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실신 11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09.08.14 22: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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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건, 이들도 부모가 있고, 아내가있고, 자식도 있고, 그렇겠지..?"

 

정무맹과의 전투가 막 끝나 열기가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전장에 널린 시체들을 바라보며 만향이 내게 말했다.

만향의 건조한 목소리가 서글프다. 주군이 아닌 벗이 되어달라던 그의 부탁에 허락했건만 오히려 그 사실이 내맘을 더욱더

아프게 한다. 차라리 주군이었다면 정을 주지는 않았을텐데. 온몸을 피로 물들인채 서글프게 웃는 만향과 먼지하나 묻어있지 않은 내 옷. 그 모습을 바라보기 힘들어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한다.

 

"그 자식들이 커서 복수하기 위해 또 다시 마천루에 오고, 나는 또 그들을 죽이고, 또 죽이고..."

 

이런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다. 난세에 필요한건 철혈의 피를 가진 자이지 적을 죽이고 슬퍼하는 자가 아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근데 칼밥먹는 무인들이라 자식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거야. 걱정하지마."

 

애써 농을 지껄였지만 만향의 표정은 풀리지가 않는다. 마제가 죽어버린 이상 마천루는 만향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4년째 계속되는 정무맹과의 싸움. 정무맹도 마천루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미 끓어버린 강호의

피는 쉽게 식지를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피를 원하는듯 싸움은 더욱더 거세지고 있다.   

 

"내 손은 더이상 꽃도 난도 만질 수 가 없어. 너무 붉게 물들어버렸어."

 

"흐음. 걱정하지마. 나도 붉게 물들었거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건 다 내머리와 입에서 시작되었어. 네가 잘해야 몇백명

을 죽였다면, 나는 몇천명을 죽였다구."

 

나는 연초를 꺼내 곰방대에 말아 넣고는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그러니, 옛날처럼 꽃도 만지고 난도 만지고 그래도 되."

 

"그게 뭐야."

 

만향이 키득거리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나도 따라서 앉고 싶었지만 이번에 새로산 옷이 더럽혀질까봐 묵묵히

서서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새로 산거야?"

 

"그냥 서있는게 편해서 그래."

 

"그렇구나."

 

"응."

 

"....."

 

"....."

 

나를 지긋이 올려다보는 만향의 눈빛에 잠시 주저하던 나는 눈물을 머금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비싼거야?"

 

"아니."

 

"......"

 

"사실, 비싼거야."

 

"....."

 

어색한 침묵이 지속되었다.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연건 만향이었다.

 

"이 전쟁 언제쯤 끝날까?"

 

"글쎄, 정무맹이나 마천루 둘중에 하나가 사라진다면 끝이 나겠지."

 

나는 허공에 연기를 내뿜으며 쓰게 말했다. 예전에 노예병으로 있을때 그렇게 피고 싶었던 연초지만 지금은 단지 쓰게 느껴질

뿐이었다. 마치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던 내 살의처럼.

 

"만약에 말이야, 정무맹과 마천루가 화해를 한다면 말이야..."

 

"그런 생각은 버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마천루와 정무맹의 지금까지 흘렸던 피가 용납하지 않을거야."

 

"그렇겠지? 나. 너무, 너무 힘들때면 아버지의 죽음과 마천루 사람들의 비명과 지하를 떠올려. 그것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전부야. 우숩지?"

 

만향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지난 날을 회상해본다. 어린시절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찰나적인, 하지만 다른 것과 바꿀 수 없

는 시간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들. 몇년전까지만해도 뚜렷하게 명암이 구분되었던 얼굴들이 어느새

희미해져버렸다. 잊혀지지 않는건 그들을 잃었을때의 절망과 분노.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며 걷는 우리들을 지탱해주는 것이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생각하면 미쳐버릴듯한, 잊고 싶은 기억들이 우리를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아주고는 한다.

 

"날이 어두워졌어. 지하가 많이 기다리겠다. 집으로 가자."

 

나는 만향을 잡아 일으키고는 전장을 지나 마천루로 향했다. 전장에선 마천루의 무인들이 아직 살아있는지 꿈틀되는 정무맹

의 무인들을 하나하나 칼을 꽂아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걷는 만향을 보고는 후우 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마 울고 있는 모습을 수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거겠지. 지금 만향의 모습은 이율배반적이라

는 생각과 함께 이런 난세에 적을 죽이고 눈물 짓는 녀석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힘내. 이곳은 전장이야."

 

나를 바라보는 만향의 눈에는 여러감정이 섞여 배여 있다. 나는 만향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는 마천루의 무인들

에게 말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신속히 끝내고 돌아간다."

 

무사들은 무심한 눈빛으로 칼을 꽂아 넣고 있었다. 그런 무사들을 바라보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난세란건 참 편하군 사람들의 죄책감또한 감싸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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