

.


‘음- 또 그 꿈인가.’


 벌써 몇 년째 계속 되어 왔는가.

 10년도 더 된 옛날 일을 꿈으로 통해 자꾸 떠올리는지.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던 그 때. 하지만 자꾸만 내 머릿속에 아롱거려 떨칠 수 없다.

 아련하면서도 슬픈 이 기억은 내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 잡아 날 미치도록 아프게 했다.


 몇 년째 계속 똑같은 꿈을 꿀지라도 전혀 익숙하지 않는 어린 날의 핏물을 뒤집어 쓴 작고 날카로운 기억의 조각이 수 없이 날 찔러대 왔다.

 이젠 자는 것도 두려울 정도다.


[차라라-]

 나는 그 꿈의 잔상마저 떨쳐버리기 위해서 커튼을 걷고 시원한 공기를 들여 마신다.


“엣-취!”


 7월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에 춥고도 차가운 공기가 창문 틈사이로 빠져와 내 콧속에 들어와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재채기가 저절로 나온다.

 작년부터 시작되어 온 이상한 기온현상.

 뉴스에선 이번이 마지막 고비라고 지껄여대지만 그게 어디 한두 번 말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똑같은 거짓말을 해대는 데 정말 그 때마다 지겹다.


 이 이상한 기온현상은 전에 내가 겪었던 핏물로 잠긴 대 참사 때와 같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 참사가 멎었을 때 쯤 그 이상한 기온현상도 말끔히 없어졌다는 것이 항상 관련 깊지는 않을까 라는 괜한 걱정 또한 하게 만든다.


 아침부터 온갖 이런 심란한 생각들이 날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방을 뒤적이며 담배를 찾는다.

 하지만 담배는 아무리 구석구석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다.

 벌써 다 피우고 없어진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담배를 사오기 위해 간단한 코트를 두르고 밖으로 나갔다.


 영하 25도는 기본인 날씨에 간단한 코트만 입고 나온 게 화근이었는지 내 집에서 단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의 마켓까지 가는데도 엄청난 추위를 느꼈다.

 하지만 그 추위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하나로 잊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저 살인범 작정을 했군, 그래. 아이와 어미를 갈가리 찢겨 죽이다니.”


“어디 그것뿐이야? 이번만 해도 29번 째 사건이라는데.”


“자. 여러분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주세요. 살인마를 잡기 전엔 외출 역시 삼가주시고요.”


 그렇게 살인에 대해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한 경찰관이 떠밀듯 억지로 집에 보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저 수많은 사람들을 한명의 경찰이 다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경찰이 말릴수록 사람들은 사건 현장을 더 보기위해 우르르 몰려들기 때문에 더하다.


“아, 좀 보면 어때요!”


 라며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보려는 사람도 있었고,

 궁금해서 방방 뛰어서 사건을 보려는 아이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경찰 하나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하는데도 끝까지 버티는 경찰도 대단한데?


“지, 지원요청! 사람들이 떼로 몰려 사건 현장에 들어오려 한다. 응원 바란다!”


 결국 하다못해 그 경찰은 무전기에 대고 지원을 불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나는 깊은 한 숨을 쉰 다음,


“저기 도움이 필요한가요?”


 라며 당당히 그 경찰관 앞에 다가갔다.

 나의 그 행동에 경찰관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어리둥절해 했지만 그나마 시끄럽게 구는 일은 사라졌다.


“저, 저기 누구신지요?”


 어리둥절했던 경찰관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에게 묻는다.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그에게 수첩을 펼쳐 보여주자 그는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몇 초간 허둥지둥 했을까, 그 경찰관은 내게 경직된 모습으로 경례를 표했다.


“이거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강석 형사님!”


“알면 됐어요. 그나저나 사건 현장 좀 볼 수 있습니까?”


“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형사님 같은 훌륭한 분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는 상당히 몸이 경직된 상태로서 말도 더듬고 사건현장까지 동행하는데도 발을 쉽게 떼어내질 못했다. 그는 아마 날 처음 한 번에 못 알아봐서 크게 당황한 듯하다.

 형사란 직업을 달고 난 후 이래저래 유명해지다 보니 저런 일반 경찰들이 날 매우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서 나 역시 불편하다.


“여기입니까?”


“네, 넷! 형사님의 도움으로 부디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바랍니다!”


 나는 피에 흥건히 적셔져있는 눈덩이 위에 갈가리 찢겨져 있는 시체 앞에 앉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피. 생생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보여 지는 살과 뼈들.

 그 끔찍한 모습과 냄새는 이미 어렸을 적 맡았던, 꿈속에서도 지겹게 보았던 것들이라 이젠 대수롭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벌써 헛구역질을 해댔겠지?


 ‘후우- 후우- 후우-’


 그렇게 몇 번의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시체 따위보다 더한 광경을 보기 위한 준비라고 하자.


 나는 살포시 시체 곁에 손을 얹고선 눈을 서서히 감고 집중에 들어간다.


 초능력.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나의 능력도 그런 것에 속하겠지.


 사이코그래프.

 흔히 마음의 기록이라 불리는 이것은 개인의 성격 특성, 정신적 특성에 관한 기록을 그래프 따위의 형식으로 나타내 보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나 역시 이것과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 성격의 특성을 볼 뿐 아니라 자신이 겪어왔던 경험까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때론 일정한 숫자로 나타나 보이기도 순간의 장면들로 보이기도 하는 알다가도 모를 능력인 것이다.


 이 능력 하나 때문에 내가 형사로서 유명 해졌다 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대체로 우울, 고통, 슬픔, 증오가 담긴 경험들로만 구성된 것만 내 뇌에 고스란히 흘러오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보는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구역질을 한다.

 내가 원해서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주받은 능력?’

 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해봤다.

 당연하다. 온갖 기쁨, 즐거움, 웃음 이라는 다양한 경험들을 내팽겨 쳐두고 그런 경험들로만 보인다는 것은 저주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

.

.


“윽!!”


 이라는 짧은 고통 속에 나는 내 앞에 있는 시체보다 더 끔찍한 일들을 보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옆에 있었던 것 마냥 생생하게 내 머릿속을 관통한다.

 상당한 미모의 여인이 거리낌 없이 그리고 사정없이 피 튀기며 아이와 엄마를 죽이는 그 모습이-


‘하아- 하아- 하아-’


 더 이상 보기도 싫다.

 더 추한 꼴을 보는 것이 싫다.

 더 파고들면 그 때의 일과 함께 한꺼번에 다시 떠올려질까 싫다.

 그래서 아주 짧은 순간만을 보고는 얼른 손을 내빼고 눈을 떠 깊은 숨을 내몰아 쉬었다.


 그리곤 작은 메모장을 꺼내 내가 봤던 범인의 몽타주와 신체, 옷차림 등을 세세히 적고는 그 경찰관에게 건네주었다. 이래봬도 난 기억력이 꽤 좋아 순간적으로 본 사물이라도 구체적으로 기억해낼 수 있다.


 경찰은 수첩을 받고선 나의 거칠게 몰아쉬는 숨과 구슬거리는 땀방울을 보고 내심 걱정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경례를 내게 표했다. 이번에는 아주 들뜬 표정으로.


“역시, 소문대로이십니다! 훌륭하시군요. 어떻게 이런 것을ㅡ”


“쉿. 그건 비밀입니다.”


“네, 넷! 형사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내 집으로 향했다.

 몸으로선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크게 힘이 들었다.

 짧은 순간, 순간의 장면이라 하더라도 강렬하고 생생하게 떠올려지는 기억의 파편은 항상 내 머리를 뒤흔들기 때문에 충분한 체력소비인 것이다.


‘담배가- 음? 아차! 담배 산다는 걸 잊었네.’


 피곤함을 잊으려고 코트 속에서 담배를 찾으려했지만 없다.

 당연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담배가 없어 사려가던 참이었는데, 그냥 사지도 않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니 말이다.


‘귀찮군. 담배 하나 사려는 데도 힘들어.’


 그렇게 다시 마켓으로 담배를 사러 가려던 차, 내 눈에 상당히 낯이 익은 여성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만 피곤함에 구부려져있던 허리를 일자상태로 펴버렸다.


.

.

.

.


 사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손에서부터 차례차례 찢겨져 버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사람들을 찢어 죽이는 그녀는 내 메모장마저 갈가리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찢는다.

 그녀 옆에서 사정없이 튀기는 피는 그녈 더 잔혹하게 보여 졌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즐기는 것처럼 환한 미소를 띤다.

 조금만 더 늦게 갔다면 저 여자의 미소를 보기 전에 나 역시 죽임을 당했겠지?


“죽으세요, 당신도.”


 살 떨리게 만드는 그녀의 말에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뇌는 무섭게만 느껴지는 저 여자에게서 도망쳐야 하면서도 몸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이 전혀 움직여주질 않는다.


 극심한 공포 때문에 멈춰버린 사고방식.

 그 드리우는 압박감이 서서히 내 목을 조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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