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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담배꽁초가 가득한 콜라병, 빈 소주병들, 라면 부스러기. 그리고 혼자 멀건히 서있는 나. 괴물이 말한다. 지금은 기분이 어때? 대답 할 기분이 아니다. 그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를 뿐. 한참을 서 있다가 가만히 앉아 소주 한 잔을 따른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아, 취한지 안 취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죽어가듯 잠든다.
혼자 술을 마신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에 되도 않는 건배를 하며 챙 하는 소리를 내고는 불쌍한 자신의 눈을 보며 외롭게 취해가는 행위. 한참동안 하지 않았던 그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가령 처음 보거나 애인이 아닌 사람과 섹,스를 하고 난 후의 기분과, 혼자 먹은 술이 깰 때의 기분이 몹시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조금 더 어릴 적에는 대학생이 되면 시트콤에서처럼 비참한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고독하면서도 멋지게 포장마차 따위에서 혼자 술을 먹을 줄 알았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을 과거로 되돌리거나 미래적으로 바꾸려고 해도 혼자 먹는 술은 그리 맛있지 않다. 거울을 통해 비춰지는 시선이 세상의 떨거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난 후에 일상과 간에 알코올이 빠른 속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들었었지만 시기적절했던 핑계에는 한계가 오게 되었고 결국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나 힘들어 그만 보자 이제 정말 지쳐- 라는 짧은 메시지 하나에 나는 또 다시 세상의 떨거지가 되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작년 초봄, 아직 영하의 날씨라 눈이 조금 내리던 날 술집에서 후배를 만났을 때였다. 정확하게 이야기가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후 그 곳은 단골집이 되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붉은 벽돌이 층층이 쌓여 있어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으나 내부는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아 복작복작했고 벽 부분이 어디든 낙서로 가득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후배의 여자친구가 좋아한다는 편안한 오후라는 이름의 술집, 안주가 푸짐하거나 가격이 딱히 저렴한 것도 아닌데 이름에 걸맞는 나긋한 분위기가 마음 편히 술에 취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곳이다.
“우와 언니 술 진짜 잘 먹는구나. 석이보다 더 잘 먹는 것 같네. 야 넌 여자친구한테 술 지겠다? 낄낄”
술 게임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당연하다는 듯 유일한 커플인 석과 은영에게 맞춰졌고 남자 쪽에서 먼저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 현님 저 제대한지 얼마나 됐다고 끄래요. 꺽, 게다가 원래 은영이는 술 잘먹는단 말예요.”
혀가 꼬인 그 말에 욱한 은영이 석과 티격태격 귀여운 말다툼을 한다.
오빠 이제 그만 먹여도 되겠는데? 라고 말하며 민정이 미소 짓는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와 남자친구 분은 좋으시겠어요 여자친구 미인이라~ 라고 말한 후 에이 저 남자친구 없어요 라는 말이 나오면 아 진짜? 그럼 나한테도 기회 있는거네~ 말 편하게 해요 우리. 자기가 편하게 안하면 나도 존댓말 할거야...요 라고 말하며 거짓웃음을 보여주면 된다. 그럴 때면 언제나처럼 괴물이 찾아와서 아무 말 없이 피식 웃곤 하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는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취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만족했다는 듯이 민정이 나에게 눈치를 준다. 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라는 기분으로) 빠르게 술을 먹었고 취한 두 사람을 집에 보낸 후에 5분가량의 설득 끝에 우리는 모텔에 갔다. 섹,스를 한 후 그녀가 피우던 담배를 한 개비 얻어 피웠다. 2200원 짜리 본이라는 담배, 밋밋한 그 맛에서 몇 개월 전의 기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돈 얼마 없거나 동전 남아 돌 때에는 디스 플러스를 사는 게 보통 아냐? 라는 질문에 그렇게 400원을 여섯 번 아껴도 2500원 짜리 담배는 못 사잖아. 나라면 디플에서 100원을 더 주고 본을 사겠어 라는 얘기를 들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이었고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을 하고 있는 자영은 운동선수 특유의 그을린 피부와 건강하다 못해 튼튼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허벅지와 탄력 있는 몸매를 하고 있었는데, 어울리지 않는 아주 여성스러운 포즈로 내 가슴팍에 기대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담배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털털하고 건강한 느낌의 민정이 자영과 어딘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혹시 동전 남아돌거나 돈이 얼마 없어서 본 산거야? 라고 묻자 그녀는 아니 만 원짜리 까기 싫어서 라고 잘라 답했다.
혼자 먹는 술은 본이라는 담배와 어울린다. 애매한 가격과 밋밋한 그 맛이 꼭 싫어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물론 300원을 여덟 번 아껴도 2500원짜리 담배를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남자가 연애를 하는데 필요한 것을 나는 세 가지로 요약한다. 돈과 외모 그리고 화술이다. 각각을 10점 만점으로 했을 때 최소 15점 이상 되는 사람이 연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어떤 연애를 어떻게 하게 되든 결과적으로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지 않으면 사랑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대부분의 영화처럼 연애의 그 끝은 당사자 둘 모두의 새드엔딩이나 해피엔딩이 아니므로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원하는 쪽, 즉 더 많이 혹은 너무 많이 마음을 줘 버린 쪽이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배하게 된다. 진 사람에게는 새드엔딩이, 이긴 사람에게는 밋밋한 담배 향 같은 상대방에 대한 기억과 애매한 기분만이 남게 될 뿐이다.
ps///
노르웨이숲은 고양이 이름입니다
4화까지 써놓았는데 장편이라 40~50화 이상 예상하구 있구요 스토리는 완성되어 있어요
재미지게 읽어주시면 계속 올려보고 싶네요
태클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